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뭘까?
이번 여행은 우리 가족에게는 좀 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여행이었다.
부부의 결혼 10주년을 기념하고 아들의 초등학교 첫해 적응을 함께 축하하는 여정이었다.
비행시간만 13시간. 지도 위에서 가장 멀리 찍힌 점, 호주.
언제나 그렇듯이 이번 여행에서도 많은 변화는 있었다.
아이가 자라면서 조금씩 짐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캐리어 하나 가득 채웠던 식량 가방이 완전히 사라졌다.
우유, 달걀, 밀가루를 피해 살아야 했던 시간이 이제는 과거가 되었다.
생선과 호두 등 몇 가지 음식만 조심하면 현지 맛집을 검색하거나
유명 브런치 가게에서 아이도, 우리도,
세상과 같은 식탁에 앉아 평범한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가벼워진 가방의 크기만큼 우리 가족의 마음도 가벼워졌다.
세상을 향한 용기가 빵처럼 점점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여행도 출발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2023년의 마지막 밤, 가벼운 마음으로 오른 비행기는 공항을 떠나 활주로로 천천히 이동하다
갑자기 기술적인 결함으로 멈춰 섰다.
그러고는 다시 케이트로 돌아와서 좁은 기내에서 하염없는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비행기 기장은 방송을 통해
“승객 여러분 대단히 죄송합니다, 우리 비행기는 기술적 결함으로 이륙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현재 전문 엔지니어가 확인하고 있습니다. 곧 출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그렇게 우리는 비행기 안에서 강제로 2024년 1월 1일 새해를 맞았다. 사람들은 출발부터 어긋난 여행에 대한 불안감과 좁은 비행기 안에서 막연한 기다림에 지치기도 했지만, 순간 다함께 손뼉을 치며 2024년 새해를 축하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그 순간은 답답하고 지루했지만 돌이켜보면 이 여행이 준 첫 번째 가르침이었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이라는 사실. 비행기가 완전한 결함의 해결 없이 시간을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출발을 강행했다면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다행히 우리는 4시간의 연착 끝에 시드니에 도착했고, 시드니에 다시 멜버른까지 가는 비행기표는 반납해야 했지만, 생각을 바꾸니 조급함이 사라졌다. 아이의 인생도 마찬가지였다. 조급함보다 단단한 기초가 먼저라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호주를 흔히들 키즈의 나라라고 말한다.
직접 눈으로 확인한 호주는 아이들의 ‘먹거리’를 존중하는 나라였다.
어느 식당이든 키즈 메뉴와 알레르기 옵션은 특별한 요구가 없더라도
기본으로 준비되어 있었고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색칠 놀이와 종이접기가 자연스럽게 건네졌다.
그 배려는 과장되지 않았고 자랑하지도 않았다.
그저 당연했다. 나는 깨달았다.
진짜 배려는 특별 대우가 아니라 소외되지 않도록 선택지를 따로 마련해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아들은 생애 처음으로 현지 맛집에서 주문한 음식을 그것도 대자연에서 자란 호주산 쇠고기 스테이크를 마음껏 맛보았다. 허겁지겁 음식을 먹는 데 집중하는 바람에 머리카락에 묻은 소스를 닦아주며 나는 조용히 웃었다.
이제 아이는 ‘먹을 수 있는 것’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으로 삶이 확장되는 경험을 하였다.
멜버른에서는 아이들의 인기 만화 토마스 기차의 모델이 되었던 증기기관차를 타고 단데 농의 깊은 자연을 돌아보는 체험이 있다.
100년이나 된 기관차로 아직도 석탄을 이용해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운영되는 랜드파크 같은 곳이다. 기관차에 탑승하기 전 사고 시 아이를 먼저 구조하기 위해 아이들의 팔찌에만 인식표를 따로 채워주었다.
그럴 뿐만 아니라 시드니 도심의 텀바롱 공원은 연령대별 놀이시설을 아이들에게 365일 무료로 개방했다. 아이들은 환대받고 있었다. 그 속에서 낯선 외국 친구와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또 하나의 진리를 배웠다. 사회성은 가르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환대받는 경험 속에서 스스로 자라는 자존감이다.
멜버른 필립 아일랜드에서 만난 세계에서 가장 작은 펭귄들.
그들에게도 배울 점이 이었다. 동트기 전 일찍부터 천적들을 피해 서식지를 떠나 바다로 나간 펭귄들 하루 종일 생존을 위해 먹이와 사투를 말인 후 다시 해가 지면 떼를 지어 집으로 돌아오는 명장면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다. 어둠 속에서 가족의 안전을 살피며 가장 앞장서 걷는 아빠 펭귄의 뒷모습. 그 작은 실루엣에서 나는 나 자신을 보았다.
“아빠, 호주는 정말 거꾸로 된 나라네!”
계절도, 운전대도 반대인 이곳에서“
아이는 매 순간을 탐험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책과 TV에서만 보던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위용 앞에서 아들은 춤을 추듯 환호했다.
자기 치킨을 호시탐탐 노리는 갈매기에게는 화를 내기보다 오히려
자기 음식을 내어주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8년간 학교폭력 현장을 지켜보며 확신한 것이 있다. 폭력의 뿌리에는 언제나 존중받지 못한 결핍이 자리한다는 것. 아이를 존중하는 사회, 아이의 호기심을 믿어주는 부모. 그 속에서 자란 아이는 타인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공존의 근육’을 갖게 된다.
남태평양의 고운 모래 위에서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환하게 웃던 우리 부자의 웃음소리.
그 눈망울 속에서 나는 답을 보았다. 우리가 왜 여행을 멈추지 않는지. 호주라는 거꾸로 된 나라에서 우리는 비로소 행복의 방향을 똑바로 배웠다.
행복은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걷는 것이었다.
아이의 인생을 대신 설계하려 애쓰기보다,
아이와 함께 걷는 시간을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
그 시간이 아이를 단단한 사람으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