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살아도 돼.

얼마나 한심하든 유난이든,

by chul

그냥 살아, 그래도 돼.

엄마한테 이 말을 들었던 순간을 기억한다. 엄마는 가끔, 요즘은 자주 내가 그 순간의 햇빛의 방향까지 기억날 정도로 말 한마디로 잊을 수 없는 장면을 만들어주곤 한다.

나만 똑 떨어졌을 때, 그럴까 봐 무서웠을 때, 엄마는 그래도 된다고 했다.

어쩔 수 없지, 가 아니라 정말로 그래도 괜찮다. it’s okay.

실제로 혼자 정규직이 되지 못했을 때, 그 일을 두고두고 회자하며 '내가 큰 일을 겪었잖아, '라고 엄마에게 말하면 엄마는 항상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어차피 몇 년 후면 아주 작은 일이 될 거고 그러니 그 일에 너무 몰입하거나 의미 둘 필요가 없다고.

정말이다. 당신이, 내가, 우리가 어떤 유난한 일을 겪고 있던 그게 큰 일은 아니다. 앞으로 살아간다면.

우리가 어떤 유난한 사람이라 해도 상황에 따라 무난하게 대처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살아만 있다면 말이다.

그냥 취직 준비 잘 안 되는 20대가 뭘 안다고 살아있음에 집착하는지, 정규직 안 된 거에 너무 궁상과 유난을 떠는 건 아닌지. 글을 쓰다 보니 걱정되는데 괜찮다. 나는 유난한 사람이니까. 나의 유난 덕에 유난히 미움받았지만 그것을 신경도 안 쓸 정도로 유난히 사랑받았다.

나는 요즘 살아가는 활력을 느낀다. 운동을 하다 보니 체력이 좋아지고 몸놀림이 가벼워졌다. 예전이면 피곤해할 일들도 이젠 피곤하지 않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하고, 간단한 요기를 하고 10분 정도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다. 그리고 8시까지 도서관에 도착하여 공부를 시작한다.

받기 싫은 전화는 받지 않는다. 억지로 웃지도 않는다. 하지만 웃고 싶으면 떠나가라 웃는다. 함부로 기대하고 상처 받고 의지하고 의지 받는다. 가는 사람 못 막고 오는 사람도 못 막는다.

나는 앞으로도 유난히 시끄럽겠지.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어쩌면 여러분 인생에서도 유독 눈에 띄게 굴러가면서 멀어진 사람이 있다면 그게 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뭐 이렇게 굴러가는 사람도 있는 거다.

살아있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날씨가 너무 좋기도 하고, 유난히 슬프고 힘든 일들이 많아서 더욱 평화가 잘 와 닿는다. 그냥 이렇게 살 수밖에 없다. 체념이라면 체념이고 인정이라면 인정이다. 적어도 내 어깨에 힘은 예전보다 없다. 늘 눈 사이에 있던 뇌 천 자는 옅어졌다. 엄마는 도시락을 싸는 재미에 들렸다는 내 이야기를 듣고 누구보다 기뻐했다. 취업준비 때문에 재미없는 인생을 살까 봐 걱정이 됐다나. 취업준비하는 딸을 두고 '재미없는 인생을 살까 봐'걱정하는 엄마도 엄마다. 내 유난은 어쩌면 엄마를 닮았을지도 모르겠다. 전화가 갑자기 와서 운동을 4시간 하라는 아빠를 닮았을지도 모르겠고. 뜬금없이 카카오톡으로 '힝힝 누나 양'하는 되지도 않는 애교를 부리는 남동생도 나를 닮았을지도 모르겠고.

'왜 유독 나만 이럴까, '

하는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내 이야기가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조언을 하지 못한다. 공감도 함부로 못한다. 잘난 사람이 아니고 가진 것도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옆에 앉아서 함께 푸념하는 것뿐이다. 그러다 사정이 좋아지면 커피나 한잔 같이한다. 유독 유난인 인생 때문에 하루하루가 지친 당신에게 내 글이, 이야기가 당신의 외로움을 덜어줬으면. 아주 조금이라도. 그랬으면 내 브런치 북 시리즈는 성공이다.


여담 1>

이 브런치 북을 적으면서, 통일성 있는 그림이나 사진으로 구성하고 싶었는데 잘 된 것 같아서 기쁘다.

여담 2>

곧 아이패드를 산다. 그림과 웹툰을 아주 다양하게 그릴 생각에 콧구멍이 벌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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