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그대로 두고 눈 앞의 일 해결하기.
중요한 것은 행동이다. 나가서 행동하라. 온갖 부정적 사고가 따라다녀도 상관없다. 부정적 사고는 결코 더 좋아지지도, 쉬워지지도, 이해가 가게 되지도 않을 것이다. -[시작의 기술]
눈을 떴다. 정말 새로운 천장이다. 아니… 천장이 좀 가깝다.
이층 침대의 이층이라서 그렇다. 나는 셰어하우스에서 살기 시작했다. 침대가 워낙 삐걱거려서 1층의 룸메이트가 깨지 않도록 조심히 내려가는 건, 굉장한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다. 그러나 내 최선과는 반대로 침대는 멋있게 삐걱거렸고 룸메는 뒤척이고 나는 일어나자마자 온 몸의 근육을 깨운 탓에 피곤해졌다. 그리고 다시 서러워진다.
아니,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잠 푹 잔 게 얼마만이었지. 무리해서 서울 온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그런 생각과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할 일을 한다. 물론 생각과 감정에 따라 그 일을 잘하는지 아닌지가 판가름 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감정과 행동을 분리할 수 있었다. 아닌가 반대인가? 감정과 행동을 동시에 감당하게 된 걸까? 나쁜 감정이 지워지지 않아도 할 일을 하게 되었으니까.
낯선 환경에 가뜩이나 예민해져 있는데, 룸메가 조심스럽게 자신이 불편한 점을 얘기했다. 분명히 조심스럽게 얘기한 거지만, 나는 어째선지 외롭고, 속상했다.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누가 누군지도 헷갈리는데, 방에서마저 혼자 울 수 없다는 것에 이제 화까지 난다. 그리고 카톡을 봤더니 누군가가 긴 톡을 보내 놓았다. 뭔가 오해를 하고 나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나는 밖으로 나가서 사야 할 물품을 사고 씻고 밥을 먹고 그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오해를 풀었다. 그리고 뭘 했냐면,
공부를 했다. 원래 하려고 했던 공부였기에.
물론 잘 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잡고는 있었다. 개리 비숍의 [시작의 기술]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중요한 것은 행동이다. 나가서 행동하라. 온갖 부정적 사고가 따라다녀도 상관없다. 부정적 사고는 결코 더 좋아지지도, 쉬워지지도, 이해가 가게 되지도 않을 것이다.
일 년 전이었으면 적어도 일주일은 잠을 설치고, 해야 할 일을 미루면서 감정과 생각을 해결하는 데 사용했을 것이다. 물론, 해결되지 않았겠지. 일주일 가지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만 깨닫고 또 절망했을 것이다. 위 말대로 그건 그냥 내 감정과 생각이지, 그것들이 발생하고 없어지는 방법 따윈 없기 때문이다. 해결책이 없기에 컨설팅이 아닌 상담과 정신건강의학과가 있는 것이다. 둘 중 하나라도 다녀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곳에서 감정을 해결해주진 않는다. 그 감정을 알아보긴 하지만. 거기까지다.
머리와 마음에 추가 하나씩 덧붙여진 상태로, 할 일을 한다. 다른 걸 해도 그 추가 그대로 있다면, 그냥 얼른 할 일을 끝내버리는 게 낫다. 만약 여기서 미뤄버린다면 할 일이 미뤄졌다는 추만 더 추가될 뿐이다. 물론, 제대로 끝내지 못할 수 있다.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한다’, ‘했다’에 집중한다.
속상하지만 세수를 한다.
우울하지만 밥을 먹는다.
비참하지만 산책을 한다.
이 모든 과정들은,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동을 할 수 있게 도와주겠지.
이 모든 감정의 질풍노도에도 무언가를 한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건, 감정이 질풍노도일수록 한다. 불안할수록 한다. 생각은 없어지지도 않고,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럼, 그냥 눈 앞의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착잡한 마음이야 있지만, 정말 어쩔 수 없다. 발버둥이라도 좋으니, 지금은 그저 시간이 지나갔으면 좋겠다. 해야할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