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절망과 반성에서 시작한다.

'진작'이라는 말은 그만 쓰고 싶지만.. 어쩔 수가 없다.

by chul
1.PNG 시작해봅시다. 저는 아직 초안을 종이에 그려요.


나는 절망에서 시작한다. 더 예쁘게, 정확하게 말해보자면, ‘저렇게 했어야 했는데!’라는 절망, 즉 반성에서 시작한다. 그래서 항상 남들보다 1년에서 2년을 뱅글뱅글 돌았다. 한국에서 10대 20대에게 얼마나 1년 1년을 잔인하게 재단하는지 다들 알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직접 시행착오를 해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절망하기 전에 시작했으면, 깨달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반기가 끝나간다. 같은 스터디를 하는 사람들은 나보다 늦게 시작한 사람도 있는데 다들 대기업을 인적성까지 턱턱 붙고 면접 결과를 기다렸다. 스터디를 운영하는 내가 아무 데도 가지 못하다니, 심지어 인적성 스터디인데 인적성은 치지도 못했다.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반 이상이 나가고, 남은 사람들은 한 명을 더 뽑자는 쪽으로 의견이 정해졌다.



2.PNG 바다-심해-하늘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상한 그러데이션을 그렸습니다.


그렇게 취업 준비생들이 모여있는 오픈 채팅방에 글을 올렸다.

00 스터디원 한 명 모집합니다! 룰은 일주일에 한 번씩 서로 문제 내주시면서 자료해석 푸신 거 인증해주시면 되고요, 000로 카톡 주세요!

라고 보내자마자 1분도 안되어 5명에게서 카톡이 왔다. 나는 그때 싸늘함을 느꼈다. 가끔, 아니 자주 내가 과거에 잘못해왔다거나 앞으로 크게 변해야 함을 깨닫게 해 주는 일이 터지기 전에 이런 싸늘함과 울렁거림을 느낀다. 울렁거림을 무시하고 그 분과 카톡을 주고받다가 스터디에 초대해드렸다.

안녕하세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제가 000밖에 아직 안 해서 그런데, 담주쯤이면 ###까지 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라며, 우리가 정해놓은 룰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을 인증하셨다.

그때, 결국 나는 싸늘한 울렁거림을 마주했다. 나는,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3.PNG 책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분한테서 취업준비 초반의 나를 보았다.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서는 ‘이쯤 하면 되겠지. 양이 중요하니까’라며 빠르게 넣어버리고 몇 개는 긴장과 조급함 때문에 이상한 실수를 해서 제출해버린 모습을 보았다.

그러게, 나도 초반엔 저렇게 많이 풀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더 많이 푼다. 다른 영역도 공부한다. 그리고 나는 그 초반에는 서류를 많이 붙었다. 비록 코로나가 터졌다고 해도 내 서류 합격률은 어느 순간부터는 아주 떨어졌다.

지금까지 환경을 탓했는데, 나의 탓이라면? 자소서 모듈을 바꾸자마자 서류에 합격한 바람에 그 자소서대로 쓰면 되겠다며, 이제 다 붙을 것이라며 꼼꼼히 못하지 않았나? 나는 성장하는 게 아니라 편해져서 오히려 후퇴하는 게 아닐까? 또 어디선가 뒷심이 부족한 일을 저지르고 있다면 나는?

4.PNG 바다에서 시작해서 하늘로 가는 책

빅 매직에서 제일 좋아하는 말이 있다. 과거의 당신을 용서하라는 말.

나는 이 싸늘한 반성을 한 이후로 미라클 모닝을 시작했다. 취업도 취업이지만, 내가 지금 뭐라도 바뀌지 않으면 못 버틸 것 같아서였다. 일단 지금까지와는 조금이라도 다르게 살고 싶었다. 지금까지 대충 풀던 모든 문제를 최선을 다해 풀고 있다. 안 쓰일 것 같다고 해도 언젠가 쓰일 것이라고 그냥 믿기로 했다. 서류 합격만 바라보지 않고, 지금 쓰는 모든 것들은 최종까지 갈 것이라고, 그럴 각오로 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초사이언처럼 1분 1초 치열하게 살고 있지는 않다. 그냥 마음을 조금 다르게 먹었다.

5.PNG 완성! 옆의 동그라미는 열기구.


올해 초, 내 목표는 ‘이렇게 해야 했는데,’라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었다. 지금 하는 것처럼 과거에 했어야 했는데, 라며 하루하루 성장하는 사람이 되기 위함이었지만 이렇게까지 뼈저리게 아플 줄이야. 하지만 지금이라도 하루하루 성장하면 내가 ‘와 지금까지 진짜 더 나아지려고 그렇게 고민했다.’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 ‘진작’이란 말을 우리는 너무 좋아한다. 하지만 못 했으니까 ‘진작’이라며 반성할 수밖에 없다.

대답할 수 없는 ‘왜’에는 미련을 갖지 않으려고 한다. 단순히 그 이유가 내가 거기에 있어서, 그게 시간이 흘러서, 라면 더욱. 싸늘한 반성을 준 스터디원은 오늘도 정해진 양보다 많이 가지고 왔다. 나도 항상 이런 자세여야지. 그렇게 살아가야지. 오늘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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