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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May 19. 2019

세상이 너무 공평하다.

억울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빌어먹을 정도로 공평한 세상.

허무하다.


사람들이 쉬라고는 하지만, 나도 쉬어야 함을 아는데 억지로 열심히 살 수밖에 없는 사이클에 있다. 나도 무리하고 싶지 않다. 절대로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니다. 적성이 아니다!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는 사이클에 놓여있고, 나는 지쳐있는데 남들은 달려간다. 달릴 힘이 있다.


세상은 공평하다. 그래서 억울하다. 내가 어떤 시련, 트라우마, 상처, 상황에 놓여있는지 고려하지 않는다.


동화를 보면, 이런이런 고난을 극복하고 이런이런 상처를 받은 누구는 어찌어찌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행복한 순간에 끝나니까 평생 행복한 순간만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나도 그랬다. 내가 이렇게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 있고, 남들 한 발짝 나갈 때 나는 발을 딛는 것조차 못 하는 상황을 고려해서 세상이 봐주지 않는다.


"얘는 지금까지 남들과 비교했을 때, 이런이런 힘든 일이 있었으니까 이젠 좋은 사람, 좋은 일, 하는 일마다 잘 되게 해 줘야지!"따윈 없다. 말 그대로 시련은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






전공 시험을 쳤다.


학교 축제 기간이었고 시험 시간이 저녁이었기에, 한창 무대가 뜨거울 때였다. 이 전공 시험은 나에겐 너무 부담이 컸다. 저번 1차를 너무 못 쳤는데 이번에도 공부가 잘 안 되었기 때문에 불안했다. 하필 1번부터 너무 정신없이 천천히 풀고 있는데 익숙한 노래가 밖에서 들려온다. ‘아 A가수가 왔구나. 나 이 가수 진짜 좋아하고 이 노래도 너무 오랜만인데 설마 시험 치면서 다시 들을 줄이야.’ 시험은 어찌어찌 지나갔다. 공부했던 노력을 보상받을 생각은 그만두었다. 적어도 시험을 칠 때 심한 불안감이나 조증, 망상으로 토를 하지 않았고 일단 최선을 다 했으니…. 그것만으로 나 자신에게 50점은 주었다.

물론, 이 시간 이 기간에 시험을 치는 우리를 다른 사람들이 배려할 필요는 없다. 지금까지 항상 축제기간에 시험을 쳤는데 이번 시험은 유독 부담이 커서 그런지, 시험 내내 들리던 쿵쿵 소리가 거슬렸다. 원래 너무 지쳐서 끝나자마자 가서 자려고 했다. 잠도 많이 왔고. 그런데 쿵쿵거리면서 신난 그 밖의 소리에 약이 올라, 시험이 끝나면 나도 저 무대 안에 뛰어들리라고 이를 갈았다.  야 너네만 노냐! 하면서 두꺼운 전공책으로 사람들을 밀치고 무대 안에서 놀아야지. 뭐가 그리 신나냐! 나도 좀 신나 보자! 그러나 정신없는 시험을 마치고 달려가서 본 무대는,


너무.

너무 행복하고 즐거워 보여서.

토할 것 같았다.

나와 너무 비교되어서. 만족은 무슨 이번에도 죽은 시험과 그래도 나름 준비해보겠다고 엉망진창이 된 나와 스트레스를 발산하는 건강한 저들이 너무 비교되어서. 그래서 내가 초라해 보여서. 이렇게 초라해 보이는 나는 사실, 하루하루 순간을 연장하는 것에도 발버둥을 치면서 살아가는데. 알 수 없는 내 마음속 무언가와 씨름하면서 버티는데. 나도 버티기 싫고 즐기고 싶은데.

다음 주에 병원 예약이 있으니, 그때까지만이라도 어떻게든 살아남자고 이를 갈고 버텼는데. 그때까지만이라도 죽지 말자고. 나는 그랬는데.

그래 나도 공부 안 하고 저기로 뛰어갈 수도 있지. 그리고 저 사람들이 열심히 안 한다는 것도 아니고 나 또한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즐기는 사람들이 더 건강한 정신으로 노력도 잘한다. 그들의 효율도 나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좋다. 결과도 마찬가지이다. 화가 난다. 12시가 지나면 나도 그들도 똑같이 하루가 지나간다. 인생에서 하루가 +1로 카운트된다.

count = count +1

언젠가 과제에서 많이 봤던 그 코드가 머릿속에서 떠오른다.

다음에 병원에 갈 때는 항우울제와 항 조증제를 더 달라고 해야겠다는 나와, 지금 저 무대에서 스트레스를 멋지게 발산시키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세상에 산다.


저 건강한 사람들이 노력하는 정도를 따라가야 평범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이미 너덜너덜한데 말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런 것 따윈 신경 쓰지 않는다. 공평해서. 행복을 모아놓았다가 갑자기 풀어놓거나 하지 않는다. 반대로 불행도 마찬가지. 불행이든 행복이든 내가 어떻게 살아왔건, 그냥 랜덤으로 아무 때나 찾아온다. 내가 너무 불행에 집착할 뿐인가?

그렇다고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래도 네 인생에 좋은 기억도 있을 것 아냐"는 말을 듣고 싶지는 않다. 당연한걸! 불행만 있는 인생은 없다. 상대적으로 많고 적음이 있고, 힘들게 살아온 사람도 강한 사람일 수도 있고,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도 약한 사람일 수 있다. 그리고 저 말은 모순이 있다. 그렇다면 우린 언젠가 있을지도 모르는 '좋은 기억'을 기다리면서 살아가야 하는가? 좋은 기억이 있어야만 삶인가? 삶은 살아가는 거지 버티면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지쳐버릴 것이다.

 나는 최근에 온 우울과 조증으로 인해, 정신 차리면 알 수 없는 곳에 있곤 했다. 이런 정신상태인 사람이 공부를 한다고 해도 제대로 했을 리가 없다. 어떻게든 도망가는 내 정신을 붙잡고 헛구역질을 하면서 친 시험은 항상 건강한 사람들이 적당히 공부한 성적보다 훨씬 낮다. 시험 점수가 그걸 알려준다.

나의 발버둥은 그들에겐 아무것도 아닌 정도인데.  나는 나와 싸워야 하는데도 가끔 ‘정상적인’ 사람들을 보면 허탈해지는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카운트되는 하루에 집중하려고 한다.


내일, 모레의 계획도 하려고 했던 과거의 계획도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눈 앞에 하고 있는 것에만 집중하려고 한다. 길을 걸으면서 하루 계획을 미친 듯이 짜고 재보는 게 아니라 이어폰으로 나오는 노래의 가사에 집중한다. 아무 생각 없는 것 같아도 이렇게 지나온 하루하루가 쌓여서 내 삶이 되었다. 실력도 노력도 운도 나 자신도 믿지 않는다.

믿을 건 그냥… 해가 뜨고 달이 지는 것만. 흐르는 시간만 믿는다. 그 시간이 흘렀기에 내가 있고 내 사람들이 있고 나를 이루는 모든 것들이 쌓였다. 난 그저 살아만 있었는데 그 많은 것들이 쌓였다. 충분한 시간을 살아왔기에 쌓여왔겠지? 이렇게 보면, 마냥 야속하기만 한 시간이 고마워진다.  


오늘 하루치 내 이야기도 끝났다. 내일은 다른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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