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는 비참함과 노력과는 상관이 없다.
착잡하게 면접을 마치고 집에 와서 물을 마셨다. 집에는 피발자국이 흩어져 있었다. 같이 사는 친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싶어서 놀랬다가 내 발을 보았다. 피가 흥건했다. 오랜만에 대면 면접을 봐서 구두를 신었더니, 발톱이 다른 발가락을 파고들어 구멍을 낸 듯했다. 신기하게도 너무 밖이 추워서 감각이 거의 없었다. 아프진 않았다. 웃음이 나왔다. 노력이나 비참함과 결과는 아무 상관이 없음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주는 꽤 괴롭고 외로운 한 주였다. 아직 며칠 남아있기야 하지만, 꽤나 괴로웠다. 왜냐면, ‘왜’가 지배한 한주였기 때문이다. 답이 없는 질문에 답을 요구하다 보면 그 안으로 파고들어서 다시는 나오기 힘든 상태가 된다. 특히 나는 그런 땅굴을 파는데 소질이 있기 때문에, 엄마와 전화를 하다 보면 그런 걱정을 많이 들었다. 하나에 너무 큰 의미를 두어선 안된다고,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 건데, 너한테 온 안 좋은 일에 너무 파고들어서 짱 박혀있으면 안 된다고.
하지만 슬펐다. 나는 올해 마지막 면접일지도 모를 면접에서 꽤나 맘에 안 드는 대답을 했고 (면접관도 나도 읭? 할만한. 긴장을 해서 그런가 이상한 말이 튀어나왔다.) 면접 직전과 직후에는 동기들이 대기업을 붙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왜 이게 내 이야기가 아닌 거야?
도망치고 싶었다. 그 모든 것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었다. 거기서도 밥은 먹고살아야 하니까. 도저히 무언가를 향해 나아갈 자신이 없어졌다. 그렇게 나는 잠이 많아졌다. 너무 피곤해서 잠시 누웠는데 낮잠을 3시간을 자서 방 안이 어두웠을 때, 헛웃음을 지었다. 친구들의 “드디어 붙었어!”라는 카톡을 보고, 잠시 멍하게 어둠을 그냥 바라보았다. 나는 울고 있었다. 흑흑거리는 소리가 안 나고 나도 내가 우는 줄 몰랐을 정도로 그냥 눈물이 뚝뚝 나왔다. 그래 모두가 성공할 수는 없지, 같은 대학을 나와도, 누구는 미친 듯이 지원하고 누구는 한두 개만 지원해도 대기업을 하고, 누구는 1년 공백 끝에 인턴에 만족해야 했다.
중간이 없으면 안 돼.
엄마는 말을 골랐다. 엄마가 이렇게 나에 대해서 말을 고르기 시작한 건 최근이다. 엄마는 매우 직설적인 사람이라서, 꼬인 나와 맞지 않아서 의사소통을 할 때 자주 싸웠다. 엄마가 말을 고를 때까지 기다렸다.
너는 원래 욕심이 너무 없었잖아. 대학 욕심도, 공부 욕심도. 그런데 갑자기 너무 많은 욕심이 생겨버렸어. 그러니까 괴로운 거야. 세상에는 다양한 삶이 있어. 그만큼 너도 다양하게 바라야 해. 무조건 최고나 최저만 생각할 게 아니라.
나도 안다. 나는 내 인생이 있다는 것을. 살아있음에 감사해야 함을. 특히 지금 같은 때는. 하지만, 그래도 누구나 잘 되고 싶다. 노력한 것보다 더 보상받길 바란다. 적어도 노력한 만큼 보상받길 바란다. 그것이 확실하다면 얼마든지 뛰어들 수 있다. 하지만 하늘이 떨어트리는 황금열쇠는 그 모든 경우의 수를 박살내고 랜덤으로 찾아간다. 나와 분리된 그들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그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쉽지 않다. 언제까지 같은 단톡 방, 카톡, 전화로 승전보를 울린 그들을 축하해주는 역할만 해야 할까.
아침마다 상상을 한다. 누군가에게 “나 공백기 1년 넘었는데도 내가 지원한 곳 중 가장 좋은 곳에 취직했잖아. 너희도 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나를. 하지만 점점 옅어지고 있다. 이젠 상상이 잘 되지 않아서 애를 먹는다. 나는 그 면접에서 왜 그렇게 말한 거야? 나는 왜 남들이 말하는 그 한 끗을 잡지 못하고 떨어지는 거야? 나는 왜 이런 거야? 왜 내가 아닌 거야? 답이 없는 왜에 중독된 한 주가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