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무도 나한테 이렇게 살아도 된다고 말 안해줬냐.

성인이 되고 마주한 나의 좁은 세상, 그것이 만든 편견

by chul

20대 들어오면서, 교복을 벗으면서 만난 나의 좁은 세상.

어른들이 만들어준, 감옥 같은 편견들.

주의사항: 이 글은 분노로 가득 차 있다. 여러분의 청춘을 응원한다.


왜 아무도 나한테 말 안 해줬냐.
이렇게 살면 큰일 나는 줄 알았잖아.


뭐?! 남들처럼 살지 않는다니, 믿을 수 없어!

대학교에 오고 나서야 아프게 알게 된, 쓰라린 것들이 있다. 아팠지만 나를 자유롭게 해 주었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너무 세상이 좁았고, 대학 때도 남들이 다들 안 알려주더라. 남들 살듯이 살지 않으면 이상하게 몰아갔다. 그래서 이렇게 살면 큰일 나고, 그것을 하지 않으면 세상이 끝난다고 생각해왔는데, 직접 부딪히면서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덕분에 나는 내가 '힘들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4년이 걸렸으며, 5년째에 겨우 힘들다고 외치고 투덜거릴 수 있었다.

4년 동안 내가 한 것


1. 아싸로도 무사히 졸업할 수 있다고 왜 말 안 해줬냐.

난 졸업했다. 코로나 덕에 졸업식을 못 갔지만 졸업했다.

고등학교에서 대학 가기 전 우리끼리 가장 화제였던 것은 “어떻게 하면 아싸가 되지 않을 것인가”였고 그건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물론, 아는 사람이 없으면 정보를 얻을 수 없기에 나는 아싸를 권장하고 싶지 않다. 나 또한 하고 싶어서 한 건 아니고. 물론 외로웠지만 그건 내가 가질 감정이었지. 그러나 남들은 나를 이상하게 봤다. 그들은 항상 “그렇게 살아서 외로운 건 어쩌냐”, “정보는 어떻게 얻냐” “졸업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를 말했고. 그런데 뭐? 난 졸업한다. 친구 없으면 못 한다는 졸업 팀 프로젝트에서도 잘 해냈고 뿌듯한 결과를 얻었다.

그래서 어리둥절하다.

왜 다들 그러는 거야, 이렇게 살아간 사람도 있는데.


2. 친구의 많고 적음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왜 말 안 해줬냐.
친구가 무조건 많아야 한다!!!

....라고 모두가 울부짖었다.

특히 새내기 때는 친구들끼리 무리 지어가는 경우가 많기에 그걸 보면 내가 초라해지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친구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다. 부자연스럽게 웃고 다니고 사람 한태 관심 있는 척하고 다녔다. 그래서 억지로 누군가와 밥을 먹기도 했고, 동아리에 불려 가기도 했지만, 너무 힘들었다.

나는 딱 이 정도의 hp (Human Point)를 가진 사람이었다.

왜 다들 무조건 주변에 사람이 많아야 한다고 그랬을까. 주변에 사람 수보다 주변에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훨씬 더 정확한 지표였는데.

공대 셔츠와 멘트까지 완벽한 내 자아
3. '대학만 가면'이 아니라, 대학에 가서 적응을 못 할 수 있다고 왜 말 안 해줬냐.

여고를 다녔기에 갑자기 남자애들이 많은 과는 적응이 안 되었고, 혼자 서울에 와서, 고시원에서 바보처럼 멍하니 있다가 본격적으로 우울증이 시작되었다.

그 외에도 갑자기 넓어지고 동시에 좁아진 세상에서 오는 현타는 많았다. 왜 아무도 갑자기 바뀐 생활에서 힘들 수 있다고, 위로를 안 해줬을까.

대학만 가면 내 세상이란 걸 믿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고등학생 때보다는 잘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다. 나는 대학에 다니면서 힘듦을 여기저기 토로했으나 그 어디서도 위로도 공감도 받지 못했고 동정도 아닌 기이한 사람이라는 시선만 받았다.

교수님은 저를 가르치는 걸 실패하셨습니다


4. 성적 최악을 찍을 수도 있다고, 못할 수도 있다고, 왜 말 안 해줬냐.

지방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녔기에,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려면 나름대로 그 사이에서는 공부를 잘하는 편이어야 했다. 물론 내가 막 전교 1등 한 건 아니고 내 대학이 명문대도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상위권이었다. 그런데 복학 후, 교수님께 질문을 하다가 들은 말이 있다.

“이렇게 이렇게 하고 이거 다 외워, 모르면 다 외우고 풀이과정도 다 외우면 씨쁠은 나올 수 있을 거야.”
“공대가 적응이 안 되면 전과도 생각해봐야 해.”

당시 교수님은 나에게 진심 어린 걱정과 함께 충고를 해 주셨다. 그러나 나는 무슨 그렇게 열심히 해서 겨우 씨쁠이 나오겠냐며 미친 듯이 공부해서 에이플러스를 받았다.

문제는 그다음 해부터 전공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고 나서였다. 2, 3학년은 우울증이 급격히 심해지면서 독해능력이 떨어져서 성적이 안 좋았다… 고 믿고 싶다.

나는 무려 4학년 때 2학년 전공을 100점 만점에 9점을 받았다.

대학교에 오면 머리가 다 비슷한 애들끼리 경쟁을 한다. 그렇기에 성적이 많이 쪼개진다. 그런 상대평가를 감안하더라도 나의 9점은 충격이었다.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 강의를 정말 못 하고 억지로 해서 겨우겨우 에프를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열심히 한 과목도 에프를 받아본 적도 있다.

바보같이 애쓴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닌 것을. 왜 아무도 안 알려줬을까. 열심히 해야 했다고. 집중해야 한다고. 왜 다들 독하게 애쓰는 것만 알려줘서는.


잠시 음료를 만들어 마시면서 진정하자. 달콤 씁쓸한 카페모카다. 인생처럼.



5. 왜 그대들은 세상은 대학과 취업이 다라고 말해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계속되는데.

물론 현재 취준생인 나는 취업만 하면 좋겠다, 고 말하고 다닌다. 그러나 환상은 없다. 지금도 그때도 최선을 다하는 내가 있을 뿐.

~~ 만 가면, ~~ 만 가지면, 이것만큼 기이한 위로가 없다. 괴로운 현재가 지나가길 바라는 건 당연하지만, 무언가를 했다고 세상이 갑자기 바뀌지는 않는다. 좋은 점이 있고 나쁜 점이 있다. 변한 생활에서는 적응만이 살길이다.

그때도 내가 나를 가장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길 바란다. 여러분도 그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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