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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디가꼬 Sep 19. 2024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뷔페 먹는 아이를 보는 게 꿈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는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 한지도 1년이 지나 9살이 되었다.  

그동안 우유는 유발검사 후, 데운 우유 200g의 증량 기를 모두 통과했고, 1년 간의 유지기도 거쳤다.

그때 우리는 우유가 최종적으로 통과된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다시 병원 진료 날짜가 잡혔다. 

이번엔 데운 우유가 아닌 생우유로 다시 유발검사를 통과해야 

최종적으로 우유 통과 판정을 받을 수 있었다. 

그만큼 과정도 어려웠지만 다른 음식보다 치료기간도 길었다.   


 오늘 검사는 아내가 아이와 함께 가기로 했다. 

총 4단계에 걸쳐 생우유 총 201cc를 먹어야 통과할 수 있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아침에 눈도 못 뜨는 아이를 들쳐 엎고 아내의 차에 태워 병원으로 보냈다.

도착할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무 소식이 없어 걱정 스런 마음에 직접 전화를 걸었다. 

아내는 올 것이 왔다는 듯 짧은 시간에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오늘도 일정이 순탄치 않았던 모양이다. 

가는 길에 내비게이션을 잘못 봐서 3번이나 같은 길을 돌아가는 바람에 

예정된 진료시간 보다 늦게 도착했단다. 

혹시 진료를 못 받게 될까 봐 아이 손을 잡고 뛰다가 어깨에 맨 가방 끈이 떨어져 

가방 속 물건이 바닥에 쏟아지고, 아이는 넘어지면서 바닥에 싸대기까지 맞았단다. 

예약한 시간보다 20분이나 늦게 도착해서 통사정을 하고서야 겨우 치료가 시작됐고, 

지금은 1단계로 생우유 1cc를 먹고 경과를 관찰 중인데 목이 조금 간지럽단다. 

오늘은 생우유 1cc, 20cc, 40cc, 140cc를 4단계에 걸쳐 총 201cc를 먹어야 하는데 

이제 겨우 1cc를 먹고 간지럽다니 140 ccc를 먹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포기하고 있었다. 

     

검사가 끝나갈 무렵인 오후 12시쯤 아내에게 카톡으로 문자가 왔다. 

”여보, 지금 생우유 4단계 140cc 먹고 관찰 중“  

마지막 단계만 남겨 놓고 있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두 손 모아 기도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우리 가족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병원에서 생우유 최종 통과라는 판정을 받았다. 

아내도 나도 실감이 나질 않았다. 

검사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동네 마트에 들러서 요구르트까지 사가지고 왔단다. 

요구르트는 생우유를 통과해야 먹을 수 있었다. 

아내도 병원에서 생우유 최종 통과라는 소리를 듣고도 도무지 실감이 나질 않았는데, 

집 앞 마트에서 요구르트를 사서 계산을 하고 나니 그때서야 겨우 실감이 나기 시작하며 

눈시울이 붉어졌단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도 가슴이 뭉글뭉글 해졌다. 

이제는 더 이상 전자레인지에 우유를 데우지 않아도 된다. 

또 우유뿐 아니라 우유가 듬뿍 들어간 아이스크림과 과자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올해 생일에는 생크림 케이크를 먹을 수 있다. 

아직 계란 반숙이 남아 있긴 하지만 우유까지 통과되면 알레르기 3종 세트가 모두 통과된다. 

이제 그 지긋지긋한 알레르기와의 전쟁이 서서히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향후 일정은 계란반숙, 참치 유발검사가 예정되어 있고,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멸치 육수까지 통과되고 나면 흰 살 생선류(어육, 어묵, 맛살류)를 제외한 

모든 종류의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된다. 


 그동안 내가 SNS에 작성한 육아일기를 보고 함께 치료에 참여한 

블로그 이웃과 브런치 구독자들의 합류 때문인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주 2회 있던 유발검사 일정이 주 1회로 줄어들어 

그만큼 나머지 진행이 늦어지긴 했지만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는 말처럼 알레르기로 고통받는 모든 가족들이 

이 전쟁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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