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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디가꼬 Sep 23. 2024

같이 먹으니까 더 맛있다, 그렇지?

뷔페 먹는 아이를 보는 게 꿈

같이 먹으니까 더 맛있다, 그렇지?  


 2024년은 우리 가족에게 더욱 특별했다. 바로 아내와 내가 처음 만나 함께 가정을 이루며 살아온 지 정확히 10년이 되는 해였다.  문득 아내와의 연예시절이 생각났다. 세 번째 만났을 때 크리스마스이브를 함께 보내게 되었는데. 바닷가 어느 고깃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은은하게 들려오는 파도소리와 함께 앙상블을 이루는 캐럴송으로 크리스마스 분위기기 무르익었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후,  달빛이 잔잔히 내려앉은 바닷가를 걷다가 주황색 부스에서 사주팔자를 봐주는 스님 한 분을 만나게 되었다. 

 "이리 와봐요 궁합 한번 보고가?"  

우리는 이제 세 번 만났는데 무슨 궁합 아냐며, 고개를 흔들며 손사래까지 치다가 

어느새 스님 앞에 나란히 앉았다. 재미 삼아 한 번만 보라는 스님의 호객에 넘어 간척했지만, 

아내와 나는 이미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스님은 우리 둘이 만나서 결혼할 확률은 80만 분의 1의 적은 확률이며, 

태어날 아이는 행정고시를 패스할 아주 좋은 팔자를 타고난단다. 

아내는 그때 처음 '이 사람하고 결혼을 해야 되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 스님은 훗날 우리가 부부의 연을 맺는데 일등 공신이 되었다.  

 

 연애시절 아내는 주로 치즈가 듬뿍 들어간 피자 나 파스타 같은 이태리 음식을 좋아했다. 

특별히 좋아했던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아이가 태어난 후로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알레르기가 심해서 같이 먹을 수 없는 아이의 눈치를 보느라 이태리 음식은 고사하고 

외식 한 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어쩌다 하는 외식도 어쩔 수 없을 때 허기진 배를 채우는 수단에 불과했다. 

하지만 우리 부부도 사람인지라 한 번씩 집 밖에서 파는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었다. 

한 번은 백화점에 쇼핑을 갔는데 아이가 유모차에서 잠이 들었다.  

나는 그 틈을 이용해서 이 때다 싶어 아내에게   

"우리 오래간만에 맛있는 거 먹으러 갈래?"라며 외도 아닌 외도를 했다.  

그런데 그때 먹은 음식이 이상하게 연애할 때만큼 맛있지도 달콤하지도 않았다. 

아이가 언제 잠에서 깨어 울며 보챌지 모르는 일이라 눈치를 살피며 급하게 입속에 꾸역꾸역 구겨 넣었으니 맛이 제대로 느껴질 리가 없었다. 마치 이이 옆에 수족처럼 들고 다니는 커다란 도시락 가방이 맛을 느끼는 뇌까지 마비시킨 듯했다. 잠시 후, 잠에서 깬 아이를 데리고 백화점 수유실로 갔다. 도시락 가방에서 다 식은 음식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먹였다. 매일 똑같은 음식에 질릴 만도 한데,  배가 많이 고팠는지 허겁지겁 삼킨다. 그 모습에 밀려드는 죄책감으로 다시는 외식을 하지 말자고 다짐도 해본다.     

 

 10주년 결혼기념일, 아내가 좋아했던 바로 그 레스토랑을 아이와 함께 다시 찾았다.  

드디어 아이도 계란, 우유, 밀가루가 통과되어 피자와 파스타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10년 동안 묵묵하게 옆에서 함께 해준 아내와 

알레르기와의 전쟁을 치르느라 남들은 겪지 않아도 될 시간들을 견뎌낸 아이에게 

특별한 저녁식사를 선물하고 싶었다. 


 오늘은 잠든 아이가 깰까 봐 눈치를 살피던 때와 다르게 다 함께 손을 잡고 당당하게 들어갔다.  

레스토랑 안은 12월이라 그런지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났다. 

매장 매니저가 미리 예약한 자리로 우리를 안내한다. 

잠시 후 갈릭 양념을 잔뜩 묻힌 식전 빵부터 음료와 함께 샐러드와 메인요리까지 주문한 음식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다. 아이는 그동안 사진으로만 보던 파스타와 비건 음식으로 만든 짝퉁 피자만 먹다가 진짜 피자와 파스타를 눈에 담으며 "아, 이게 피자구나", "파스타가 이런 맛이구나?" 맛을 느끼느라 바쁘다.  

그러면서 한마디 건넨다.  

”아빠, 같이 먹으니까 더 맛있다. 그렇지? “  

 어릴 적부터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별로 없었던 아이는 무엇이든 다른 사람과 함께 먹는 걸 좋아했다. 그런 아이를 보며 겉으론 웃고 있었지만 순간순간 벅차오르는 감정으로 기쁨의 눈물을 삼켰다. 아내도 오랜만에 먹고 싶었던 음식을 맘 편하게 먹으며 환하게 웃는다. 


나와 눈이 마주친 아내는 아무 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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