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지 않은 아침은 처음이라서요.
항상 계란, 소금, 설탕, 파, 양파 등만 있었던 가난한 자취생의 부엌과는 달리, 본가는 냉장고 크기만큼 재료도 다양하다. 물론 그 재료들을 다 쓰지는 못 한다. 그 어려운 재료들을 다 쓰려면 요리에 대한 내공이 필요하다. 무엇이든 갖고 있는 자본이나 재료를 다 활용할 수 있으려면, 그에 대한 탄탄한 경험과 지식이 필요하니까. 아무리 좋은 칼과 과일을 줘도, 과일을 깎아본 적이 없는 나는 과일을 반 이상을 버린 것처럼.
아침에 할 건 없고, 머리 쓰긴 귀찮고, 몸을 너무 쓰기도 귀찮으니 몸, 머리 둘 다 적당하게 쓰는 '요리'를 택했다.
집에 있다가 서울에 일이 있어서 일찍 일어난 날, 아침 치고는 너무나도 무겁고 화려한 밥상을 어머니가 차려주셨다.
"아침을 든든히 먹어야 하루를 버텨"
어차피 또 점심 먹을 건데? 그 날은 너무 많은 일정이 있던 날이었는데 정말 아침밥 덕인지 별로 피곤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엄마가 없을 때는 아침을 든든히 챙긴 적이 없구나. 그러면 이번엔 내가 돌려주기로 했다.
그저 밥뿐이 아니다. 밥을 소홀히 하자 아침 산책도 안 하게 되었고, 책도 안 읽고 그저 아침은 하루를 찡그리며 시작하는 한순간일 뿐이었다. 아침은 순식간에 지나가는 순간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항상 강의실이나 도서관이나, 어딘가 다른 곳에 있었다. 아침에 어떻게 집에서 나왔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날 알림 시간을 설정할 때도, '여유롭게'가 아닌, 빠르게 준비하고 나갈 시간만 고려했다. 아침의 '여유'같은 건 챙기지 않은지 오래였다. 그렇기에 지금 아침밥을 정성스럽게 해 먹고, 커피를 정성스럽게 만들면서 해가 뜨는 광경을 멍하니 지켜보는 아침을 낯설다.
아침을 일찍 시작하니까 하루가 굉장히 길다. 아침도 먹고 할 일도 하고, 계획도 세우고 빈둥거렸는데 아직 10시였다. 내 하루가 끝날 때까지 12시간이 넘게 남았다. 그러면 더 빈둥거려야지. 아침을 정성스럽게 보낸 보답이다. 이렇게 아침을 느긋하게 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곧 서울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기대 반 걱정 반... 은 무슨 걱정뿐이다. 내가 과연 다음에 집에 왔을 때는 웃는 얼굴로, 당당한 모습으로 올 수 있을까. 그때는 어떤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하게 될까?
그때도 '내일 이거랑 이거 해 먹어야지'라는 마음으로 두근거리며 아침을 기대하면서 잠이 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 이 글 어젯밤에 가벼운 마음으로 쓴 건데 갑자기 조회수가 확 올랐다... 이런 글이 이렇게 갑자기 관심을 받아도 되는 걸까요? 이 글을 지나가다가 보신 당신, 아침을 챙겨 보십시오! 아침식사는 간단하더라도, 아침 명상을 하거나 멍하니 하늘을 보는 하루의 시작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