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을 준비하게 만든 건 내 탓이야.

by ch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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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안됐지, 그렇지?

오래간만에 괜찮은 기업 자소서를 붙었다고 하자, 엄마가 바로 대답했다. 전형은 진행 중이었지만 내가 자신 없어하는 시험이 추가되었다. 엄마가 ‘안됨’을 가정한 이유는 안다. 괜히 기대해서 내 어깨에 기대를 짓누르고 싶지 않아서다.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엄마는 부단히 도 항상 ‘최악’의 경우를 얘기했고, 그래도 괜찮다고 하였다.

언제부터였을까, 엄마가 실망을 준비하게 된 건.

실망, 실패, 올해 나에게 ‘실’이라는 단어는 너무나도 많이 따라다녔다. 실패해도 된다고 말하고 있는 엄마지만, 나는 슬퍼졌다. 나의 실패와 실망이 세상에 익숙해진 것이 맘에 들지 않았다. 나는 아직 어디까지 희망을 노래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펜을 들었다.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어서.

밖에 나갔지만 카페의 모든 의자는 치워져 있었다. 상황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깨닫고, 집에 왔다. 테이크 아웃한 아메리카노의 얼음은 반 이상이 녹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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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처럼 1,2년 늦는 것에 죄를 짓는 나라에 살면서, 직접 겪어봐야 깨닫는 나는 항상 죄를 지어왔다. 보통 무언가를 겪고, 시행착오를 하면 1,2년 정도가 걸리니까. 수습하는데도 1,2년 정도가 걸리니까. 다들 어디서 시행착오를 하기 전 계획을 미리 그렇게 멋있게 짜는 걸까? 나는 졸업을 유예해야 했음을, 자격증을 준비해야 했음을, 인턴을 해야 했음을,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진심으로 깨닫고 있는데, 다들 어떻게 미리 안 거야? 나는 왜 항상 없어봐야 아는 거야? 잘 생각해보면 남들이 내게 미리 조언을 주고 있었는데, 왜 귓등으로도 안 들은 거야?

그래서 내 일상은 실망을 준비하는 것이 되었다. 나는 공백기가 1년이 되는 죄목을 달게 되었다. 뭘 하셨냐고 물으면, 나는 취업준비를 했다고 한다. 그것을 물은 사람들은 면접관이든 아니면 다른 사람이든 ‘다시 제대로 된 핑계를 댈 준비를 주겠다’ 는 듯이, 못 들은 척하며 한번 더 묻는다. 그래서 뭘 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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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하고 있지? 앞으로 뭘 해야 하지? 나는 일을 하고 싶다. 나는 1년이 늦었다고 그렇게 크게 실망하진 않지만, 이미 실망한 평가자들에 의해 나는 밀리게 된다. 여기도 저기도 항상 실망을 준비시켜놓는다.

정말 가고 싶던, 직무도 맞던 기업이 인적성이 아닌, AI면접으로 바꾸었다. 난 한 번도 AI면접을 통과해본 적이 없다. 서류를 통과하고, 드디어 나도 인적성 친다! 면서 팔짝 뛰었는데,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그렇게 난 또 실망을 준비해놓는다.

내 사람들이 미리 실망을 준비해놓게 만든 내가 싫다. 내 눈치를 보느라, 미리 실망하는 엄마의 말에 마음이 아팠다. 예전에 우연히 본 글에, 인턴 정규직을 혼자서 전화하지 못 한 어느 분이 ‘다른 것보다 내가 뭘 그리 잘못했는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문장이 생각난다. 나도 그렇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보다, 내가 뭘 그리 잘못했기에, 나한테 이러느냐는 생각밖에 안 든다. 이렇게나 넓은 세상이 굳이 나를 주목하고 있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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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뀌고 싶다. 계속 벽만 쳐다보며 자소서를 두들기는 일상은 1년이면 족하다. 단기 알바라도 좋고, 겨우 그것밖에 못 하냐는 말을 들어도 좋으니, 나는 활력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 그렇게 나는 ‘일’을 찾아야지, 일을 해야지, 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 일을 찾는다고 생각하니까 훨씬 용기가 생겼다. 그다음 일을 어떻게든 될 것이다.

곧 생일이다. 역대급으로 우울할뻔했는데, 친구가 미리 보내준 선물인 원두를 본다. 드리퍼에 털어 넣으며, 내 우정은 짝우정이 더 많았던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이것도 결국 실망을 준비하는 행동이네, 슬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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