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페 먹는 아이를 보는 게 꿈
아이가 7살 때였다.
오랜만에 아이와 신나게 놀아주려고 육아시간까지 써서
평소보다 2시간이나 일찍 퇴근을 했다.
하원하고 미술학원에서 수업을 받는 아이를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차에 태워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단지 내에 놀이터에는 또래 아이들 여러 명이 뛰어놀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더니 같이 놀고 싶었다며 차에서 내리자마자 곧장 달려간다.
아빠가 보고 싶어서 일부러 일찍 퇴근한 걸 아는지 모르는지 벌써부터 요럴 때 살짝 섭섭해진다.
아이는 처음 보는 아이들과도 곧 잘 어울렸다.
그렇게 해가 질 무렵까지 한참을 놀았다.
저 넉시간이 다 돼서 이제 그만 놀고 집으로 가자며 아이를 불렀다.
내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어디선가 나타난 아이는 입에 무언가를 오물거리며 씹고 있었다.
"재혁아, 뭐 먹어?",
"응, 아무것도 안 먹어"
부모의 무서운 직감으로 뭔가 이상함이 느껴졌다.
아빠와 제대로 눈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고 말끝을 흐린다.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다.
같이 놀던 아이에게 무언가를 받아서 손에 들고 다니는 것을 보았지만
그냥 주니까 받아서 들고 있겠거니 생각했었다.
이제는 혼자서도 음식에 붙어있는 성분표를 보고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 성분을 알 수 없는 음식은 함부로 먹지도 않았고, 먹겠다고 떼를 쓰지도 않았기 때문에
설마 처음 보는 음식을 확인도 없이 먹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아이가 아빠 모르게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안 먹었다고 난생처음으로 거짓말까지 했다.
정색을 하며 물어보는 아빠에게
"응 내가 성분표 봤어, 사과밖에 안 들어갔어"라며
건성으로 대답하고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했지만,
한편으론 그동안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었던 음식을 참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는 생각과
지금껏 군소리 없이 잘 따라준 아이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어서 더 이상 아무 말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은 후, 2시간쯤 지났을 때였다.
갑자기 눈이 가렵다며 양손으로 심하게 비비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양쪽 눈의 흰자가 심하게 부풀어 오르고,
얼굴과 온몸에 여기저기 붉은 발진이 올라왔다.
평소에 자주 보던 흔한 발진과 조금 달랐다.
다행히 스테로이드와 향히스타민제 만으로 알레르기는 어느 정도 진정 되었지만
평소보다 심한 발진에 아이도 나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항히스타민제는 효과는 좋지만 아직 어린아이에게는 독해서 먹고 나면 컨디션이 다운되고, 기운이 빠진다. 약에 취해 잠이든 아이를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어느덧 두툼해진 양쪽 다리를 보니 언제 이만큼 컸나 싶은 생각이 든다.
오늘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몰래 먹었던 것은 바로 우유가 들어간 젤리였다.
다음날 아이에게 말했다.
“아들, 먹는 건 괜찮아, 그런데 뭘 먹었는지는 아빠가 알아야 혹시 문제가 생기면 제대로 대처를 할 수 있어”, “몰래 먹었더라도 꼭 엄마, 아빠 가까이 있는 곳에서 먹어"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이는 갑자기 내 배에 얼굴을 파묻었다.
내가 한마디 더 하려고 하자 이번엔 더 깊숙이 얼굴을 파묻으며 고개를 숙였다.
어쩌면 아빠의 따끔한 야단이 없더라도 아이는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너무 잘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 가장 큰 소망은 아이가 뷔페집에서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는 걸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