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면 어떻게 하지?

의식의 흐름인 글.

by chul
2020-09-13-12-47-56-819.jpg 중학교 때 썼던, 10년이 넘어가는 옛날 그림용 노트

세상이 넓어지는 경험을 할 때마다 한 번씩 넘어진다. 예를 들면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이 되었을 때, 대학생에서 취업준비생이 되었을 때 말이다. 언젠가 사회인이 되면 또 한 번 넘어지겠지?

나는 끝을 좋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처음에는 적응을 잘 못 하다가 끝에는 결국 좋게 끝난다. 하지만 이게 역효과가 있음을 요즘 느끼고 있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하는데, 좋은 끝을 가진 나는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져있다. 그러나 새로운 시작을 하면 나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들, 내 마음대로는 되지 않는 환경에 처하고 절망하게 된다. 당연한 건데도 말이다. 자존감 없는 자신감이 이렇게나 무섭다.

2020-09-13-12-48-16-529.jpg

대학생 때부터 '최선'이란 것에 트라우마가 생겼다. 내 나름대로 열심히 했지만 정말 형편없는 점수를 받았을 때, 혹은 나름 괜찮은 점수여도 상대평가로 인해 평균도 못 한 등수를 받았을 때. 고등학생 때와 다른 세계이니 이런 일을 비일비재했다. 그래서 나는 어느새,

이게 정말 최선인가?

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이 의문이 좋은 쪽으로 발전하면 좋겠는데, 그게 아니라 모든 것에 제한을 두는 쪽으로 잘못 들어갔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최선을 다하지 못할 거면 하지 마라, 이게 내 최선인데 내 최선이 아니었으면 어쩌지? 이런 의문이 머릿속에 항상 떠다니게 되었다.

2020-09-13-12-48-37-420.jpg

취준생이기 때문에 모든 서류에 최선을 다하려고 하지만, 어떤 서류는 유독 잘 되어서 무조건 붙는다! 가 있고 어떤 서류는 열심히는 했는데 붙을지 말지 애매한 서류가 있다. 안타깝게도 무조건 붙는다! 는 예감은 내가 정말 가고 싶은 회사의 서류를 쓸 때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아마 더 욕심이 있어서 아무리 써도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정말 최선을 다 했나?라는 의문은 그게 내 최선이면 어떻게 하지, 하는 불안으로 번진다. 내 최선을 내가 인정하지 못한다. 나도 내 편이 아닌 것이다. 나의 '이런 최선'으로는 어디까지 만족해야 할까. 남들은 다들 날아다니는데 나는 그냥 걸어 다니는 것을 만족해야 할지도 모른다. 나에게 세상의 넓음은 곧, 나 자신의 노력의 역량과 한계를 마주한다는 의미가 되어버렸다. 내가 가진 것과 내 이상이 너무 멀어져 버렸다. 그 간극에서 아등바등 못 하는 중이다.

2020-09-13-12-48-55-873.jpg

오랜만에 친구들과 모였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다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던 오랜 친구들은 저마다의 고민을 하고 있다. 서로의 상황이 너무나 달라져서 이젠 고민을 꺼내는 것조차 조심하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취직을 1년째 준비해 가고 있고 그 사이에 취직이 되었지만 영 회사가 맘에 들지 않는 친구도 있다. 1년째 회사를 다니고 너무 힘들어서 퇴사를 생각하는 친구도 있다. 각자의 힘듦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내가 그들의 힘듦을 들어줄 여유는 없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제일 초라해 보였다. 이제 서로가 서로를 감당할 수 없게 되어버렸나 보다. 우리는 이제 우리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더욱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겠지. 그렇게 관계의 폭도 넓어지거나 좁아지거나 하면서 변할 것이다.

2020-09-13-12-49-17-430.jpg

이젠 가을이다. 씁쓸해하기 딱 좋은 계절. 나는 이런 시기를 '수능 냄새가 나는 시기'라고 부른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미뤄지고 있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이맘때쯤은 두 달도 안 남았다.)

5년 전의 나는 두 번째 수능을 준비하며 원래 학교로 돌아갈까 봐 무서워했다. 그리고 반수 실패로 돌아갔으나 어찌어찌 잘 졸업했다. 지금 우리를 둘러싼 많은 걱정들도 시간이 지나고 ‘그땐 그게 다였지만 돌이켜보니 참 쓸데없는 걱정이었어’하길 바란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