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청이는 것도 춤사위

넘어질 듯하면서도 안 넘어지며 잘 굴러가는 내 인생.

by ch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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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경아, 그거면 돼. 그렇게 살아가면 잘하는 거야.

예전에 나도, 이 친구만 있으면 돼! 다른 친구는 필요 없어! 하던 관계가 있었다. 물론 교복을 입던 아주 어렸던 나이이고, 누구나 그때는 단짝 한 명은 있으니까. 그런데 나는 그 집착도가 정말 심했다. 모두에게 불퉁스러우면서 그 친구에게만 집중했다. 그렇게 그 친구가 나를 포함한 모두에게 성인이 됨과 동시에 연락을 끊어버렸을 때, 나는 뼈저리게 깨달았다.

내가 하나로만 정의되어서는 안 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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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친구가 있어야 했고, 좋아하는 것도 하나 내지 둘.. 많을수록 좋았다. 나를 구성하는 요인들이 다양하고 유기적이고 항상 흐르는 물과 같아야 했음을 알게 되었다.

하긴, 한때는 대나무 같은 삶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신념이 꺾이면 바로 없어지는 그런 삶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신념이 꺾인다고 내 인생이 끝나지는 않았다. 남은 건 허무함으로 겨우겨우 살아가는 나날들이었다. 그래서 이렇게까지 무겁게 살 필요는 없지 않나? 뭐 내가 지구를 구하러 온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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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남들에게 인정받을 멋진 직장’을 꿈꿨다. 누군들 안 그럴까. 하지만, 이것이 의무가 되자 나의 일상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가볍게 생각하기로 했다. ‘일’을 하기로. 무엇이든 좋으니까. 어차피 살아갈 거면, 나 하나는 먹이고 살 일이면 충분하니까. 너무 자아실현 같은 거에 목숨 걸지 않기로 했다. 그런 건 자소서에나 열심히 적기로.

너무 강한 개성은 오히려 독이 될 때가 있다. 누구나 자신이 도망칠 통로를 뒤에 두어야 한다. 꼭 배수의 진을 쳐야만 하는 경우도 있지만, 100세 시대인데 뒤에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살아가면 너무 힘들지 않을까. 아니면 내 생각이 너무 ‘요즘 것들’ 같은 안일한 생각일까. 뭐 어떤가. 안일한 젊은이도 있어야 세상이 조금 더 평화로워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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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하는 나는 지금까지 하나로만 정의되는 삶을 살아왔다. 고집이 세고, 자기만의 생각이 확고한, 그런 사람으로.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가장 많이 하는 말이 ‘그러던가’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내 인생 중 지금의 내가 가장 마음에 든다. 백수니까 한심하긴 한데, 상태는 굉장히 마음에 든다. 이제 흘려보낼 것은 흘려보내고, 춤을 출 때는 춤을 춘다. 무언가를 위해 열심히 살아오기도 했다. 그리고 언제든 다시 열정을 갖고 무언가를 할 각오와 준비도 되어있다. 하지만 다시, 춤을 출 때는 춤을 출 것이다. 나는 아주 많은 조각들이 모였으니까. 그중 한두 개가 없어지거나 추가되거나 바뀐다고 해서 휘청이지 않는다. 휘청일 수도 있지만, 춤사위라고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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