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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Mar 18. 2019

유독 괴로운 3월.

새내기들을 보면 드는 생각.

한국은 3월이 기준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건 내가 아직은 3월을 기준으로 삶이 돌아가는 학생 신분이라 그렇다.

이제 봄인가!

3월 첫 수업. 지각을 하고 기세 좋게(뛰진 않고) 빠른 걸음으로 강의실을 찾아가는데, 뭔가 이상하다.

월요일의 오전 수업의 캠퍼스 분위기가 이렇게나 화사했던가?

내가 아는 월요일 오전 수업 캠퍼스의 분위기는... 다들 강의와 등록금에게 멱살을 잡혀서 억지로 끌려가는 좀비들인데, 왜 이리 화사하고 게다가 몰려있는 무리는 또 왜 이리 많은지.


아, 신입생들이 왔구나. 

동반자는 가로등 하나


3월, 속은 타들어가는데 카톡이고 면대면이고 목소리고 그 타들어가고 썩어 들어가는 속을 보이지 않기 위해 사회적인 겉가죽을 쓰고 돌아다닌 기분이다.

겨우 벗어난 우울에 다시 던져진 나로서는 바로 옆의 하하 호호한 분위기가 적응이 안 되었다.

나에겐 3월이 반갑지 않다. 이제 졸업을 앞둔 헌내기가 무슨 개강을 반가워하겠냐만은, 그것보다 더 표현할 수 없는 허무함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친구에게 카톡이 와 있다. 만나자고 한다. 수업은 7시에 끝났지만 만나러 갔다. 다른 친구에게도 카톡이 와 있다. 비슷한 내용이다. 외롭다. 허무하다.


우리에겐 신입생 시절이 결코 순탄치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서울의 대학에 갔다는 부러움을 받긴 했다. 그러나 주변의 그런 부러움과 실제로 살아가는 서울은 달랐다. 

몸 하나 누일 좁은 방, 길거리에 많지만 나랑 말 한번 나누지 못할 바쁜 사람들. 그리고 친화력의 'ㅊ'자도 없는 내가 익숙해지기엔 너무나도 힘든 대학의 분위기. 나와 안 맞는 점은 셀 수도 없이 많다.

반수(라고 쓰고 도망이라 읽는다) 이후에 복학(라고 쓰고 도망 실패라고 읽는다.)으로 두 번째의 1학년은 진짜 뭣 같았다. 


어쨌건, 나에게 첫 번째든 두 번째는 1학년이란 시절은 결코 좋지 않다. 우울증과 주변 사람에 대한 집착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 행복해 보이는 1학년들을 보면 괜히 심사가 뒤틀린다. 나는 평생 가질 수 없는 마냥 해맑고 명랑한 시절. 그들이 부럽다. 물론, 아는 게 없이 마냥 해맑은 시기이니만큼 별 것 아닌 것들로 흔들리는 시기라는 것도 잘 안다. 선배들과의 술자리라던가, 동기들과 친해지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라던가. 어느 학과든 어느 대학이든 원하는 '인싸상'은 비슷하니까, 그에 맞지 않은 자신이 틀린 거라고 생각하면서 괴로워하기도 하고. 그래도 해맑기에 겪을 수 있는 그 방황이 부러워서, 3월 첫날은 바닥을 보며 걸었다. 얼른 새내기들이 대학생활에 찌들어서(?) 이 분위기가 없어지길 바라며. 정말 못된 4학년이다.

뭐?! 내가 4학년?

그러고 보니 벌써 4학년이다. 지나갈 줄 모르던 괴로운 시간들도 '시간'이긴 해서 지나가긴 한다. 괴로웠던 시간은 살아온 게 아니라 살아남은 기분이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건 그만 하고 싶다. 너무 힘이 많이 든다. 


몸에 자연스럽게 배어 있는 긴장을 풀고, 심호흡을 한번 하고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한다.

몇 년의 지독한 방황이 알려준 나의 생존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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