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졸업 1등은 등골 브레이커가 되었나.

왜긴요 취직을 못 해서죠....

by chul
지하철에서 합정과 당산 부분을 좋아한다. 모두 함께 한강을 바라본다. 마스크 좀 그만 쓰고 싶다...


1등은 강철경, 000,000.... 팀입니다!"

우여곡절이 많았고, 그냥 졸업만 시켜달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달려왔던 졸업 프로젝트에서 1등을 했다. 한때 0학점도 받아보고, 도피성 반수까지 하면서 한심하다는 시선이란 시선은 다 차지하던 내가! 무려 팀 프로젝트로! 1등으로 졸업하다니! 이게 바로 끝이 좋다는 뒷심인가! 하하하!


아쉽게도 2차 면접부터는 함께할 수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귀하의 앞날에 좋은 날만 있길 바라며.....


그리고 백수로 졸업했다. 남들 다 취업을 미룰 때,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희한하다는 말을 듣곤 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푹 쉴 걸 그랬나 보다. 그래도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를 한 건 아닌데, 그것치곤 서류도 붙고 다양한 면접 경험도 하면서 내가 원하는 회사, 원하지 않는 일 등을 알 수 있었다. 정말 '대학'스러운 대학생활을 보냈다. 너무나도 큰 것들을 배우고, 경험하고 졸업해서 행복하다.

"네 여보세요 교수님, 말씀하신 거 다 보내드렸어요. 잘 지내시죠?"
"그래, 취직 준비는 잘 되어가니"
"(교수님 저 아직 졸업식도 안 했는데요)네, 아직 최종 합격한 것은 없지만, 그래도 시간 겨우 내서 준비한 것 치고는 서류 합격률이 높았거든요, 그래서 상반기엔 좀 기대하고 있어요. 본격적으로 준비하면 좋은 결과 나올 것 같아요."
"에휴, 넌 참 긍정적이구나?"

긍정적이란 단어는 긍정적인 뜻으로만 쓰이는 건 아니다. 나도 그 뜻을 잘 알았다. 천진난만하다, 뭐 이런 의미로 쓰셨겠지.

나는 그렇게 대책 없는 사람이 되었다.

컨설팅받으러 ktx 타고 달려가는 중.
학교에서 취업 컨설팅도 받아야 하고, 미뤄진 시험도 서울이고, 면접 볼 때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나 신경 쓸 거 생각하면.... 서울에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시험 치러 왕복 교통비가 10만 원이 넘고, 만약 애매한 시간이면 또 숙소 잡아야 하고.... 그러면 기본 15만 원은 넘는데 이게 여러 번 있으니...
엄마도 그렇게 생각해, 그런데 문제는 이제 아버지가 퇴사해서 월세나 용돈을 예전보단 적게 주게 되어서.
내가 구직활동 지원금 같은 거 알아보고, 짬 내서 알바 같은 것도 좀 알아볼게.

그리고 눈을 꼭 감고,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기 위해 침을 한번 삼키고, 말했다.


얼마나 줄 수 있어...?


그렇게 되기 싫었던 등골 브레이커가 된 기분. 정말 싫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 멋진 노을.


상반기는 없어진 거나 다름없다던데..."

그렇게 월세 절약을 위해 셰어하우스를 계약했고,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애초에 여기 올라온 것 자체가 면접과 시험을 치기 위해서인데, 코로나 때문에 채용공고가 한두 달 밀렸다 보니까 여기 올라와서도 할 수 있는 건 서류 지원뿐이었다.

이런 건 집에서도 할 수 있는 건데...

그래도 계약 상 이제 셰어하우스에 거주해야 했으니 어쩔 수 없이 올라왔다. 도서관도 안 열고 카페에 가서 자소서를 쓰고 있다. 왜 항상 서울만 오면 돈을 많이 쓰게 될까? 만족스러운 식사도 거의 안 했는데. 집은 불편하고, 잠도 푹 못 자고, 코로나 덕에 친구들을 만날 수도 없다.

그렇다, 나는 등골 브레이커가 되었다.

그제는 1등이었고 어제는 면접 탈락자였고 오늘은 등골 브레이커다. 그럼 내일은?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달라지는 바람에 나도 나를 잃어버리고 있다. 다들 변화하라, 도전하라고 하는데 나는 그만 하고 싶다. 적어도 2년 정도는 어딘가에서 움직이지 않고 싶다. 다음 날 눈을 떴을 때, 어제와 다른 장소인 이 상황, 그만하고 싶다.

나만의 속도. 지금은 잠시 (억지로지만) slow인 시간.
취업만 하면, 진짜 좋겠다 그렇지?"

난 이런 말을 믿지는 않는다. 대학만 가면... 에 덴 적이 있기 때문이다. 취업 그 이후에는 또 다른 고생과 삶이 이어질 것을 각오하고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 일단, 그것이 어른이 되기 위한, 내가 한 사람 몫을 해내기 위한 첫 번째 걸음이자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할 뿐이다. 그리고 나는 일을 하고 싶다. 대학 때도, 대학이라는 장에서 배울 것을 기대했더니, 정말 기대 이상으로 많은 것을 얻고 나왔다. 취업을 하면 그 이후의 삶이 있겠지.

두고 봐라 회사! 월급뿐 아니라 다른 경험과 지식도 쪽쪽 빨아먹고 나올 테다. 비록 지금 쪽쪽 빨아먹는 건 부모님 등골이지만, 언젠간 너네 월급 루팡 해서 다 갚을 거다! 그것도 빠른 시일 내에!


그렇게 등골 브레이커는 오늘도 회사 지원 동기를 쓴다.(왜겠어요 돈 내놔!라고 외치면서)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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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 글이 뭐라고 조회수가 터지고 있네요. 아마 다음이나 브런치 메인에 걸린 것 같습니다. (제목의 힘인가... 앞으로 제목 짓기에 힘을 써 봐야겠어요.)

사실, 어제 오후까지만 해도 많은 고민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셰어하우스에 대한 고민이었죠. 낯선 사람들과 살다 보니, 저도 긴장을 하게 되고, 그분들에게 어떻게 편하게 다가갈지, 내가 잘못한 일이 있는지를 계속 곱씹으면서 생각하다가,

'서류 불합격'이라는 메일을 받았습니다.

아주 정신이 팍 들고, 서울에 와서 가장 깨끗한 머리가 되었어요. 이럴 때가 아니다! 내 할 일만으로 벅차다. 이건 장난이 아니다! 하고 말이죠.

물론 부담도 있었지만, 부담보다는 단호함에 가까운 감정이었습니다. 몸과 머리가 가벼워졌어요.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사람은 활력을 되찾게 되고, 중요한 것에만 신경을 쏟도록 설계되어있나 봅니다.

직업을 구하시는 분들, 이미 구하신 분들, 멋진 직장인이 된 지 오래되신 분들, 퇴사하신 분들 모두 자신의 일자리에 대해 나름의 정의가 있으시겠지요. 모두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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