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수강신청을 했다. 우리 학교는 비싼 등록금에 비해 강의수가 터무니없이 부족해서 항상 학생들의 원성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내가 마지막 수강신청을 할 때까지 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마지막? 마지막이라니! 몇 달 뒤 또 시간표를 짜고 터무니없이 강의 인원이 적은 것을 보고 화를 낼 것만 같은데! 전날 긴장으로 밤을 새우고 적군을 향해 전진하는 장군의 마음으로 피시방을 갈 것만 같은데. 그리고 대학 생활이 끝나감에 따라 취직의 부담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 그래도 새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순탄치 않았던 5년을 되돌아보게 된다.
신성한 분위기의 하늘
너 머리 '그러고' 대학 다닐 건 아니지?
대학이 각자 정해지고 나서 , 고등학교 친구가 갑자기 이런 말을 했다. 지금이야 예의도 어이도 없는 말이지만, 당시의 나는 당황하면서 "아.. 당연히 아니지..."라며 어깨를 움츠러들었다.
그런데 나는 몇 년 동안 꽁지머리였는데, '그러고'가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저런 말을 할 거면 적어도 "이 부분을 자르고, 이 부분은 조금 매직이나 파마를 해 보지 그래? 돈 줄게"같은 구체적인 조언과 도움을 주란 말이다. 이것 말고도 여러모로 나와 안 맞았던 그 친구와는 멀어졌다.
그러나 흔히 말하는 대학생활의 '인재상'인 그는 자신이 누구보다 못하는 게 있으면 안달 나서 허둥지둥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 '그러고 다닐 거야?'는 내가 아니라 본인에게 한 말 같기도 하다. 1,2, 학년 때의 내가 이상하다는 말을 들을까 봐 아등바등거렸던 때처럼 말이다.
대학을 와서 크게 세 가지를 깨달았다.
첫 번째, 입사나 입학이 아니어도 사람들이 모이면 그곳에는 '인재상'이 있다는 것.
두 번째, 그 인재상은 '인재'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내가 인재가 아니면 이상한 취급을 받고 비난받는다는 것.
마지막으로 나는 남이 될 수 없고 남도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것.
학교 커뮤니티에서 올라오는 새내기들의 고민 글을 읽어보면, 내가 입학 했을 때도 졸업할 때도 그들이 강요받는 인재상은 딱히 변하지 않는 듯하다. 대충 이렇다.
대학이다.-> 성인이다.->술을 마신다.->술자리에 자주 간다. -> 동기, 후배, 선배들과 친해진다. -> 정보도 잘 얻고, 공부도 잘한다. -> 동아리뿐 아니라 다른 대외활동도 많이 한다.
나의 경우는 술자리에 자주 가는 단계부터 탈락했다. 물론! 술자리에 가서 누군가와 친해질 수 있는 능력도 없다. 그런데 웃긴 건, 친구가 없으면 신기하게 또 학점이 좋다는 결론으로 간다. 그들의 논리는 이렇다. 친구가 없으니 놀지 않을 것이고 시간이 남을 것이고 그 시간 동안 공부를 할 것이고, 공부를 하면 성적이 좋다.
내 주변에는 성격도 좋고 사람들과 노는 것도 좋아하고 이쁨 받고 잘 놀고 성적이 좋은 사람들이 꽤 있다. 그리고 전부 반대인 사람도 있다. 나다. 그래서 나는 항상 의아한 시선을 받았다. 대학생이면 좋겠네, 친구들이랑 맨날 놀겠네-> 뭐? 왜 친구가 없어? -> 그럼 그 시간에 공부하거나 스펙 쌓으면 되겠네 -> 뭐? 왜 성적이 안 좋아? -> 너 뭐야? 대학생 맞아?
이것 봐, 우리 정반대야!
대학교는 전공마다, 학년마다, 수업마다 '공부라고 불리는 활동'이 다르다. 모두 다른 사람이고 다른 상황인데 모두 같은 인재상을 요구받는다니, 굉장히 기이하다. 같은 대학교나 회사를 지원한다면 당연히 그 단체가 원하는 인재상에 가까운 사람을 뽑겠지. 그러나 이건 '생활'이 아닌가. 생활마저도 이렇게 숨이 막혀야 하다니.
잘하는 사람들에게 칭찬을 하는 게 아니라 "잘하면 본전"이라며 못 하는 사람들에게 비난을 하는 이 상황이 무서웠다. 나는 걔가 아니야, 나는 나만의 역사와 이런 행동을 하는 나만의 근거가 있어. 이걸 못 하는 나는 나만의 세상과 자리가 있어. 잘하는 사람들과 다른 자리인 건 당연해. 노력을 안 했는지 못 했는지를 알아달라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나 같은 사람도 있다. 내 옆의 사람 같은 사람도 있다. 그런데 내가 이상하다고? 나는 이상한 걸까?
다 망가진 내 신발을 좀 봐줘. 그래도 나름 열심히 걸어온 것 같지 않아?
나 또한 그 인재상에 맞추려고 노력했다. 왜 혼자 다니냐, 왜 친구 못 사귀냐, 왜 성적이 안 좋냐. 그래서 나는 혼자 다니지 않으려고 애를 써서 누군가라도 옆에 두려고 했고, 억지웃음을 지었고, 옷도 내 스타일과 다르게 갑갑하게 입고 따라 입었으며, 관심도 없는 화장을 하려고 했다. "졌지만 잘 싸웠다"는 말이라도 듣고 싶어서 싸우는 척을 했다. 그들이 원한 인재상에 맞추려고 노력했다. 과정만이라도 인정받고 싶어서.
그런데 남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머리를 털었다. '그러고' 대학을 다녔다. 옷은 적당히 깔끔하게 입었으며, 안경을 썼다. 가끔 특이한 스타일도 시도했다. 의미 없는 번호 따기도 그만두었다. 대신 학교의 행정 부서 전화번호를 저장했다. 학교 상담센터, 우리 과 사무실, 행정실.... 그리고 언제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전화했다. 교수님과 같이 갈 친구도 없었으므로 그냥 교수님께 면담을 신청했다. 어깨에 긴장을 풀었다. 가끔 나에게 다가오는 이들에게 최선을 다 했다. 가끔은 다시 긴장하고 나도 남들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금방 또 긴장을 풀었다. 공부는 할 수 있는 만큼만 했다. 더 하지 못해서 괴로워하기도 했다. 마음껏 힘들어했고, 따가운 시선에 어깨가 움츠러들었지만 딱히 그 시선에 맞추려고 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하니까 별 볼일 없는 내가 남았다.
수강신청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는데, 졸업요건은 채워졌다. 주변만 봐도 성공한 사람 천지인데, 신기하게 나는 꼭 실패했다. 그런데도 졸업요건은 어찌어찌 채워졌다. 졸업할 때까지 그 흔한 아는 동기 하나 없는데, 가끔 만날 친구들은 있다. 어깨의 힘을 풀자 신기하게 가끔 만나서 낄낄거릴 사람들이 생겼다. 그 무엇도 제대로 된 게 없는데, 전부 어떻게든 되었다.
이제는 누군가가 "넌 뭐했어?"라고 물어보면, 망설이지 않고 "힘들어했어."라고 대답한다. 나도 힘들면 안 되고, 방황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끝이라고, 제대로 살아갈 기회는 없다고. 그런데 신기하게 목숨이 붙어있으니까 끝은 없었다. 참 신기하지, 나는 대학의 인재상에서 너무 멀리 떨어졌다. 그런데도 내 이야기를 하라고 하면 이렇게나 주저리주저리 길게 할 수 있다. 별 볼일은 없지만 아무것도 없지는 않다. '덜거덕'거리면서 굴러가는데, 왜 다들 '그러고' 살 거냐면서 겁을 주는 거야?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는데.
++등록금이 아깝지도 않냐?
나 같은 공부도 못 하는 아싸들은 한 번씩 듣는 소리이다. 트위터에서 등록금 뽕 뽑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래서 나도 생각난 김에 몇 개 적어보려고 한다.
1. 교수님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겁먹지 말고 그들에게 문을 두드리자!(그분들과 친해지는 방법은 나도 모른다. 나는 자주 혼나는 입장이라...)
의외로 꽤 잘하는 친구들일수록 교수님을 찾아가기를 겁낸다. 교수님들이 그들과 깊은 대화를 하다가, 그들의 허접함을 알고 자신들에게 실망할까 봐, 라는 이유였다. 그런데... 교수님들은 그 분야의 최고봉이다. 수석이나 꼴등이나 교수님들 입장에서는 거기서 거기 아닐까? (컴퓨터 공학과 4학년과 아두이노를 공부하는 초등학생들을 생각해보자. 초등학생 중 가장 잘 따라오는 아이에게 4학년이 위협을 받는 경우는 없잖아요?) 간단한 질문도 좋고, 그냥 전공과 진로에 대한 의문도 좋다. 다 얘기하라는 말이 아니다. '도움!, '조언!''을 요청하자. 교수님들은 그게 직업이다!
2. 대학생이기에 할인해주는 활동이 있다.
뮤지컬, 연극, 전시회 등 개강 시즌마다 크게 할인해주는 활동이 있다. 놓치지 말자!
학교에서 열어주는 자격증 수업을 신청하자! 가끔 접수비를 지원해주는 학교도 있고, 일정 출석률을 채우면 환불해주는 강의도 있다.
3. 학교 심리상담센터에서 심리상담을 받는 것도 좋다.
추천한다! 심리상담, 그냥 들으면 기본 1회기에 8만 원이다. 물론 학교 상담센터는 대기자가 많으므로 각오해야 한다. 학교 상담센터에서는 개인상담뿐이 아니라, 집단상담, 음악 치료, 미술 치료, 심리 검사 등 다양한 활동이 열린다. 학교 공지를 잘 살펴보자! 가끔 세미나도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