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들께 마지막 메일을 보냈다.

'학생'이 끝나가기 전에, '학생'으로서.

by chul

"야, 너 교수님이랑 그렇게 사적인 대화도 하냐?"

교수님과 사적인 대화가 아닌, 해야 할 일이 있어서 휴대폰으로 전화통화를 했을 뿐이다. 그러다가 교수님께서 "우리 개강 미뤄졌다 좋겠지?(코로나 때문이라는 뜻)"하시고 "교수님도 개강이 싫으시군요. 하지만 전 졸업합니다 하하"(졸업한 백수에겐 개강이 미뤄진 것은 알 바가 아니라는 뜻) 이런 대화를 했다.

잠깐 나온 대화일 뿐인데, 친구들은 그 잠깐 나온 사적인 대화가 신기하다고 한다.


마지막 수업에 출석하지 못하여 따로 시험지를 받으러 교수님의 연구실로 갔더니 이런 말을 들었다.

자네는 잘 될 거야."


나는 어떤 학생이었는가. 일단 모범생은 절대 아니었다. 이제 '학생'이라는 안정적인 울타리를 벗어난다. 그전에, 아직 학생일 때, 나를 기억도 못 하실 타전공의 교수님들이라도 나에게 힘을 준 한 마디씩을 해 준 그분들께 감사하다는 메일을 보냈다. 늦고 빠르게 답장이 왔다. 나에게 해 주신 말이지만 굉장히 좋은 말들이 있어서, 몇 문장 적어보려고 한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기억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00년도 0학기에 교수님의 수업 00을 들었던 강철경입니다. 그때, 교수님께서 제게 해 주신 말씀이 저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저는 졸업 전 취업은 성공하지 못했으나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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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항상 이 자리에 있습니다. 상담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연락을 하고 찾아오세요."

교수님은 복학 직후 1학기에, 지나가듯이 나에게 충고를 해 주셨다. 그래서 내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신다. (그거야 다른 전공 학생이고 벌써 4년이 지났으니까.)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학생에게 "나는 항상 여기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아직 미성숙한 나는 모르겠다. 교육자란 이런 분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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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축하합니다. 지난날의 내가 생각나네요. 그땐 취업 걱정은 없었지만 나름 다른 걱정들이 있었죠. 앞날은 항상 불투명하니까요. 그 "불투명하다"는 것이 더 매력적이기도 하죠."

앞날의 '불투명'이라는 것이 단점이 아닌 앞날이 가진 하나의 속성, 특징으로 볼 수 있음을 내게 알려주셨다. 취준생인 나에게 취업을 한 친구들은 다들 '그때가 좋다'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아직 불투명한 앞날에 매력을 느끼기에는 멀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해주니까, 경험이 적은 나는 나 자신을 믿지 않기로 했다. 그래, 다들 이때는 곧 지나간다고, 청춘이란 좋다고 말해주네. 그럼 그분들을 믿고 나도 너무 걱정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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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경 학생은 잘 될 거예요. 잘했어요."

교수님이 말씀하신 "잘 되다/하다"가 위치적, 경제적인 기준이 아님을 안다. 엄청난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열정도 나에겐 없다. 그저 나는 '한 사람의 몫'을 하고 싶었고 집안 사정이 기울면서 그 욕망은 더 커졌지만, 현실은 더 악화되었다. 그런 나에게 '잘했다'라고 말해줄 수 없었다. 그렇기에 교수님들의 이런 한마디는 나에게 작은 울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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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현실과의 투쟁을 하고 있겠지만 세상에는 밝은 면이 더 많다는 것을 잊지 말아 주세요. 항상 긍정적으로 살아가다 보면 저절로 길이 열릴 겁니다."

흔한 말이다. 그러나 직접 듣기는 흔하지 않은 말이다. 저 말을 해 주려면 자신 나름대로의 확신이 필요하다. 교수님은 확신을 갖고 학생에게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분이 직접 겪으면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도 언젠가 많은 것들을 겪고, 일어나서, 그래도 "살만하다"며 나와 같았던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교복을 입던 시절에는 선생님들을 최대한 존경하려고 했지만 무서워하진 않았다. 그렇기에 나를 별로 안 좋아하시던 선생님들도 계셨다. 그러나 대학은 신기하게도 겁이 없는 학생을 좋아했다. 친구가 없는 내가 조언을 구할 곳은 학과 사무실과 교수님들뿐이었기에 그분들께 별생각 없이 이것저것 물어보곤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이런저런 좋은 조언을 받게 되었다. 위로도 있었고 쓰디쓴 현실을 알려주는 충고도 있었다. 그러나 모두 나를 염려함이 느껴졌다.

나는 아주 한심한 대학생이었다. 심지어 이제 백수다. 내가 봐도 한심한데, 교수님들이 보기엔 얼마나 바보 같았겠는가. 그런 와중에 저런 보석같은 말들을 들었고, 아주 짧은 한두 마디여도 내가 무사히 졸업하는데 큰 양분이 되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 특히 나처럼 본인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사람들에게 이 말들을 나누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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