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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왜 그랬을까

13. 채변 검사

by 루달


주 의!

오늘 글에는 채변검사 장면이 등장합니다.

스크롤 내리기 전, 마음 단단히만 해두면 충분해요.

핸드폰 잃어버리는 것보다 덜 충격이긴 한데

그래도 ㅇ경보 ON 켜둡니다.




1986년, 은행잎이 나리던 날


수업 시작 벨로 '소녀의 기도' 멜로디가 울렸다.

"띠리리 릴 리 리- 리 릴리리"


아이들은 잠이 덜 깨서 정신이 로딩 중일 때,

채변 검사한다고 봉투를 돌려줬다.

겉은 누런 종이, 안은 하얀 비닐.

선생님은 괜히 엄포를 놓았다.


" 지금 나눠주는 거 뭔지 알지? 신선할 때 담아와 "


"어~후 ~~"


단체로 탄식했다.


"봉투 뒤에 주의사항 잘 읽고 반드시 본인 대변으로!"

"네~엡 !"

벌써부터 힘주듯 대답했고,

물맛난 개구쟁이들은 '똥똥' 거리며 장난쳤다.


“주~목! 너희들 된장 넣어오면 선생님이 다 알아.”

누가 보면 된장 마니아 잡는 수사관인 줄...

채변 봉투 뒷면을 잘 읽으라고 강조하셨다.


아이들이 실컷 떠들고 나면,


"라 리라 리리 리 리 리~~ "

'엘리자를 위하여' 벨소리로 수업이 끝났다.


주워진 시간은 3일이었다.

평소에 속 편해서 잘 나오니까,

'아 그냥 오늘 바로 만들어?'

밤톨 채집을 자신 만만해하며


집 가는 길에 순대 먹으러 갔다.

근데 썬 순대는 왜 이렇게 맛이 없는 건지...



아줌마 저 아시죠? 썰지 말고 그냥 주세요.”

찐으로 ‘통순대 원픽’이었다.


어떤 날은 간만 조용히 음미하고 싶어서

“간만 주세요."

그 짧은 시간이 내 미니 힐링이었다.


"다음엔 말 안 해도 썰지 말고 주세요"

"아이고 알겠다 또 와"


그렇게 먹고, 피아노 학원 찍고 집으로 돌아왔다.

본격적으로 수거 작업을 들어갔다.


다락에 쌓아둔 신문지 두 장을 꺼내 들고

베란다 계단에 나가서

나만의 ‘작품 제작 스튜디오’를 세팅했다.


아차. 달력도 몇 장은 뜯어놔야 한다.

수거하다가 찢어먹으면 대참사니까.

뜯은 종이는 신문지 위에 차곡 올린다.


해 년마다 두 번씩,

짠 밥이 늘면 달인이 된다.


자 인제 쪼그려 앉아 작업을 시작한다.

다리 저릴 땐 코에 침을 발라 기적 있길 빌며 버틴다.

신문지에 균형 맞춰 앉아야 할 땐,

다시는 이런 거 안 하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근데

이상하게 긴장해서 그런지

출력이… 안 됐다.

순대도 먹었는데 그럴 리 없다.

다시 한쪽 손으로 벽을 짚고, 집중해서 낳았다.


올해는 작년의 악몽을 만들기 싫어서
드디어 나무젓가락을 '집도 도구'로 쓰기로 했다.


성냥으로 건지려다 손에 묻었기 때문이다.

그날의 PTSD 오던 것을 떠올리며,
심호흡 한번 하고 몰입을 했다.


젓가락은 거의 외과용 집게처럼 움직였다.
각도 잡고, 살짝 벌리고,

표적을 조용히 딱 집는 순간
'이번엔 성공이다' 싶은 해방감.


손에 안 묻었다.

그 사실 하나면, 이 집도는 승리였다.


크기가 쥐똥 피규어 같고

심지어, 내 건데도 정 하나도 안 갔다.


떨리는 손으로, 마지막 관문인

하얀 비닐에 조심히 담았다.


마무리는 불로 지지는 게 정석이지만,

올해는 과감히 패스했다.

실로 꽁꽁 묶어 탈출을 막았다.


이제 마지막 피날레 부분만 남았다.

주민등록증만 한 노란 봉투 안에

작품을 담듯 슬쩍 넣었다.

국립중앙박물관보다 내가 더 조심스러웠다.


1986년 채변검사 컬렉션 1호,
베란다 작업실에서 공식 완성이다.


책가방에 눌리지 않도록 살살 넣었다.

동침하는 건 용납이 안 돼서 현관문 앞에 두고 잤다.


다음날 아침,

친구들에게 나만의 것이

민망해서 일찍 등교했다.


그런데 이미 복도부터 익숙한 향기가 훅 올라왔다.

헌금 주머니처럼 생긴 곳에

신성하게 밀어 넣었다.


숨을 엇박자로 쉬어도

지옥 냄새가 들락날락했다.



교실에서 아이들은

산고의 고통을 나누듯 떠들었다.


" 너네 어제 나왔어? 난 동생 거 건져서 갖고 왔어"

" 난 우리 엄마가 도와주셨어"

" 난 설사 나와서 못했어"

" 말도 마 난 변비라서 벽 보고 빌었어"

" 아뵤 난 한 방에 성공했지롱 "


서로 자기 사연을 풀어놓는 동안,

산후 조리원 같은 동지회 분위기를 느꼈다.


그때 4 분단 뒤쪽에 앉은 남자애가


" 얘들아~너희들 똥 없는 사람 이리 와"


넉넉히 봉지에 싸와서 나눠주었다.

기부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저건 진심 복 받을 일이다.


근데 난 슬슬 겁이 났다.

몸에 기생충이 있으면 큰 병인 걸까?

그래도 엄마가 봄, 가을마다 기생충약을 챙겨줘서
일단은 안심하기로 했다.


그렇게 채변수거를 잊을 즈음.

선생님이 신문지와 매를 들고 비장하게 등장하자,

정적이 흘렀다.


" 개똥 갖고 온사람은 신문지 줄 테니까 화장실로가!"

" 우하하하"

" 조용조용!! 춘장 가지고 온 아이도 화장실 따라가!"

" 우 하하하"


아이들은 몸을 비틀어 가며 웃었다.

잠시 후 선생님은

회충과 요충 있는 아이들을 일일이 호명했었다.


양호실로 가는 아이들은

몸에 벌레가 있다는 말만으로

표정이 싹 어두워졌다.

한 명은 벌레 얘기 듣자마자 가방 짊어지고

귀가하려 하자 선생님이 잡기도 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의자 끌고서,

"아까 양호실에서 주신 약 메슥거렸어"

"그럼 내 거 김치 먹어봐"

"아니야 지금은 괜찮아"

도시락 밥에 얹어진 계란 프라이를 먹으며

" 우리 빨리 먹고 나가서 다방구 하자"

" 오 예! 그래 다방구 좋지~"

오손도손 도시락을 맛있게 먹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겁먹고 밥 먹고 다방구 했더니,

하루가 끝나 있었다.
그게 그날 우리의 결론이다.


'인생 뭐 있남'



기생충 검사하던 봉투는

대장암 검사하는 봉투로

벌써 40년이 흘렀네요.

그 흔하던 신문지

낱장식 달력, 성냥

시대에 썰물로 빠져나가지만


그 분위기, 향기는

여전히 밀물로 밀려옵니다.

필요 없는 듯 보이던 추억들도,

결국은 제 삶을 지탱해 주는 힘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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