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끝나고 뭐 하실 건가요?
아버지는 집에 오면 항상 tv만 보신다. 보지 않아도 항상 켜 놓으신다. 마치 부적처럼.
“우리 아버지는 일만 해오셨거든, 끝나고 뭐 하는 건 절대 싫으시대, 집에 강아지들이랑 계속 놀거래”(집에 강아지 4마리 있는 친구)
“우리 어머니도 그 회사 엄청 오래 하셨거든, 끝나면 맨날 여행 다니실 거라고 말리지 마라고 하셔”(여행 계모임을 꾸준히 운영해 온 친구 어머님)
“우리 아버지는 평소에도 골프 치러 다니셔서, 아마 퇴직하시면 당분간 골프에 못 다하신 한을 풀러 다니시지 않을까?”(생신선물로 항상 골프웨어를 알아보는 친구)
20대 중후 반인 우리들의 어머니 혹은 아버지는 슬슬 퇴직을 하실 나이이다. 그리고 한 회사에 질리도록 오래 다니신 분들이 대부분이다. 나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고, 어머니와는 차근차근 화해해나가고는 있지만 과거에 그들이 나에게 어떤 트라우마를 줬든 간에 자식으로서(그들은 부모 역할을 못 했다고 해도 내가 자식 역할을 못 하는 것과는 별개가 아닌가), 한 사람으로서 아버지가 무언가에 ‘흥미’가 없는 사람이라는 게 안타깝다.
물론, 일이 힘드니까 일이 끝나고 집에 오면 힘없이 밥 먹고 티브이만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시험공부하는데, 가장 큰 힘이 되는 건 어떤 말인가?
이 시험만 끝나면"이 아닐까?
이 상황을 버티고 나면 공부가 아닌 독서나 나만의 시간을 위해 카페를 가고 싶거나, 아니면 준비했던 여행을 갈 수도 있다. 그 보상은 클 필요는 없다. 힘든 일을 마치고 집에 가면서 맥주를 마시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우리에겐 일이 아닌 자극이 필요하다.
자극이 없는 삶은 죽음과 같다.
나는 2년 정도, 자극도 흥미도 의심도 없는 삶을 살았다.
그 무엇도 궁금하지 않고, 내일이 걱정되지도 기대되지도 않고 그저 시간이 멈춰서 내가 사라지기만을 빌었다. 항우울제 등의 정신/신경과 약은 마음대로 끊었고, 햇빛이 들지 않는 좁은 방에서 보일러 소리를 들으며 눈만 끔뻑였다. 자살방지센터에 전화를 걸었다가 그만두었다. 누군가가 내 옆에서 나를 감시하고, 한심해하며 비웃는 것만 같았다.
그렇기에 이 지루하고 끔찍한 시간이 팽창하는 우주처럼 끝없이 퍼져서, 계속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더 이상 여기서 뭔가 바뀌지도 않을 텐데 계속 살아서 뭐 할 것인가. 여러 번 말하지만, 자극이 없는 삶은 죽음과도 같았다. 어쩌면 죽음이 나의 마지막 자극이 될 수도 있다는 착각도 하게 된다. 여하튼 위험한 상황이다.
나의 경우에는 일단 밖으로 나가보았다.
처음에는 바닥만 보고 걷는다. 맨날 바닥만 보고 걷는데 어느 날은 낙엽이 밟히고 어느 날은 눈이 밟히고 어느 날은 고양이나 강아지가 앞길을 막았다. 그렇게 나는 아침 산책을 하게 되었다.
카페모카를 시켰더니 “휘핑 올려드릴까요?”하고 물어보신다. 휘핑은 항상 올린다. 그런데, 휘핑, 무엇으로 올리는 걸까? 휘핑을 올리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는데 왜 이리 휘핑 올라간 음료는 멋져 보이는 걸까? 나도 만들어볼까? 그렇게 나는 용돈을 모아서 모카포트를 샀고, 이는 힘든 4학년 생활을 버티게 해 주는 하나의 취미가 되었다.
사실, 집 밖이든 안이든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있다. 문제는 그러려면 내가 시선을 아주 조금이라도 돌려야 한다. 그게 정말 정말 힘들다.
집 안의 책상과 침대 배치가 맘에 안 들 수도 있고, 폰을 들어서 침구를 검색하고 집을 꾸미는 지경까지. 그 모든 것은 본인에게 달려있다. 너무나도 무겁지만 막상 옮기고 나면 별 거 아니다.
우울증과 오래 함께해본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손가락 까딱하는 게 왜 그렇게 무거운지, 왜 무거워야 하는지, 왜 남들은 안 무거운데 난 이게 무거운지. 그 생각에 답은 없다. 손가락을 움직이기 위해서 필요한 건 손가락을 움직이고 싶다는 변덕과 손가락을 까닥할 약간의 힘이지 왜 손가락이 무거운지 그 원인 파악이 아니다. 물론 그 원인을 파악해야 할 때도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
약간 움직여볼까, 그러면 어떻게 될까. 이것이 우리를 살려주는 자극이 되리라.
버티기만 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이지만, 버티는 것 말고는 할 수 없는 이 답 없는 상황에서의 유일한 답이 되리라.
그래서, 여러분들께 하나 묻겠다.
이거 끝나면, 다들 뭐 하실 건가요?
저는 카페 가서 비싼 음료를 마시며 책을 읽을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