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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Jan 24. 2019

길 한가운데서 이어폰을 뺐다.

길은 노래로 채우지  않아도 충분했다.

작은 그릇에 최대한 많이 집어넣으려고 많은 것들을 꾹꾹 눌러 담고 있었다. 힘을 버티지 못한 그릇에 금이 가는 줄도 모르는 채. 꾹꾹 눌러서 최대한 많이 담으려고, 채우려고 애썼다.
말하자면... 김치 같은 존재일까
이어폰 이즈 마이 라이프.


교복을 입고 나서부터 20대 중반인 지금까지, 이어폰을 귀에 꽂고 노래를 듣지 않으면 길거리를 걸을 수 없다.

귀 안에 물집이 잡혀서 귀에 살짝 꽂는 한이 있어도 무조건 이어폰을 꼈으며, 어쩌다가 길에서 이어폰을 잃어버리면 바로 편의점에서 사서 바로 착용한다. 나의 일상은 모두 다양한 노래들로 꽉꽉 차 있다. 뭐든지 채우지 않으면 성이 안 차는 성격이기도 하고. 그런데 오늘은 이런저런 생각들이 정리되지 않을까 봐 일부러 노래를 듣지 않고 산책을 했다.


아주 오랜만에 이어폰을 끼지 않고 걸었다.

길은 노래로 굳이 채우려고 하지 않아도 많은 것들로 채워져 있었다.


바람소리나 길고양이 소리, 차가 지나가는 소리나 옆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 등 많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채우려고 애쓸 필요는 없었다. 꼭 채우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채우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이란 존재하지 않더라.





일화 1.


많은 재료들이 갖추어져야만 새로운 만남을 시작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오랜만에 좋아하는 카페를 갔다. 헤매면서 처음 찾아간 그 카페의 라테가 정말 맛있었고, 찾아갈 때마다 마치 친구처럼 다정하게 맞이해주시는 점원분들 덕에 좋아진 카페이다. 잠깐 정신없어서 못 갔다가 이사 전날 홀리듯 찾아갔다. 행복하게 멍 때리고 있는데 점원분들이 식사를 같이 하겠냐고 제안해주셨다. 그렇게 얼떨결에 합석을 해서 밥을 얻어먹게 되었다.

사실, 나는 합석을 제안받고 잠깐 손을 씻는 시간에서도 많은 생각을 했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지? 많은 용기를 내서 다가와 주셨는데, 내가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하게)를 만들면 어쩌지? 뭔가 얘깃거리를 마구마구 만들어서 채워가야 하는 거 아닌가? 만약 말실수라도 하면 어쩌지?

나는 10초짜리 고민과는 다르게 매우 몽글몽글한 점심시간을 보냈다. 주신 식사가 맛있기도 했거니와, 굳이 내가 무슨 이야기를 계속 얘기하지 않아도 점원분들은 부드럽게 이야기를 이어나가셨다. 약간 긴장했는데 무색했다. 많은 것이 준비되어있지 않아도 순간의 용기로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것도 갖추지 않고 시작해도 즐거운 대화가 될 수 있었다. 카페의 점원분들은 그렇게 나에게 몽글하고 따뜻한 기억을 선물해주셨다.


카페를 나오면서 언젠가 만나자고는 했지만, 만나기가 참 힘듦을 안다. 그래도 서로 대화를 했다는 것은 정말 신기한 인연이겠지. 그래도 서로가 신기해하면서 만나고 설렜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그렇게 믿는다.

그런 인연들과 설렘으로 내가 구원받았음을 확신한다.


새로운 인연도, 오래된 인연도. 그 어떤 곳에서도 긴장을 풀고 실수할 수 있기를.


일화 2



깊은 친구들과의 관계도 무엇이든 채우려고만 했는데.

예전에는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에 너무 긴장하고 신경 썼는데, 거기서 긴장을 풀게 되니까 친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긴장을 하고 만다. 만약 대화를 3시간 동안 한다면 그 3시간 동안 서로의 이야기로 꽉꽉 채워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렸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했는데 친구가 흥미 없어하거나 불편해하면 친한 친구로서의 의무를 다 하지 못한 것 같아서 허무했다. 그리고 굳이 가고 싶지 않은데도 불안해하면서 어디를 같이 가자고 말하곤 했다. 그 대답이 애매하면 또 허무했다. 그게 나의 치명적인 약점인 양 괴로웠다.

인류애


친하다고 해도 각자의 인생에 서로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각자의 삶이 있다. 우리는 교집합일 뿐이니까. 나의 모든 일정을 밀도 높게 그들과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오랜만에 만났어도 딱히 더 생각나는 얘기가 없으면 서로 쉬면서 각자의 시간을 보낼 수도 있더라. 가고 싶은 모든 곳을 한 사람과 가지는 않는다. 가능하지도 않고. 그냥 더 친하던 덜 친하던 상황이 맞춰친 사람과 가면 된다.


난 아직 작고 귀여운걸!
나는 어렸을 때부터 실수를 용납받지 못하고 살아왔다.


1분 1초를 아끼며 무엇이든 쌓고 채우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주변엔 온통 나에게 기대(라고 쓰고 압박이라고 읽는다)를 하는 인간들뿐이었다.


남은 나에게 실수를 해도 괜찮지만, 나만은 실수를 하면 안 되었다. 그래서 항상 긴장을 하고 나에게 아무것도 없어도 무엇이든 주려고 했다. 별 것이 아니어도 일일이 의미를 부여해서 남는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실수해도 괜찮다. 철이 없는 행동을 했을지라도 난 아직 20대 중반이다. 몇 살이 되든 인생 경험은 한참 모자란 사람이겠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했다고 하더라도, 또 그건 그 나름대로의 삶이 있다. 내가 철없는 행동 몇 번 했다고 갑자기 막 소행성이 지구를 향해 날아오지도 않고 반대로 내가 완벽한 사람이라고 해서 날아오는 소행성의 각도를 한 20도 틀어서 지구를 구할 리도 없다. 언젠가 100년 뒤에 위인전에 현자, 성인군자로써 실릴 생각도 없다. 그릇에 물이 반만 담겨도 괜찮다. 넘쳐도 괜찮다. 물을 털어내어도 조금은 물이 그릇에 묻어있다. 혹, 물이 증발되어도 그 안에는 공기가 있다. 공기를 생각하지 않아도 그릇 자체가 있다.

실수를 하는 나 자신을 받아들일 연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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