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항기

참고로 성인입니다.

by chul
넌 그냥 사춘기가 온 거야.

나이 2n.(단, 여기서 n은 자연수이다)

오른쪽 눈에 반려 흑염룡을 데리고 있을 사춘기 10대도,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잠시 쉬어가는 오춘기 4,50대도 아닌. 정말 이도저도 아닌 20대 중반의 대학생. 그리고 지금까지 방황을 허락받지 못한 채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다. 그렇게 어머니께 사춘기 진단을 받았다.


사춘기요? 여기서요?


너 동생 사춘기 때 기억나냐.


모르지 나는 그때 항상 야자하고 밤에 집 오면 다 자고 있더구먼


그때 엄청 심했어. 그런데 네 동생도 지금 내가 왜 그랬지 ‘하더라. 그냥 그랬다고 본인도 모르겠다고. 그 당시에도 본인이 왜 이러는지 몰랐고 시간이 지난 지금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데. 사춘기란 그런 거고 누구나 적어도 한 번은 그런 시기가 오는 거야. 너는 학생 때 사춘기가 없었어. 그러니까 지금 온 거야. 누구나 겪는 거야. 지나가면 기억도 안 날 시기인 거야.


나는 살아가는 것에 지쳐있고 질려버렸다. 가끔은 숨 쉬는 것 마저 긴장해서 잘 안될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에너지 뱀파이어가 되어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마이 페이스에 웬만하여서는 멘탈이 붕괴된 적이 없는 내 10대를 같이 한 이들은 나를 낯설어했다.

“네가 힘들다니 의외네”

내 고민은 그들에게 저 한마디로 끝나버렸다. 그리고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넌 걱정 안 해 네가 늘 해오듯이 하면 돼, 하고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예전에는 흥밋거리도 되지 않는 내 고통에 착잡했는데 지금은 그들이 이해가 된다.

확실히, 별로 흔들리지 않았다. 흔들릴 만한 일들은 엄청 많았는데 다들 내 이야기에 경악을 해도 그냥 그렇게 앞에 해야 할 일을 했다. 강해서라기 보단, 그냥 무시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때 마음껏 방황하지 못해서 지금 궤도 이탈했다. 아주 멋지게.


꿈이 안 바뀌면 이상한 시기에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남들 다 방황할 때 혼자 방황하지 못해서 타이밍을 놓쳐 거, 이렇게 남들 다 달려 나갈 때 혼자 멈춰있다.

대학 와서 별 한심한 취급이란 취급은 다 받았다. 성적 관리를 못 해서, 대외 활동을 안 해서, 관련 지식을 못 쌓아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지 않아서, 친구를 만들지 못해서. 나름대로 괴로워하고 힘들어하고 뭐라도 하려고 했는데, 걸음을 뗄 때마다 뭔가 걸렸다. 자신 있게 그것들이 아니라고도 말을 못 했다. 내가 정말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딱히 하고 싶지 않은데 못하면 비난받을까 봐 괴로운 건지 아니면 그 둘 다 때문에 괴로운 건지.

그런데 지나간다는 말이 맞다. 지금은 내가 남들 눈치를 보면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조급함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한다. 예전에는 뭐가 뭔지 모르고 그냥 힘들었는데 지금은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보인다. 우리 어머니는 사춘기라고 말하고 나는 우울증이라고 말하는 시기에서 조금도 벗어나지는 않았다. 아직 잠겨있다. 대신 지금은 거리를 두고 눈 앞의 풍경을 보고 있다. 그렇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정신적인 무리 없이 하루를 마무리하기에는 한참 멀었지만.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도 없지만.

그냥 그럴 때가 있는 거다. 딱히 찬란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그렇기에 한심하다는 시선을 받곤 하지만. 뭐 삭막한 인생 다들 숨 쉬는 게 힘들 정도로 빠르게 살아가고 계시는데 억울한 마음, 한심한 저를 맘껏 욕하고 비웃어서 그대의 기분이 조금이라도 나아진다면 다행입니다. 그대는 딱히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영향력이 별로 없거든요. 도를 넘으면 저도 가만있진 않겠지만.

진짜 지나가려나. 아무것도 하기 싫고 눈 앞의 현실에서는 최대한 도망가고 싶고 솔직히 어른이 되는 것도 싫은데. 남들 다 하는 그런 것들도 무서운데, 이런 나도 철이 들 때가 있는 걸까. 다시 너무 괴로워하지도, 무서워하지도 않고 눈 앞의 일에 열중할 수 있을까. 정말 사춘기처럼 겪는 게 당연하고 지나가는 게 당연한 시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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