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면접, 보고 왔습니다.
아주 특이한 경험이다.
적어도 나는 처음 해 보는 경험이다. 예상과 기대가 다른데도 그 사이에서 묘하게 침착하다. 예상과 기대가 동일하기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시험 잘 봤다"는 예상과 "시험 잘 봤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동시에 들면 가장 좋겠지만, 세상에는 "안될 것 같아"하는 예상과 "그래도 되면 좋을 텐데..." 하는 기대가 동시에 있는 경우가 훨씬 많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래 왔고, 항상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마음을 졸이면서 속상해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특이하게, 안 될 것 같다는 예상과 되면 좋겠는 기대가 같이 있는데도 나는 침착하다. 물론 안 되었다는 결과를 보면 많이 속상하겠지.
그런데 지금은 그 속상해하는 순간은 나중에 결과를 볼 미래의 나에게 넘겨버렸달까. 아니면 정말 최선을 다 했기 때문에 후련해서 딱히 후회나 반성이 들지 않는 상황일까. 한두 마디로 정리하기 참 힘들지만, 그런 신기한 경험을 했다. 오늘 한번 얘기해보려고 한다. 만화도 그려왔으니 같이 따라와 주시면 감사!
나는 처음 이력서를 외국 회사에 넣었기에(첫 취업 준비부터 허들이 너무 높은...), 중간에 '헤드헌터'라고 할 수 있는 회사가 있었다. 외국 회사들과 구직자들을 연결시켜주는 회사. 나는 총 4개의 회사에 지원했고 2개를 서류를 통과했으나, 하나는 인적성 시험에서 떨어졌다.
그러면 신에게는 아직 한 회사가 남은 것인데..... 그 회사에는 내가 맞는 직무가 없었다. 무작정 가장 비슷해 보이는 직무에 지원은 했으나, 역시 내 전공과는 많이 동떨어져있었다. 전공이 달라도 그 분야를 할 줄 알면 좋은데 아직 대학 졸업도 못 한 사람이 뭘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중간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내 서류를 본 회사가 갑자기 "지원하신 직무와는 안 맞으신 것 같으나 다른 직무가 있는데 그 직무 과제를 줄 테니 풀어주세요."하고 연락이 왔다. 그 직무, 과제는 마케팅 관련이었다. 제가 뭐라고요? 공대생. 심지어 코딩도 별로 안 한 순수 기, 계, 하드웨어만 부숴온 사람이다. 그래서 놀리는 건가, 하면서 투덜거리면서 제출했는데 면접을 보라고 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너무 이상한 점이 많았다. 나는 그냥 들러리가 된 게 아닐까? 추가 서류 합격자이기에 남들이 다 기피하는 제일 첫 시간에 면접이 잡혔다. 게다가 이 직무에 서류가 합격된 사람들의 전공은 전부 그 직무와 딱 맞는 사람들이었다. 면접 컨설팅을 가서 보니, 다들 스펙도 있고, 관련 경험에다가 무엇보다 '외국어'가 유창했다. 이 직무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직무이기에 무조건 외국어 자격증 중 가장 높은 수준이 지원자격이었다. 나는 그 자격증이 없었다. 그런 내가, 심지어 내 전공은 공학인데 이것을 다름 아닌 일본어로 하려니 너무 힘들었다. 영어면 그나마 낫겠지만.
혹시 이 사람들이 "아~ 이 면접자는 헤드헌터 회사에서 봐달라고 했으니(확실치 않다) 별 거 없겠지, 얼른 처음 봐 버리자."라고 생각하는 거 아니야?
그랬다가 정말 내 면접이 끝난 직후, "역시 별 거 없었네."라고 결론짓는 것만은 절대로! 내가 허락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의외로 이 사람, 들을 이야기가 많았네." 혹은 나중에 내가 면접 때 말한 것과 비슷한 것들을 보면 "아, 그거 예전 면접 봤던 사람 중 비슷한 거 한 사람 있었지"하고 나를 기억하는 면접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시험 점수로 합격하는 게 아니라, 면접 같은 것으로 합격하는 거면, 내가 아니라 그 결과는 전부 남에게 달려있다. 나는 그 안에서 내 할 일만 할 수 있다. 그것밖에 못 한다. 내가 많이 무력하게 느껴지지만, 합격 불합격으로 나를 비난하지 않고 나를 합격시켜주지 않은 남 탓을 하기로 했다.
나는 저번 주에 여러 집안일이 겹쳐서 시험 전 마지막 수업을 전부 빠졌다. 내가 빠진만큼 졸업 프로젝트에서 내가 팀원들을 따라가기 위한 노력도 필요했고, 초초한 마음으로 벼락치기를 하면서 시험을 쳤다. 심지어 면접은 오전인데, 나는 그 전날 밤 9시가 돼서야 집에 들어왔다. 그때부터 면접을 준비했다.
일단, 면접 컨설팅에서 들었던 말들을 다시 생각했다.
1. 질문에 맞지 않는 내용까지 말한다.(tmi다)
2. 너무 어려운 말들을 써서, 본인도 말을 못 하고 있다.
사실 1번은 내가 평소에도 듣는 말이다.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많이 하려다 보니까 순서가 뒤죽박죽이 되어서 말을 하게 된다. 내 성격은 고치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면접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말보다, 나에게 들어온 말에 집중하기로 했다.
2번은... 어쩔 수 없다. 내가 못 말하는데 면접에서 말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래서 한국어로 썼던 내 이력서를 보고, 직접 손으로 아예 다시 썼다. 번역기는 전혀 돌리지 않고 그냥 사전을 찾거나 예전에 공부한 책을 찾아서 직접 문장을 다시 만들었다. 내가 만든 문장이었기에 금방 외워졌다. 문제는 이것을 잘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예의에 엄격한 나라라서 컨설팅 갔을 때에도 비즈니스 매너만 1시간을 했다.(난 당시 지각해서 1분만 했다.) 그래서 동영상을 찍으면서 계속 익숙해질 때까지 연습했다. 그리고 일찍 잤다!
면접 당일, 괜히 많이 연습했다가 목이 쉴까 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물을 많이 마셨다.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가 아니라 "제대로 말할 수 있을까"의 걱정뿐이었기에 사실 긴장은 남들에 비해 안 한 것 같았다.
면접 컨설팅 때의 사람들이 워낙 다 잘했었기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게다가 전공 주제에 대해서는 별로 준비하지 못했는데, 물어보면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그러나 그때마다 직원분들은 "그 회사는 진짜 특이하고 자유로운 분위기라서, 긴장 안 되실 거예요" 혹은 "그 회사는 뭘 물어볼지 전혀 예상할 수 없어요. 오히려 그래서 쉬우실 수 있어요.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 되어요!"라고 해주셔서 사실 더 긴장되었다.(예상할 수 없는 것 만큼 무서운 건 없으니까.)
"강(さん)(강 씨), 맞으시죠?"
면접 직전, 오히려 너무 눈 앞에 위기가 닥치니까 현실감이 없어졌다. 긴장이 풀어진 상태로 그냥 앉아서 집에 가고 싶다만 마음속으로 백만 번 외쳤다. 그런데 갑자기 그림자가 지길래 위를 쳐다봤더니 편한 분위기의 사람이 내 앞에 서서 나를 안내했다.
알고 보니, 안내해주시는 직원분들 시계가 고장이 나서 나는 제때 안내를 못 한 것이다. 그래서 면접관이 직접 나를 데리러(!!!!!) 나왔다. 1시간 동안 동영상 5번은 찍은 비즈니스 매너, 개나 줬다. 쓸 일은 없었다.
문도 직접 열어주시고, 의자도 당겨주시고, 게다가 면접관이 아니라 동업자처럼 두 분 다 일어나셔서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00입니다."/ "저는 00입니다."
"첫 순서라 긴장되시죠? 게다가 일본어로 해야 해요... 여기 초콜릿들이 있고, 물도 좀 드세요."
아니, 누가 면접 보다가 초콜릿을 먹어요! 게다가 다른 분은 노트북을 들고 내 옆에 앉으셨다. 왜죠?
먼저 취직한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면 보통 면접에서 인성과 관련된 질문이 많았다.
자신의 장단점 혹은 (긴장을 풀어주기 위한) 일본에 여행이나, 유학을 간 적이 있느냐, 친구들은 자신을 뭐라고 부르느냐 등. 그러나 이 회사는 들은 대로 나에 대한 것보단 "내가 뭘 했는지/ 할 수 있는지"에 관심이 많았다.
"이 프로젝트의 이 센서는 뭔가요?"
"이건 어떻게 돌아가는 건가요? 왜 그렇게 설계했나요?"
"이건 어떤 의미의 프로젝트인가요?"
전부 예상치 못 한 질문들이었다. 그러나 사실, 내 전문이 이 회사가 원하는 전문과 분야가 다를 뿐이지 나는 내가 쌓아온 것에서는 자신이 있었다. 내가 잘한다는 자신이 아니라, 내가 '쌓아온 것'에 대한 자신. 그래서 어떻게든 그것을 전달할 준비는 되어 있었다. 일본어는 자신이 없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나는 그들에게 흥미가 생기는 면접자는 아니었다. 그냥 물러나기엔 목적한 바가 있기에 조금 까불었다. 나한테 과제 내놓고, 설명할 기회도 안 주는 것이 괘씸해서, 틈을 타서 과제 설명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과제를 설명한 후에는 궁금했던 것을 물어봤다. 마지막으로는 자기 pr을 했다. 이럴 수 있었던 건 전부 이 자유로운 면접관들 덕이다. 나의 긴장을 풀어줬고(의도인지는 모르겠다만), 그래서 나는 조금 더 용기 있게 나설 수 있었다.
비즈니스 매너는 마지막까지 쓸 일이 없었다.
안 붙을 것 같아요"
이러면 다들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어째선지 그들이 나를 다시 찾을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나는 목적한 바를 확실히 이뤘다. 그들은 나를 기억할 것이다. 게다가 준비했던 말의 반 이상은 못 했고, 나머지 반은 전부 즉석에서 말을 했어야 했는데, 외국어로. 그래도 크게 당황스러운 상황은 없었다.
내가 자랑스러웠다.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나를 자랑스러워하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나는 대학생활을 전혀 제대로 한 사람이 아니다.
방황도 많이 했고, 집안에서 갈등도 겪으면서 약이 없으면 잠도 못 이루는 어른이 되었다. 그런 내가 직접 취업 준비를 해야 했다. 아직 학생이라는 울타리가 있긴 하지만, 그것을 나서는 과정은 너무나도 무서웠다. 첫 이력서, 첫 면접을 전부 외국어로 준비했다. 물어볼 곳이 없어서 수업을 안 들은 지 1년이 되어가는 교수님께 감히 교정을 부탁드렸다. 아무것도 모르고 학교 취업센터에 들어가서 "여기서 제가 무슨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하고 재수 없게 말했다.(재수 없게 느껴지셨을 것 같아서 맘이 무겁다. 절대 그런 의도는 아니었다... 순수한 궁금증이었다....) 사람이 제대로 못 자고 못 먹고 일만 하면 갑자기 토를 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냥... 마음고생이 많았다.
참으로 세상을 불공평하다. 에너지는 에너지대로 다 쓰고, 얻은 건 없다. 그런데도 참 신기하게 지금 나는 침착하다. 결과가 안 좋으면 당연히 씁쓸하지, 속상하고. 그런데 지금은 신기하게 후련하다. 그 면접실을 내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웃으면서 나오게 될 줄은, 면접 1초 전까지만 해도 전혀 예상도 못 했었다. 만족한다. 내가 만족스러운 면접을 내가 만들었다. 그게 너무 뿌듯했다.
어차피 떨어트릴 거면 서류에서 떨어트려주지."
우리끼리 자주 하는 말이다. 최종까지 갔는데 결과가 탈락이면 허무해서 하는 말이다. 나도 면접까지 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아직 첫 번째 면접이라서 이런 여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얘기를 하면 또 누군가는 "계속 그런 자세면, 언젠가 좋은 결과가 올 거야"라고 말해준다. 그런데 사실 나는 나를 안 믿는다. 나는 또 머지않아 고꾸라질 것이다. 언제 이런 기세였는지 까먹을 정도로 돌변해서는 기가 죽어서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그때의 나에게 맡기기로 한다. 정말 불안하고 무섭고 속상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후련하다.
너 왜 그렇게 바보같이 사니? 쌓아놓은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대학 복학 후, 동기, 다른 어른들에게 들었던 말이다. 말만 놓고 보면 굉장히 무례해서 내가 화가 났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다. 나도 정말 그렇게 생각하기에
"... 그래"하고 대답했었다.
그렇게 내 대학생활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 그러나 처음, 취준을 하면서 이력서를 쓰기 위해 노트북을 정리하면서 내가 그동안 해 왔던 것들의 기록을 보았다. 생각보다 많았다. 너무나도 많았다. 내가 그 소스를 잘 활용하지 못할 뿐이지, 많은 소스들이 있었다. 꼭 이력서에 쓰이지 않을 이야기라고 해도, 나는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그건 이 브런치가 증명한다. 내가 대학 복학 직후에 시작한 것이 브런치고, 내 브런치에는 100개가 넘는 글이 있다.
만약, 지금 아까와 같은 말을 듣는다면, 나는 여전히
"그래...."하고 대답할 것이다.
무례한 질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딱히 이것들을 설명할 기운이 없기도 하고, 그들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딱히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나는 분명 지치겠지. 지금도 지쳐있고. 그러나 첫 면접에서 운이 좋게 만족을 느꼈다. 트라우마가 안 생긴 게 어디인가. 앞으로도 나는 나를 전시하기 위해서 부단히도 노력하고, 나에게 실망하고, 결과에 실망하겠지. 그러나 그런 게 당연한 시간이다. 그래야만 하는 시간이다. 언젠가 이 시간을 회상하는 미래의 내가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