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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Jun 05. 2019

모든 커피에는 소리가 나는데,

감정일기 0605


감정: 놀람 ->씁쓸-> 평온

간만에 오전부터 나들이를 갔다. 원래 공강인데 4학년에게 공강은 쉽게 팀플 약속과 과제 약속, 면담 등을 잡을 수 있는 날이었다. 아주 오래간만에 아무 일정도 없었다. 다음 주 종강인데^^


뭐 여하튼, 다음 주 시험 4개인 데다가 저녁엔 약속이 있어서 오후엔 공부를 해야 하고. 그럼 부지런히 날씨 좋은 오전에 아무도 없는 전시회장을 돌아다니자고 마음을 먹었다.



알아본 전시가 좋아하던 카페 근처여서 멀지만 걸어서 갔다. 전시 시간까지 1시간 정도 남아있었기에 아주 오랜만에 오전의 느긋함을 맛보면서 늘 그렇듯이 아이스 카페 라떼를 시켰다. 그랬는데,

또르륵 딸깍

아이스 라떼의 얼음끼리 부딪히는 소리를 처음 들었다. 아니 간만에 음미했다! 얼마나 어이없던지. 유튜브 홈카페 영상에선 매일 얼음에 우유나 물 붓는 소리 들으려고 이어폰을 끼고 소리를 최대로 올렸는데. 그런 주제에 내가 마시는 얼음 소리는 못 들었다. 이어폰 끼고 영상의 얼음 소리를 듣느라. 눈 앞에 바로 얼음 소리가 나는 아이스커피가 있는데도 굳이 유튜브 영상의 소리를 듣겠다고 쳐다보지도 들어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지나간 수많은 아이스커피들에게 송구한 마음뿐이다. (뜨거운 커피일 경우에는 우유 거품이 터지는 소리들)


이것도 거의 몇 달 만에 노트북 없이 카페에 와서 가능했다.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들리지 않았다. 어찌나 어이없고 씁쓸하던지. 그동안 많은 것들을 하느라 놓친 당연하고 사소한 소리가 얼음 소리뿐일까? 


그래서 오늘은 하루 종일 이어폰을 끼지 않고 돌아다녔다. 아주 오랜만이다. 조용한 동네여서 더욱 좋았다. 나는 놀이터의 몇 없는 (오전이었으니까 다들 유치원 갔나?) 어린아이와 그들의 부모들의 재잘거림을 들었고, 나한테 시비 거는 길고양이의 재수 없는 예쁜 소리를 집중해서 들었다. (딴 얘기인데, 자기소개서 스펙에 길고양이들에게 이쁨 받는다는 내용을 적고 싶다. 내가 유일하게 잘하는 건데, 모두들 부러워한다.) 그리고 맑은 하늘에도, 노을에도, 그리고 해가 저문 어두운 밤하늘에도 소리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너무나 사소하기에 놓친 것들, 그러나 당연하게 그 자리에 있던 것들. 그리고, 그렇기에 지금 내가 괜찮지 않은 상태임을 알려준 소리들. 




+요즘 가벼운 글을 못 써서 계속 임시저장만 늘어나네요. 나중에 수정하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올려봐야겠습니다. 가벼운 글이라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은, 공심님의 감정일기 톡방에 공유한 감정일기를 기반으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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