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빛 글이라서 무지개 사진을 넣었습니다.

그냥 아무렇게나 쓴, 요즘의 글

by ch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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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내 인생 끝났어!

라고 말하며 정말 끝났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우리 모두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은 웬만해서는 끝나지 않고 계속 계속 내 기대를 어긋나며 살아갈 것임을 안다. 끝나지 않는 이 상황에 이제 슬슬 질릴 때가 되었다. 방향은 여전히 모르겠다. 방향을 모르면 안 되는데, 차라리 놀았으면 이 기간이 안 억울할 텐데. 내 최선이 이것밖에 안 되다니. 아니면, 내가 최선을 다 해도 운에 따라 그냥 갈리는 인생이면 뭐하려 전력을 다해 살아야 한단 말인가.

기대를 어떻게 해야 할지, 그리고 그 기대에 맞는 노력이 어느 정도인지 여전히 모르겠다. 그래도 나름 공부 좀 해온 사람인데 여전히 노력의 정도와 방향을 모른다는 건, 내가 꽤 멍청한 사람이라는 뜻일 것이다.

별 일 다 일어나지만 생각보다 나는 별 것이 아님을.

정말 취업준비도 인생도 노력도 휴식도 다 방향을 잃어버렸다. 지금까지 너무 내 방향이 확고했으니까 좀 방향 찾지 말고 그 자리에 앉아서 별이나 달이나 구름 좀 보라는 세계(?)의 메시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 어제 자소서 쓰기로 한 시간에 오랜만에 친구들이나 만났다. 물론 새벽까지 쓰고 잤지만. 새벽은 참으로 고되다. 최선 의심증이 제일 폭발할 시간이다. 그래서 다음에는 아침에 일어나서 하기로 했다. 미라클 모닝 7일째라서 결국 몇 시간 못 자고 아침에 또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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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같은 취준생 친구를 만났다. 내 나름대로 그 친구는 똑똑하고 집안 사정도 좋다고 생각되어 조급함 따위는 없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아니면 워낙 남 배려를 잘 한 친구라서 내 조급함에 그냥 공감해 준 것일지도 모른다. 남 얘기를 듣는 편인 그 친구의 정확한 근황은 물어보아도 파악하기 힘들었지만, 뭐, 어때 우리에겐 함께 녹차 케이크를 먹으며 이야기를 한다는 중요한 임무가 있다.

헤어질 때, 다음에 보자는 말을 하였다.

"아, 우리 다음엔..."

다음엔? 다음엔 내가 서류 합격하고 보자? 다음엔 1차 붙고 보자? 다음엔 사람 구실 할 때 보자? 다음엔 합격해서 보자? 다음에 취업해서 보자? 우리의 만남에 붙어야 할 필요조건은?

없다.

그냥 보자, 야, 우리 다음에 또 아무 이유 없이 만나자.

그러자 나의 0.1초의 모든 고뇌와 의도를 알아차린 친구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우리, 먹으러 만나야지. 마라샹궈도 먹고, 얼굴도 보려고 만나야지.

그때 처음으로, 그 친구의 세상에 조금 들어간 기분이 들었다. 20년 넘게 다르게 흘러온 우리의 결은 몇십 시간의, 몇 년의 만남에서 0.1초 함께 흘렀다. 하지만 충분했다. 눈물이 조금 나왔다.

나는 어쩌면 큰 무지개가 없어도, 그냥 이렇게 만나는 작은 무지개만 평생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걸 보며 같이 신기해하고 웃는 사람이 있다면 괜찮지 않을까, 주변에 아무도 없더라도, 그냥 내가 저 무지개를 보며

"ㅋㅋㅋㅋ무지개 진짜 작네 ㅋㅋㅋ"

라며 사진을 찍는 인생이라면. 그걸로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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