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불쌍하지 않다.

취준생은 그냥 취업 준비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by chul

요즘은 라디오를 듣고 있다. 가끔 취업준비생의 사연이 나오면 다들 기함하면서 슬퍼한다.

그걸 듣는 취준생(me!)은 가끔 어리둥절하다.

이게 그렇게나 슬프고 안타까운 시선을 받을 일인가?

나를 포함한 취준생들은 잘하고 있다. 취업을 잘했다가 아니라(그랬다면 취준생이 아니지) 취준생이 해야 할 일을 잘하고 있다. 아마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한 공고를 보고, 원하는 곳에 지원하고, 자소서를 쓰고, 인적성이나 면접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자기 자리에서 할 일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고생이 많겠다,를 넘어서 안타깝고 안쓰럽다는 시선을 줄 일인가? 나는 잘 모르겠다.

하긴, 나도 취업 준비생이 되기 전, 졸업 전 취업을 못 해서 취업 준비생이 되면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다.

나에겐 이걸 못 하면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던 것들이 많았다. (그렇게 배워왔기도 했다.)

대학교를 못 가면 죽는 줄 알았으나 나는 반수를 했고, 실패하면 죽는 줄 알았으나 나는 복학했으며, 친구 없으면 죽는 줄 알았으나 어찌어찌 아웃사이더로 살았다. 어떤 강의를 못 들으면 졸업을 못 한다고 했는데 대체 강의가 있었다.

세상은 생각보다 그렇게 죽을만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정말 어찌어찌되더라.


아니, 내가 이렇게 된 거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렇게 이 시기를 덤덤하게 보낼 수 있었던 나름의 이유와 사정이 있었다.


하나, 나는 이미 일희일비하는 과정을 지났다.

나는 동기들보다 일찍 취업준비를 시작한 편이었다. 다들 졸업 이후에 시작할 것을 나는 졸업 전에 해보겠다고 여기저기 많이도 뛰어다녔다. 그래서 많이 방황하고 많이 절망했다. 처음이니까. 그러나 이번엔 두 번째다. 그때처럼 일희일비하는 시기는 지났다.

떨어지면 악! 기분 나빠 맛난 거 먹는다. 붙으면 악! 기분 좋아 맛난 거 먹는다. 한두 달 일찍 시작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둘, 나는 남들이 중요하다는 시기에, 그 중요한 것을 챙기느라 떠나보낸 사람이 있다. 그래서 이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

고3 때, 내가 고3이라는 이유로 외가 쪽 할아버지의 병문안을 가지 못했고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대 4 때, 내가 취업준비와 졸업준비라는 이유로 친가 쪽 할아버지의 병문안을 가지 못했고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한때 자살기도도 했던 나는 목숨만큼 중요하고 허무한 것은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그 ‘선’을 넘는 건 쉽지만 넘고 안 넘고의 차이를 잘 알고 있다. 나의 몇 시간과 그분들의 몇 시간이 갖는 무게는 다르다. 물론 이건 그냥 나의 죄책감일 뿐이지만. 어쨌거나 살아있음이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으며, 부질없었음을 겪었다.

셋, 내 주위에는 이미 이 시기를 과거로 만든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힘든 시기에 마음고생을 비교적 덜 하고 있다.

어제도 무언가가 떨어지고 면접은 망쳤다. 그래서 피곤했고 돈을 좀 써서 맛있는 것을 먹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는 한때 자기 연민에 빠졌었다. 한 4년 정도. 그것이 내 인생에 필요했던 방황이라고 할지라도 다신 돌아가고 싶지 않다.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는 생산성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내가 너무 아팠다. 나는 아프기 싫다. 그래서 희도 비도 다 흘려보내기로 했다.

묵묵히 삶을 살아가는 자의 힘을 믿는다. 우린 분명 고생하고 있고, 힘이 드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불쌍하거나 비참하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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