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복수
나에게 엄마는 이해하는 존재가 아니라
끓는 피로 도착하는 감정이었다.
엄마의 김치 가져가라는 호출로 본가에 갔다.
내가 독립해서 살았던 이유는
오빠가 7살 연령에 멈춰있었고
동생은 술만 마시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 했기에.
가족은 안식처가 아닌 위협이었고,
나는 늘 도망칠 준비를 해야 했다.
숨 쉬는 것도 사치였고 언제든 업고 뛰기 위해,
늘 응급실로 달려갈 비상금을 준비하고 다녔다.
엄마는 내 손을 잡으며 조심히 입을 열었다.
온기보다 굳은살의 촉감이 먼저 느껴졌다.
“너라도 인간답게 살고, 시집가서 행복해야 하는데.”
“엄마! 시집은 무슨... 엄마 옆에서 항상 도와줄게"
엄마는 버거운 생계형을 넘어 생존형이었고,
딸은 엄마 팔자 닮는다며 머뭇거렸다.
그때 집전화가 따르릉 울렸고
엄마는 통화가 끝나자마자
이내 시작된 서러운 울음. 그것은 소리라기보다 평생을 짓눌러온 삶의 무게가 터져 나오는 파열음 같았다.
“엄마!! 왜 우는데? 누군데?”
“나… 내일부터 식당에서 나오지 말래. 흑흑 ”
“그곳 일주일 밖에 안 됐잖아! 갑자기 왜 자른 건데?”
“주방장이 사람들 앞에서
내가 말길을 못 알아듣는다면서 손을 밀치고…
그동안 매일 구박했어. 그래서 따졌더니
나보고 멍청해서 그런다며 … 흑흑 ”
결국 주방장 여자가 사장에게 일러서
엄마를 내보낸 거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니 정확히 울 엄마를 울리고
무시했다는 이유 하나로 용광로처럼 뜨거워졌다.
“이것들이 미쳤네! 엄마, 내가 당장 갈게!”
“뭐? 가서 어쩌려고!”
“일단 내가 가서 일할게. 딸인 건 숨기고.
설거지든 뭐든 다 할 테니까 나 만나게 해 줘!”
다음 날, 비장의 각오로 엄마 집에 찾아갔다.
어랏! 어제 울던 사람 맞나 싶게 얼굴에
화색이 돌고 있었다. 나만 잠 못 잤나 싶었다.
곧 엄마는 흥분하면서
“내가 사장님한테 , 전에 같이 일하던 아가씨 있는데
주방일을 아주 야무지게 잘한다고.”
“그랬더니?”
“내일 당장 보내라고 하더라. 소개해줘서 고맙다고,
일한 것보다 돈도 더 주셨어. 하하 ”
그렇게 나의 이중생활이 시작되었다. 레슨과 학교 강사라는 타이틀은 오후의 몫으로 미뤄둔 채,
오전에 나는 이름 없는 주방 보조가 되었다.
예상보다 계획은 잘 풀렸고 첫 출근을 시작했다.
IMF후폭풍시절, 사장은 넥타이를 매던 손으로 국자를 들게 된 사람이었다. 식당과 포켓 당구장도 운영했다.
성격은 호탕했고, 일당도 업계에선 최고였다.
하지만 페이가 센 만큼 점심시간은 녹초가 됐다.
삼성역 앞 직장인들이 쓰나미로 밀려들어오기에.
홀에서는 주문받은 메모지를
주방 입구창에 날아가지 말라고 찬물을 적셔
줄줄이 붙여줬다. 벽면을 가득 채우는 속도만큼
내 심박수도 빨라졌다.
보조인 내가 그걸 빠르게 정리해서
여 주방장에게 전해주고 가스불위에 뚝배기를
집게로 옮기며 소리 지르는 몫이었다.
"3번 테이블! 15번 테이블!! 가세요!"
처음에는 모기 목소리였지만 엄마를 생각해서
창피고 뭐고 뵈는 게 없이 우렁차게 질러재꼈다.
손, 입은 빨라야 했고, 머리회전도 더 빨라야 했다.
엄마는 이 부분에서 자주 막혔다고 했다.
키오스크도 없던 시절,
홀 번호와 메뉴를 머릿속에서 동시에 굴려야 했고,
조금만 늦어도 욕이 바로 날아왔고 주눅 들고...
가스 옆에는 야채, 양념, 재료들이 줄줄이 대기,
냉동고에는 생선, 부대찌개, 육류 정체 모를 것들까지
전부 준비돼 있었다.
주방장이 하는 걸 초 집중력으로 외웠다. 오직 복수로.
나는 그걸 보자마자 사람이 아니라
스캐너가 되어 따라 했다.
삑.
한 움큼.
삑.
한 숟갈.
가스 불?
눈으로 조절했다.
여주방장 손이 움직이기 전에
이미 내가 먼저 움직였다.
그녀의 시선이 머무는 곳, 손길이 향할 궤적을 나는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보조가 아니라
예언자였다.
“그거 찾으시죠?”
이미 들고 있었다.
나는 소싯적 투포환 선수 출신이었기에
무거운 냄비? 쌀 포대기? 김치통? 으라쌰사!!
다 들었다. 아니, 던질 뻔했다.
몸이 아니라 오기로 움직였고,
나를 번개돌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번쩍번쩍.
다음 날도 비장의 각오로 출근했다.
내 직함은 보조. 주방의 가장 낮은 곳에서 찬모와 밥모, 주방장의 수발을 들며 발바닥이 타들어 가게 질주하는 보직이다.
임진왜란 한 복판의 난리급 피크타임은
땀인지 육수인지 다 젖었다.
그 뜨거움조차 나에게는 복수를 위한 연료일 뿐이었다.
나는 비로소 엄마를 울렸던 그 세계의 중심에 서 있었다.
몇 번이고 고무장갑 내던지고 집에 도망가고 싶었다.
'울 엄니..엄니는 여태 얼마나 힘들었을까...'
한바탕 점심 전쟁이 끝나자, 여주방장이 고기를 내오며
“이 아가씨, 보통 손이 빠른 게 아니에요.”
그러더니 테이블에 젓가락을 탁 치며 사장님에게
“요즘처럼 점심시간이 수월한 적이 처음이에요.
개업 이후 쉬어 본 적이 없는데, 이제 저 하루 쉴게요"
주방장은 한 술 더 떠 홀 언니를 부르며 말했다.
“방 좀 따뜻하게 데워놔!
번개돌이 한 시간이라도 자고 가게 해.”
어랏. 싸우러 왔는데... 적장의 환대를 받다니.
이상하게 말려들었다.
다음 날, 그다음 날도 출근하는 게 신났고
일당은 차곡차곡 모아서 엄마에게 줬다.
식당에는 설거지하는 사람들이 매일 바뀌었다.
IMF 직후라 어제까지 사모님 소리를 들었을 법한 이들이 화려한 장신구를 빼두고 서툰 손놀림으로 식칼을 잡았다. 비극과 생존이 공존하던 기묘한 시절이었다.
어떤 아줌마는 동태머리 자르다 말고
아이 학원비 벌러 나왔다며 하소연하곤 울었다.
그럴 때면 옆에서 동태 내장도 버려주며
필살기 몸개그로 웃겨줬다. 엄마 같아서...
나는 한 달만 하고 주방장한테 따지고 나갈 생각이었다.
면전에 대고 사자후를 내지르는 것.
“ 아줌마!! 제가 그때 엄마 괴롭혔던 분 딸인데요.
인생 그렇게 살지 마세요!!”
그 통쾌한 한 방만을 꿈꾸며 매일 독을 품었다.
하지만 주방장은 내 시나리오를 자꾸만 엉뚱한 방향으로 끌고 갔다.
퇴근할 때마다
“이리 와봐. 혼자 사니까 반찬도 없지?”
나만 따로 이것저것 늘 챙겨줬다.
고약한 성질머리가 아니라, 뜻밖의 온기가 담겨 있었다. 복수의 칼날이 자꾸만 무뎌지고 있었다.
거기다가 홀에는 사장 처형이 카운터에서 일했는데
마침 면허 따고 운전에 한참 맛을 들여서
아침부터 집 앞까지 와서 출퇴근을 태워줬다.
전용 기사를 둔 셈이 됐다.
사장님도 수입 화장품으로 선물 주며 살뜰히 챙겼다.
그뿐인가?점심 전쟁이 끝나면 풍경은 더욱 근사해졌다.
처형언니는 압구정 카페 가서 헤이즐럿을 사줬다.
사장님 포켓 당구장도 데려가 초크를 칠하며 큐대를 겨누는 법을 가르쳐줬다.
이쯤 되면 난 일하러 온 게 아니라 지분 갖은 이사?
몇 개월뒤 결혼 준비로 그만두게 된 날,
여주방장에게 고백했다.
“저… 그때 주방장님이 뭐라 하시고 잘랐던
루달엄마 딸이에요. 제가 루달이에요”
“엄훠, 그... 어떻게 된 거지? 어머님 잘 계시지?
사실 남편이 보증 잘 못서서 1억 빚 때문에 나도 식당 나온 거야. 예민했었어. 엄마에게 죄송하다고 꼭 전해줘"
엄마는 그 얘기를 전해 듣고 스르르 다 풀렸다.
“나는 설거지만 잘하지, 애초에 그런 일머리는 없어.”
오히려 너털웃음을 지으며 상처에서 자유로워졌다.
시간이 흘러서 내 결혼식에 식당 사장님, 주방장 홀 직원들이 모두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셨다.
그날 울 엄마는 신부보다 더 이쁘다는 말을
들을 정도의 꽃단장을 했었다.
여 주방장은 고개를 숙인 채 엄마의 두 손을 잡았다.
"루달이 어머님 축하해요. 딸 잘 키우셨어요"
그것은 내가 꿈꿨던 그 어떤 서슬 퍼런 복수보다도 훨씬 더 뜨겁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복수였다.
그 해프닝 이후 굳이 요리학원 대신 식당에서 배운 솜씨로 시집가서 큰 도움까지 됐다.
김치는 여전히 땡!못 담지만...
훗날 나 역시 자영업자가 되었을 때, 나는 가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주방의 직원들을 바라보곤 했다.
저들은 누군가의 소중한 엄마이자, 한 가정의 귀한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내가 겪은 뜨거운 열기가 타인에게는 상처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 엄마의 눈물로부터 내가 배운 가장 큰 교훈이었다.
아름다운 복수
당신이 남기고 간 말들,
벽에 붙어있던 그림자까지
조용히 떼어내
아무 일도 없던 방으로 돌려놓았다.
그리고
나를 다시 놓았다.
당신도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