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사투리 김장
1986년, 팥죽 하늘
울 집 마당엔 라일락, 목련, 접시꽃나무가 있었다.
봄에는 향기로 가득했지만,
꽃잎이 모두 떨어지고 가지가 앙상해질 무렵이면
집안엔 다른 계절이 시작됐다.
바로 김장철.
해년마다 엄마는 김장을 하시면,
마당에서 100 포기를 하셨다.
이번엔 150 포기하신다며 어제 미리 절구어 놓으셨다.
서울에 사는 넷째, 다섯째 이모도
김장 소식을 듣자 바로 집으로 왔다.
이모들이 오실 때면
엄마의 과거를 들을 수 있어서 괜히 들떴었다.
이모 이름은 삼순, 사순, 오순…엄마는 막내.
아들 보려고 첫째, 둘째 이모는
남자 이름으로 지었다고 하셨다.
광주에 사는 나머지 이모들은 못 왔지만
서울 라인만 와도 마당은 이미 북적였다.
“오메 오메 잘 있었는가?”
“아따 추운 게, 싸게 싸게 끝내 불자고잉.”
“야 있냐 시방 뭐단다고 배추를 겁나게 시켜부런냐잉?”
"긍게 거시기 이짝 저짝 나눠 무글라고 그라제"
"야가 쪼매때부터 손이 커 부러서 솔찬히 한 것이제"
울 엄마는 둘 다 구사했다.
표준어와 사투리.
이모들 말투는 리듬과 악상이 선명해서 흥미로웠다.
그래서 나도 껴서 놀고 싶었다.
"아야 니가 루달이다냐? 워메 귄 있게 커 부러 따잉"
"인자 유각년 돼 부런냐?"
"히히.네 저도 옆에서 잔 심부름 도와드릴게요"
본격적으로 전투복을 챙겨 입기 시작하셨다.
난 옆에 딱 붙어서 타이밍 맞춰 손으로 먹어댔다.
" 아야 저 무 대굴빡 좀 갖고 와부러라잉 "
" 아따 게려워 모가지 좀 근거 봐라. 삘한거 무든게"
" 루달아 수도꼭지 쪼메 잠거 부러!"
" 웜메 그라제 거시기 잘해 불고마잉"
이쪽저쪽 심부름도 사투리 듣는 것도 흥이 났다.
이모들은 손이 다 빠르셨고,
전날 엄마가 혼자 배추를 절였기에 금방 끝났었다.
" 인자 돼 쓴 게 방에 드가서 괴기 삶아 무거불 자잉"
미리 준비해던 생굴 하고 보쌈을 싸드셨다.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난 그냥 같이 빨려 들어갔다.
" 워따 막내야 뭐단다고 겁나게 삶아 부렀냐?"
" 야가 옛날에도 떡 먹으러 밤중에 산을 넘어가땅게"
" 그란게 떡순이제~"
" 엄니가 잔치집에 장구 치다 쟈가 와서 기절하뻔 해 써라"
난 옳거니, 엄마 비밀을 하나 꽉 잡은 것 같았다.
엄마도 식탐 과욕. 아자뵤~!
계속 오손 도손 얘기하며 과거를 소환시키셨다.
배부르게 다 드신 거 같았으나,
보쌈은 결국 위장을 위한 아침 자율학습이었을 뿐이다.
"시방 인자 밥무거야 것제"
" 참말로 그라제~ "
" 워쩌쓰까잉 밥을 모대 쓴 게 짜장면 시켜 불자고"
" 야있냐 거시기 전화부책 좀 갖고 와라잉 "
난 두꺼운 전화번호책을 쪼르르 갖다 드렸다.
" 혹시 모릉게 한 그릇 더 시켜 불자고"
"그라제 거시기 한거보다 나불제~"
"시방 이천 오백 원 여기 있어브러. 나가 살랑게"
"아야 루달이 니눈 싸게 싸게 거시기 혀부러라 "
"뭔 소리당가?거시기는 나가 살랑게 거시기 집어노소"
동네 대동각 중국집은 미사일급으로 빨리 왔고,
여기저기서 후루룩 후루룩, 현악 삼중주 같았다.
난 짜장면을 별로 안 좋아해서, 속도가 뒤처질 때
" 아따 왜 깨작거린다냐? 엄니가 살찐다고 구박헌다냐"
" 느그 엄니도 옛날엔 허벌나게 살쩠었다잉."
"그란께 일찍 서울 와가꼬 겁나게 빠진 거제."
" 긍게 걱정 붙들어 메고 싸게 싸게 묵어 브러"
아싸 또 하나 잡았다.
엄마 비밀 수집 성공.
그리고 엄마는
"시방 저나 왔는데 큰 언니 딸 온다혀요"
"고년은 뭐 한다고 싸 거 빠지게 다해 분 게 온다냐?
"강화도 순무 갖고 와 분다는디?"
"뭐라 고라고라?그라믄 싸가지는 쪼까 있어 불제"
한 참을 얘기 하시더니
" 밥 무꼬 커피를 안 마시면 거시기 해분당게 "
" 은뉘도 그라당가? 나가 안마셔불면 껄적지건 해부요"
" 뭐 단다고 가만히 있냐?거시기 가꼬 와부러라잉"
나도 코코아를 타서 슬쩍 끼어 앉아 마셨다.
이모들의 웃음소리는 화통하셨다.
" 우하하하 "
" 막내 쟈는 어릴 적부터 철딱서니가 없어부러써"
"그것 뿌니간디?개구저가지고 손톱도 뿌러져잖여"
"워쩌쓰가잉 기억이 안 나는디 어디서 굴러 분거가텨"
" 아따 구르긴 무시 굴러. 사내 시끼들하고 쌈박질했지"
아싸 잡았다 또!
오늘 금 캐는 날이다.
그때 '지지직~ 지지직' 대문 벨이 울렸고
이종 사촌 언니는 순무와 셈베이과자를 들고 오셨다.
" 시방 왜 인자 다해논께 온다냐?"
" 미안해 이모. 정서방이랑 농사지은 거 싸왔어"
그렇게 여자 5명이 둘러앉아 다과를 즐기시다,
버스 끊기기 전에 가실 차비를 했다.
엄마는 김치를 보자기로 싸서
나눠 주시고 순무도 챙기셨다.
"워따 시방 배때기만 부르고 잘 무꼬 가분다잉"
" 잘 지내 루달아 언제 한 번 강화도 놀러 와"
" 거시기 며도일이 향우회인지 미리 게르쳐 줘불고"
" 잘 쨈매고, 참말로 고생 혀부러써 조심혀들 가소"
" 안녕히 가세요"
휴 가셨다.
난 너무 피곤해서 침대에서 뻗었다.
김장인지 먹방인지 헷갈리지만,
엄마의 비밀을 채굴해서 기분이 좋았다.
내일 일어나면 꼬치꼬치 더 물어봐야겠다.
사계절에 한 번씩 김장을 했으면 좋을 것 같다.
말투가 거칠어도 잔잔해도,
결국 마음에서 나는 온기만 보이게 되네요.
이모들 보고 싶다.
허벌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