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표의 숫자보다 중요한 경험

아빠와 함께한 여행의 여운

by 어디가꼬


아빠와 함께한 여행의 여운


나는 경찰이다. 그리고 한 아이의 아버지다. 지난 8년간 학교폭력 현장에서 수많은 아이들의 눈을 마주해왔다. 분노로 가득 찬 눈, 아무 감정도 남지 않은 눈, 그리고 “누가 나를 믿어줄까?”라고 묻는 눈. 그 눈들을 보고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나는 늘 같은 질문 앞에 멈춰 섰다.

나는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나는 아이에게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기다리던 아이는 시험관 시술을 통해, 마흔둘이라는 늦은 나이에야 어렵게 만날 수 있었다. 기쁨도 잠시,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아주 심각한 식품 알레르기를 안고 태어났다. 매일 먹는 쌀조차 마음 놓고 먹일 수 없다는 말 앞에서, 부모로서의 자신감은 산산이 부서졌다. 가려움에 밤새 피가 나도록 몸을 긁는 아이와, 그 곁에서 눈물로 밤을 지새우던 아내를 바라보며 나는 참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는 그 답을 찾기 위해, 세상 밖으로 나가는 여행을 선택했다.


나는 아이에게 정답을 가르치는 아빠가 되고 싶지 않았다. 대신 길을 잃어도 다시 걷는 법을 함께 연습하는 아빠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떠났다. 비싸지 않아도 좋았고, 멀지 않아도 괜찮았다. 중요한 건 장소가 아니라 함께 걷는 시간이었다. 이 책은 여행기이기 전에, 현장을 본 아빠가 자기 아이의 인생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교육의 기록이다.


올해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아이의 손을 잡고 전국 팔도를 누비고, 열 개가 넘는 국경을 넘나들며 ‘말레이시아 한 달 살기’라는 모험을 감행한 것은, 그 다짐을 행동으로 옮긴 결과였다. 부모들은 흔히 여행을 돈 쓰고 놀러 가는 일쯤으로 생각하지만, 내게 여행은 세상에서 가장 큰 교과서이자 아이의 심장을 뛰게 하는 가장 강력한 엔진이었다.길 위의 아빠는 늘 미숙했다. 낯선 이정표 앞에서 길을 잃고, 서툰 영어 한마디를 꺼내기 위해 얼굴에 땀을 맺히는, 평범하고 나약한 여행자였다.


아이는 경찰관이라는 제복 뒤에 가려져 있던 아빠의 날것 그대로의 고군분투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지켜보았다.언어의 장벽에 부딪혀 소통이 끊길 때 세상이 얼마나 좁고 답답해지는지, 식당에서 메뉴 하나를 주문하지 못해 머뭇거리던 그 생생한 순간들은 백 마디 훈계보다 강렬한 배움이 되어 아이의 가슴에 새겨졌다. “영어 공부해라”라는 잔소리 대신, 소통하지 못하는 불편함과 그것을 넘어섰을 때의 희열을 몸으로 경험한 아이는 이제 누가 떠밀지 않아도 영어라는 도구를 즐겁게 휘두르며 스스로의 세계를 넓혀가고 있다. 책상 앞에서의 한 시간보다, 낯선 이국땅에서의 단 일 분이 아이에게는 훨씬 밀도 높은 공부가 된 셈이다.



인생이라는 망망대해에서 스스로 노를 젓는 법


경찰관 아빠로서 내가 아이에게 끝까지 가르치고 싶었던 것은, 정해진 답안지를 채우는 요령이 아니었다. 인생이라는 망망대해에서 예기치 못한 풍랑을 만났을 때, 당황하지 않고 스스로 노를 저어 나갈 수 있게 만드는 ‘동기’라는 나침반을 쥐여주고 싶었을 뿐이다.


여행은 아이에게 점수보다 중요한 것이 경험의 가치임을, 실패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길을 찾는 과정임을 조용히 가르쳐 주었다. 이제 아이의 눈동자 속에는 타인이 정해준 좁은 길이 아니라, 스스로 그려 나갈 드넓은 세계 지도가 일렁인다.


낯선 길을 두려워하지 않고,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미소 지으며 길을 물을 줄 아는 아이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부모로서 할 수 있는 가장 값지고 아름다운 유산을 물려주었다는 확신이 든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교실에서 아이는 이미 스스로 자라날 준비를 마쳤다.
아빠와 함께한 길 위의 모든 시간들이, 아이의 인생을 지탱할 가장 단단한 뿌리가 되었음을 나는 믿는다.

부모에게 남기는 말

넘어지지 않게 붙잡는 부모보다, 다시 일어나는 법을 딛게 해주는 부모가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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