친구는 오랜 시간이 아니라,
정작 필요할 때 곁에 있는 사람이었다.
시집가면 친구들 보기 힘들 테니,
작정하고 만든 마지막 술자리였다.
입만 열면 욕설인 친구와 천사견 레트리버 같은 친구.
둘 다 독신주의였고
셋이서 술이 익는지 달이 익는지... 마셨다.
멀쩡함은 이미 환불 불가 상태였다.
욕쟁이 친구가 술잔을 내리치더니
“아 쓰바!! 루달아 너 시집가지 마!”
비혼주의자들의 술잔 속에 내 연애의 축복 대신
욕설 섞인 우정이 출렁였다.
"아 니미! 네가 아깝다고! 쓰바!"
도시락까지 싸서 내 결혼을 막겠다던 욕쟁이의 절규.
그 진심이 안주가 됐지만 욕이 거슬렸다.
과한 술은 곧 아스팔트와 합체됐다.
시멘트 바닥을 침대 삼아 벌어진 ‘머리끄덩이 혈투’.
한 번도 싸운 적 없던 사이 치고는 육탄전이었다.
혼돈의 현장에 강림한 평화의 상징, 레트리버 양이
뛰어오며 인자한 한마디!
"야 너희들 화해해."
꼬맹이 시절부터 우리는 한 번도 싸운 적은 없었다.
우정이 오래돼서였을까?
얼어붙었던 감정의 마비도 이내 눈 녹듯 풀렸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서로를 보며 웃었다.
아스팔트 위의 소란은 결국 사랑이었다.
시집가는 친구를 보내주기 싫어
몸부림으로 저항했던 밤.
레트리버 양은 자기 집 가서 한 잔 더하자고 했다.
우리는 택시를 잡아타고 수서 LH 아파트로 돌격했다.
각자의 손에는 무기 대신 술병이 들려 있었고, 그날 밤 우정은 좁은 자취방에서 뜨겁게 발효됐다.
우리는 마시는 게 아니라, 퍼부었다.
오늘이 인간 마지막 날인 것처럼.
취기가 정점에 달했을 때 술은 뚝 떨어졌고
몸은 천근만근... 서로의 눈치를 번갈아 봤다.
“야~그냥 내가 나가서 술 사 올게.”
난 문을 박차고 나갔다.
신발장 앞에 삼선 슬리퍼가 있었고
급하게 발을 끼워서 신고 내려갔다.
아뿔싸!
첫 발부터 미끄러졌고
두 번째 발에 자유를 찾은 삼선 슬리퍼는
한 번 튕기고, 그대로 탈주했다.
쿵, 쿵쿵, 쿵쿵쿵.
둔탁한 드럼 울림소리와 함께 계단을 쓸었다.
남들은 걸어서 내려가는 그 길을,
온몸으로 리듬 타며 굴러 완주했다.
'와, 이거 어딘가 아작 나겠다'
발을 조심스럽게 움직여봤다. 멀쩡했다.
아무 일 없다는 얼굴로 편의점까지 경보로 갔다.
술을 들고 돌아오자 친구들은 소리를 질렀다.
"우와~~!!"
술이 끊기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섞인 박수였고
나는 술 배달 로봇이 됐다.
우리는 마지막 한 방울까지 쪽쪽 마셨다.
"루달아 (딸꾹) 시집가면 애 낳아야 하는데
너 출산 그거 얼마나 무서운데 가지 마 (딸꾹)"
혀는 꼬부라지고 바닥에 낙지처럼 붙어 잠이 들었다.
해가 중천이었을 때 물을 찾으며 슬슬 깼고,
세상은 멀쩡했다. 우리는 아니었다.
화장실을 가려고 발이 바닥에 닿는 순간
"아이야-!!!"
식은땀이 뚝뚝 떨어졌다. 친구들은 놀래면서
“야, 너 왜 그래?”
“어제 계단에서 좀 굴렀는데 그땐 괜찮았거든
지금은 발이 닿기만 해도 너무 아파 ”
그날은 개천절 연휴라 병원은 전부 닫혀 있었고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나님! 살려만 주시면 술 끊을게요."
회개가 아니라 거래였다.
내 '비즈니스 회개'를 받아주신 걸까?
갑자기 천장 스피커에서 지지직거리며
“아— 아— 마이크 테스트… 똑똑…”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아파트 주민 여러분—
지금 무료 의료진단이 있습니다.
몸이 불편하신 분은
000동 주차장 앞으로
내려오시기 바랍니다.”
타이밍이 너무 소름 돋아서 무서웠다.
친구들은 동시에
“야… 너 내려가!! 빨리!!”
기적이 아니라 확성기 달린 응답이었다.
그리고 욕쟁이는 "아 씨부럴 졸라 웃겨!"
레트리버 양은 안면 붕괴가 되며 웃음을 참았다.
친구들은 신이 난 채, 내 양팔을 붙잡았고
나는 그 사이에 끼어 어설픈 삼인용 인간이 됐다.
하얀 천막 아래, 지팡이 짚은 어르신들 사이로 계단을 굴러온 주정뱅이가 구원을 구하러 들어갔다.
세월의 베테랑들 사이에서 나는 가장 어렸다.
의사의 차분한 질문이 날아왔다.
"어떻게 다치셨어요?"
차마 공중부양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계단을 굴렀어요. 꼬리뼈와 다리가…"
곧 의사는 내 엉덩이 아래를 조용히 압박했다.
"아—! 아아!"
내 영혼이 내뱉듯, 뒤늦은 반성문 외침이었다.
결과는 꼬리뼈 다치고 발목에 금이 갔다.
다음 날 정형외과에 갔다.
의사 선생님은 인류 진화론을 설파하듯
“꼬리뼈는 없어도 사는 데 지장 없습니다.
참! 엉덩이는 깁스 안 돼요."
'방치'가 유일한 처방이었다.
세상에는 고칠 수 없는 곳도 있고,
버티는 수밖에 없는 통증도 있다.
지금도 꼬리뼈가 툭 튀어나온 채로 산다.
욕쟁이 친구는 내 결혼식 때 부케도 받으며
인연을 이어갔다.
그런데... 몇 년 뒤.
내가 인생 전부를 걸고 운영하던 가게에서
욕쟁이 친구는 손님들 앞에서도 거침없이 욕을 내뱉었다.
출입구부터 아버지뻘 손님에게도 거리낌이 없었다.
"아 쓰바 졸라게 늙었네. 뭘 봐! 개시꺄!"
한두 번은 참았다. 이 친구의 언어니까. 나를 아끼는 방식이 원래 거칠었으니까.
세 번째, 나는 터졌다.
"야! 여기가 놀이터야? 너 그러려면 나가!"
"아 쓰발 왜 화내는데! 내가 뭘 잘못했는데!"
친구는 끝내 몰랐다.
계단을 굴러도 술을 사 오던 내가,
욕쟁이의 진심을 안주 삼던 내가 웃어넘길 수가 없었다.
그 욕은 더 이상 친구의 언어가 아니었다.
우정이 내 삶을 침범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조용히 문을 닫았다.
그날로, 난 우정보다 생계를 택했다.
욕 빼곤... 그 친구가 그립다.
결국, 그게 정(情)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