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박구리가 운다고 메일을 주시다니요.

대학에서 만난 나의 어른들.

by chul
철경씨 잘 지내나요? 요즘 온라인 강의를 하고 있어요. 철경씨와 함께 강의실에서 직박구리 얘기를 했던 것이 기억나네요. 교실에서 강의할 수 있던 것도 큰 축복이었어요."

철경씨는 올봄도 의미 있게 보내고 있겠지요? 항상 조심하세요.


컨설팅을 듣고 지쳐서 노트북을 붙잡고 졸다가 받은 메일이다.

교수님께서 언급하신 일은, 딱 작년 이맘때쯤이었다. 그 강의실은 벚꽃이 보이던 곳이었고, 벚꽃 위에 익숙한 새가 있었다. 교수님은 저 새가 무엇인지 궁금해하셨고 이것저것 찾아본 나는 직박구리라고 알려드렸다.

"저 새는 원래 산에 살지만, 개발 등으로 산이 깎이면서 살 곳이 없어서 도시로 내려오고 있다고 하네요."
"정말요? 참 슬픈 새네요."

새의 주거지 소식에 슬퍼하는 마음씨를 가진 교수님은, 그냥 지나가던 타전공 학생 1을 기억하고는 새를 보고 연락을 주셨다.

나의 대학생활은 어땠는가, 생각해본다.

나는 친한 동기들보다 말을 튼 교수님이 더 많았다.


교수님이 좋은 교수님이었던, 아니던 상관없이 교수님과 꼭 한두 마디씩은 했다. 교수님을 어려워했지만 무서워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말을 어떻게 덜 거슬리게 걸까,에 대해서 많은 생각은 했지만 말을 걸까 말까를 고민하지는 않았다. 좋은 말, 위로 다 얻었지만 딱 기억나는 말이 있다.

네가 그렇다면, 너는 다른 과를 가더라도 똑같이 힘들 거야."

당시 과에 적응하지 못해서 너무 힘들어하면서 전과를 고민했던 나에게 해 주신 말이다. 그리고 나도 알고 있었다. 나는 과에 적응을 못 한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너무 힘들어서 모든 것을 망치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전과를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상태가 좋아지기 위해 최선을 다 했다. 그리고 무사히 졸업했다.

그 교수님은 지나가듯 나를 상담해주신 거라서, 나를 기억하지는 못하셨다. 졸업 전시 때 인사를 드리자 어리둥절해하셨지만, 나는 인사를 드릴 수 있어서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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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나의 생각과는 매우 달랐다.


정말 친구가 많은 인사이더가 아니면 살아남기 힘든 분위기였다. 친구가 없으면 정보를 얻기 쉽지 않았고, 항상 듣는 말은 "과에 친구 없어?"와 함께 어리둥절한 (얘 뭐 문제 있나) 시선이었다. 다들 학점도 챙기면서 술자리도 나가라고 하였고, 알 수 없는 장기자랑을 시키기도 했다. 친구야 많을수록 좋고, 이런 생활이 잘 맞는 사람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아니었다.

나는 졸업 프로젝트에 집중했고, 내 지식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나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하였다. (혼나기도 많이 혼났다.)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심리상담 동아리도 들어보면서 입체적인 관계를 맺었다. 만약 대학이 말 그대로 학문의 가장 큰 장이라고 한다면, 나는 대학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대학생활을 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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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어른들은, 나의 이 답 없는 순간들이 언젠가 과거가 된다는 것을 그분들의 삶으로 알려주었다. 성인이 된 후에 만난 사람들- 꼭 교수님들뿐 아니라, 동아리 담당 선생님, 선배들, 컨설턴트 선생님, 상담 선생님, 의사 선생님, 강사 선생님, 알바 사장님, 이제 서로의 얘기를 하기 시작한 어머니와 아버지 등. 그분들을 보며 나는 언젠가 내 위치에서 잘 살아갈 나를 상상한다.


교정이 새삼 예뻐 보인다.

이제 수업에 쫓기면서 여길 걷지는 않는다. 대신 현실에 쫓겨서 자소서를 들고 걸음을 서두른다. 언젠가 당당하게 이 길을 걸을 수 있을까? 교정을 좋은 소식을 듣고 걷는 날만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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