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외로운 물새
1986년, 미역국 냄새 날씨
'따르르릉 따르르릉 '
저녁에 엄마가 전화를 받으셨다.
" 여보세요~네~고모님. 네? 모레요? 알겠어요."
목소리 톤만 봐도 안부 전화는 아닌 것 같았다.
" 너희들 모레 큰 고모가 경포대 바닷가 데리고 간데"
" 우와 우와~~! 바닷가 가는 거예요? 와!"
" 아싸라비아 ~오예!"
" 나도 나도 바닷가 깔깔깔"
가뭄에 콩 나듯 세 남매가 한 마음으로 뭉쳤다.
바다에 처음 가는 거라서 순간 잔치판이 됐다.
그리기 숙제 때에도 바다를 그리면 꼭 넣었다.
무지개, 모래사장, 불가사리. 파도. 파라솔.
캬~상상으로 그리던 그 바다!
내 머릿속에서 파도 BGM이 자동 재생된듯했다.
나는 마른 인형이 있었으면 갖고 가고 싶었지만
현실은 내 몸뚱이 하나도 벅차니깐 패스.
하지만 7살 때 집 앞에 워커힐 수영장 갔던 게
전부여서 수영복이 없었다.
엄마는 시장 가셔서 오빠. 동생 수영복을 사 오셨다.
" 내 거는? "
" 아동용 수영복은 너한테 맞는 게 없어. 내 거 입어"
"아니~그래서? ⋯ 알았어"
내가 상상하던 인어공주가 올려다가
꼬리로 툭툭치고 다시 도망가는 느낌이었다.
내 몸을 반품할 수도 없고 빨리 단념했다.
드디어 경포대 해수욕장 가는 당일날.
구충제를 주시며, 회를 먹을지 모르신다고 하셨다.
엄마가 드시고 싶은 낌새였다.
큰고모네 여섯, 우리 넷, 막내고모네 둘.
열두 명이 한 묶음처럼 우르르 굴러갔다.
연필 한 타스가 굴러가는 건지
흥부네 식구가 나들이 나온 건지 모를 지경이었다.
차가 밀리든지 말든지 우리 삼 남매는 발 구르고
요구르트 쪽쪽 빨다 보니 경포대에 도착했다.
야호! 우와 ~ 드넓은 바다를 한 눈으로 담기 벅찼다.
철퍼덕철퍼덕 파도소리, 알록달록 파라솔.
'냉차'라고 써붙인 널빤지를 목에 건 아저씨.
해변가는 피서객으로 북새통이었다.
엄마는 천막 친 탈의실로 델구가서
빨간 수영복을 입혀주셨다.
그냥 군소리 안 하고 가만히 있는데
"딱 맞네 호호. 근데 이건 뭐야? 목에 때 봐! 좀 씻자!'
내가 일부러 때를 숨겨놓은 것도 아니고,
이것들이 경포대 까지 쫓아와서 야단만 맞았다.
엄마는 꽃무늬 수영모를 씌워줬다.
거울을 보니 얼굴만 어른, 몸은 아이인 내가 있었다.
큰 고모는 아이들 배고플 거라며
휴대용 부르스타를 꺼냈다.
엄마는 아이스박스에 잔뜩 있는 음식을 뒤적뒤적.
짐 많은 정도가 거의 피난민급이었다.
" 얘들아 밥 먹고 또 놀아!"
신문지로 싼 삼겹살을 꺼내시고 굽기 시작하셨다.
파도소리 들으면서 먹는 삼겹살은
진짜 사람 잡는 맛이었다.
불판 지글거림 위에 삼겹살,
상추에 고추와 생마늘을 얹어 한입.
바닷소리랑 같이 씹히는 맛이었다.
이대로 바닷가에 눌러살고 싶었다. 삼겹살과...
사촌언니들이랑 막내고모는
나잇대가 비슷해서 자기들만의 세계가 있었다.
빨간 카세트 틀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TV에서 들어본 것 같은 빠다노래.
"저 빠따에 누워 외로운 물새 될까 띱띠리 띠..."
집단으로 체면 걸린 듯 강시놀이 하는 것 같았다
나도 괜히 몸이 들썩거려서
끼어 놀겠다고 막춤을 추며 능청스럽게 갔는데,
눈빛이… 그냥 ‘귀찮음 덩어리’ 그 자체였다.
나도 어른 언니가 되어 같이 놀고 싶었는데.
내 모습은 엄마 원피스 수영복에 아이 수영모.
한쪽은 성숙 과속, 한쪽은 아기 필터였다.
이 어정쩡함이 괜히 슬펐다.
소나무 한그루 친구 삼아 햇빛을 피하고 있었다.
놀러 와서도 오빠랑 동생끼리,
고모랑 사촌 언니들도 끼리끼리.
어른들도...
기분 잡칠 대로 다 잡쳤었다.
한참 후
나 따돌리고 자기네 들만 놀아서 미안한지,
막내고모는 계속 “사진 찍자!”며 들이댔다.
" 너네 엄마가 너 사진 찍어주라 했어. 빨리 여기 봐!"
헉 나만의 착각이었다.
날 위한 초대가 아니라 사진 한 장을 위한 호출이었다.
“하나 둘 셋, 김~치!”
이상하게 사진 찍을 때마다
이놈의 손은 자동으로 V를 만들었다.
뚱뚱한 몸을 양손 V로 가리긴 역부족이었다.
튀어나온 토마토도 작아 보이려고
몸을 꼬고 어깨도 수그린 채 포즈를 취해줬다.
손가락만 빼고 나머진 공중부양 됐으면 했다.
엄마는 바다 깊게 들어가지 마라고 신신당부하셨다.
난 애당초 수영을 못해서,
파도가 모래까지 '날름날름' 하는 선에서만 놀았다
그때 오빠랑 동생이 나를 뒤에서 들이박았다.
웬만해선 넘어지지 않는 덩치인데, 물에 빠져버렸다.
까만 물속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물은 코에 들어가고 귀까지 먹먹했다.
눈을 떠야 할지 말아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
다른 세상 갔다 온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내가 만신창이 된 것도 창피한데 화까지 치밀었다.
깔깔대고 웃는 저 인간들이 적군으로 느껴졌다.
거기다 나는 죽다 산 것 같은데 딸이 맞는지,
엄마는 멀리서 부채질만 하시고 웃으면서
" 얘들아 이제 그만 놀고 수박 먹자!!!"
아주 뭐가 그리 신난 건지 저들은 장난기가 터졌었다.
" 알게뜹니다요~ 어무이"
아주 말소리 자체가 짜증 났다.
엄마는 수박을 꺼내서 반을 가른 뒤 썰고 계셨다.
저들에게 뺏길 수 없어서
잽싸게 통째로 가져다 끌어안고, 숟갈로 퍼먹었다.
내 영역을 침범 못하게
민속 부적처럼 수박씨 4개를 이마에 붙이고선.
사방팔방 아무도 건드리지 말라는 표식이었다.
그렇게 수박을 쓰나미처럼 흡입하는데, 엄마는
"루달아! 아후 창피해. 놀러 와서까지 식탐을 내니!"
아니, 오빠랑 동생이 날 물에 빠뜨린 건 혼도 안 나고?
그러거나 말거나
수박씨 부적인지, 저들은 먹을 때 근처도 안 왔었다.
그날 밤은 오줌도 안 쌌다.
상황에 비해 너무 착실한 나였다.
바닷가에서 실컷 먹다가 온 기억만 안고선,
담날 오후 늦게 서울로 출발했다.
고속도로에는 차들이 구역구역 막혀서 멈춰 있고,
창밖에는 아이들이 차뒤에서 오줌 싸고,
뻥튀기 파는 아저씨가 창문 사이로 손을 들이밀고.
그렇게 구경만 한 것 같은데 밤은 깜깜해졌다.
동양화에 나오는 보름달빛은
우리 삼 남매 얼굴에 비추어 줬다.
엄마는 구충제까지 먹었는데
회를 못 드셔서 삐져서인지, 창밖만 바라보고...
긴 밤을 통과해서 새벽쯤 집에 잘 도착했다.
졸린 눈으로 내 방에 밀려 들어왔다.
척추가 먼저 꺼져서, 그냥 납작이처럼 침대에 붙었다.
어제 수박씨 부적 하나에
오빠·동생이 얼씬도 못하던 게 떠올랐다.
그래서 다음 수박 먹을 땐 아예 무당벌레처럼
더 강력한 부적을 붙여야겠다고 혼자 낄낄댔다.
' 이 인간들은 수박만 봐도 몸부터 굳을 거야'
그 상상 하나로 기분은 괜히 좋아졌고,
그 상태로 바로 곯아떨어졌다.
외로움을 타는 아이는
자기만의 스펙트럼으로 돌파하려 했네요.
언제든 버려질 수 있다는
무의식적 불안감 때문에
다른 사람을 찾거나
무언가에 몰두했고요.
외로운 물새처럼.
이제야 낡은 사진들만이
제 기억의 감정을 또렷하게 불러옵니다.
이젠 아무도 바닷물에
저를 밀어 넣지 않는 나이가 됐어요.
내년 여름엔 누군가와
가위바위보를 해서라도
바다에서 한 번 밀고 빠지는
추억 한 장, 적금 들 듯 만들어야겠어요.
그 순간들을 보며
은근히 웃음이 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