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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디가꼬 Dec 17. 2022

아빠의 유산

돈보다 지혜를

인성보다 성적이 우선이던 학교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생긴 지 3년밖에 안된 사립 남자고등학교였다.

사립학교는 교육이나 인성보다는 학생들을 잘 컨트롤해서 좋은 성적으로 좋은 대학에

많이 보내는 것이 더 중요해 보였다.


학교의 교칙은 엄했고, 선생님들은 매를 자주 들었다.

아침마다 교문 앞에서 등교시간 체크뿐 아니라 복장이나 두발상태를 점검했고,

벌칙을 받거나 매를 맞지 않고 교실로 들어가는 날이 별로 없었다.

그 시절만 해도 학교에 가면 선생님에게 매를 맞는 일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간신히 교문을 그대로 통과하고 교실로 가더라도 한 달에 한 번씩 있었던 두발 검사로

학생부장 교사는 직접 가위를 들고 다니며 앞머리 3cm 규정을 어긴 학생들의

머리를 과감하게 잘랐다


시험이 끝나면 본격적인 매질이 시작됐다

몇몇 과목은 전체 평균을 깎아먹는 학생들에게 평균에서 모자라는 만큼 1점에 한 대씩 매질을 해댔다. 심지어는 어느 선생님은 한 시간 내내 매질을 하다가 팔이 아파 다음 시간에 때리기로 하고 나간 적도 있었다.

  

그런 탓에 학교에는 마대자루가 남아나지 않고 매일 부러졌고,

일부 선생들은 잘 부러 지지 않는 당규 큐대를 들고 다니거나, 야구방망이의 양쪽을 갈아 평평하게 만들어 때리기 좋게 해서 들고 다녔다. 사춘기로 방황하거나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 학생들은 그런 엄한 학교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스스로 학교를 그만두는 일도 있었지만 학교는 그런 학생들을 절대로 잡지 않았다. 학교 평가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걸림돌이 되는 아이들을 굳이 잡을 이유가 없었던 탓이었다.


학교에는 유난히 부잣집 아이들이 많았다.

내가 다니던 사립학교에는 부잣집 아이들이 많았다. 그중에 빅 4로 유명했던 아이들이 기억난다

운동장 만한 큰 배를 3척이나 가지고 있던 아이도 있었고, 부의 상징이었던 OOO클럽 회장의 손자도 있었으며,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코미디언 OOO이 생일잔치에 사회를 보러 오는 집 아들도 있었다.

그래서 OO는 성적도 안되는데 학교에 체육관을 지어주고 들어왔다, OO는 학교 화단에 잔디를 심어주고 들어왔다는 등의 안 좋은 소문도 돌았다.   


학교에서 빅 4 중에 한 명이었던 아이는 대학 입시를 두 달 정도 앞두고 골프채를 들고 체대 입시반에 들어가 당시 모 대학에 새로 생긴 골프학과에  입학하기 위해 해외 유명 골프대회에 거액의 참가비를 내고 수상경력을 만들어 특별전형으로 입학한 사례도 보았다.

그 친구가 한 말이 아직도 생각난다 "이 학교에서 내 돈 안 먹은 선생은 아무도 없을걸"


나를 포함한 여러 친구들은 당시 그 사실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후 새로운 사실을 전해 듣게 됐다.

학교에 교사 여러 명이 학부모들에게 돈을 받고 내신성적을 조작하다 걸려서

교단을 떠났다는 것이었다.

정확한 사실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거론된 교사들은 웬만하면 학교를 떠나는 일이 없었던

사립학교에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좋은 대학과 성적만을 요구했던 그 시절 사회의 현실을 담아낸

씁쓸한 교육의 한 단면이 아닐 수 없다.



돈보다는 지혜를 물려주자

학교를 졸업한 지 30년이 지난 지금 그 당시 부잣집 아들로 소문났던 빅 4는 지금

사회에서 인정받는 직장에서 성실하게 생활을 하며 잘 사는 아이들이 아무도 없었다.


다들 좋은 환경에서 공부한다며 외국으로 공부하러 떠났지만,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공부했던 전공과는 전혀 다른 부모의 기업체를 물려받기도 했지만 오래가지 못했고,

돈이 많던 할아버지의 재산을 호시탐탐 노리며 방탕한 생활을 이어갔지만 90살이 훨씬 넘어서까지 정정하게 살아계신 할아버지 덕에 아직도 똑같은 생활을 이어가는 경우도 있었고,

결혼해서 자신을 낳은 후에도 여전히 부모에게 용돈을 받아 생활하는 아이도 있었다.


문득 유럽여행 때 만난 여자아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19살이던 여자아이는 엄마를 따라 유럽여행을 왔다. 하지만 아이는 하나도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늘 엄마가 번 돈으로 엄마가 짜 놓은 계획에 무작정 따라다녔던 아이는

열심히 일한 돈으로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하나 성취해가는 여행의 참맛을 알리가 없었다


내가 경험한 세상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있으면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지만, 부모가 자식에게 맹목적으로 물려주는 돈이나 재산이 무조건 이롭게 작용하지는 않았고,

공부를 잘하면 남들보다 일찍 목표에 도달할 수 있지만 인성보다 성적을 중요시하는 사람은 오래가지 못했다.


돈의 가치를 모르는 무식한 자식에게 돈을 물려주거나 공부만 잘하며 다 용서되는 세상을 알려주는 것보다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잘 어울려 생활하는 지혜를 상속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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