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펜을 듭시다.

뭐라도 해봅시다.

by ch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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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그게 나의 최선이었어…

아쉬운 감정에 휩싸여서 어쩔 줄 모를 때, 나는 일단 펜을 든다. 아직 아날로그 시대의 사람이라서 바로 노트북을 켜는 건 습관이 안 되었다. 나는 스케쥴러도 아직까지 직접 그리고 손으로 일일이 적는 사람이니까. 펜을 들고 팟캐스트든 노래든 아니면 아무것도 틀지 않든 누군가와 통화를 하든 배경 음악을 준비해놓는다. 잡히는 게 유선 노트면 글을 쓰는 거고, 무선 노트면 그림을 그린다. 오늘은 편지지를 사고 남은 박스 같은 것이 잡혔으므로 그림을 그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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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공대생 출신이 드러나는 알고리즘 같지만... 나는 어떤 일이 끝나면 하는 어떤 일이 이어져있다. 예를 들면 오늘처럼 정말 가고 싶던 곳의 면접이 영 아닐 때, 좋지 않을 때, 나는 일단 펜을 든다.

가장 좋은 것은 이런 실패나 실수를 덤덤하게 ‘흠, 어쩔 수 없지’하고 받아들이는 자세이다. 하지만 그런 정신적인 성장은 갑자기 되는 게 아니다. 그래서 행동을 먼저 하는 게 나의 해결방안이었다. ‘일단,’하고 한번 말하면 알 수 없는 힘이 생긴다. 일단, 이라고 말하면 앞의 일이 과거임이 확실하게 와 닿는다. 그래서 나는 일단 펜을 든다.

일단 펜을 들었더니 머릿속이 정리가 되기 시작한다.

아 그때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면접 마무리가 나를 확인만 하다가 끝나버렸어.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더 좋은 답이 떠오르지 않는데. 직무에 자신 없는 사람처럼 보였으려나. 면접관이 활짝 웃어주는 건 안 좋은 신호일 때가 많은데. 애초에 조금 주제에 상관없는 것도 물어본 걸 보면 중간부터 나를 포기한 게 틀림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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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잠을 좀 자서 다시 생각해보니. 정말 어쩔 수 없더라. 나도 면접관들도 최선이었고, 이젠 완전 그들의 선택에 달려서 기도만 할 수밖에 없었다. 간절한 마음에 잠시 이성이 날아갔는지 유튜브에 yes or no 타로 등을 찾아봐서 5개의 동영상에 ‘최종 합격할 수 있을까?’를 물어봤더니 전부 아니란다.

이렇게 아쉬운 건, 내가 정말 열심히 준비했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열심히 준비한 건 거의 보여주지도 못한, 그 순간에 이를 발휘하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쉬웠다. 과정만은 최선을 다했고 내가 가진 최선이었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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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어쩔 수 없음을 이젠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는 이 회사는 아니지만 같은 산업의 다른 회사에 인턴을 하게 되었다. 채용 전환형이긴 하지만 그 비율이 적을뿐더러 정규직이 아니라 인턴일 뿐이라서 정규직 취직이 간절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이제 서류를 좀 붙나 했더니 면접에서 떨어지곤 한다. 최종까지 어떻게든 끌고 가고 싶은데, 나에게 그런 힘이 아직은 없는 걸까.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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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들을 정리 좀 해야겠다. 그전에 방 정리도 좀 하면서 새로운 일상을 받아들일 각오를 해야지. 낮잠도 좀 자고, 인턴 시작하면 못 잘 테니까. 나의 목표는 변화였다. 그 변화가 일어나긴 했다. 그러니 그것만으로 만족하고, 아직은 때가 아녔을 뿐이라며, 나는 계속 최선을 다할 것이고 언젠가 닿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일단 오늘도 펜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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