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나는 나보다 약한 자의 말은 듣지 않는다.
다사다난한 일들을 겪다 보니 남의 불행으로 오히려 안심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되었다. 모두가 그렇다고 생각은 안 하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그 정도의 불행은 아닌 자기 자신을 돌봤다. 흔히 남들이 '쟤는 왜 저렇게 안 풀리냐'라고 지칭하는 인생을 사는 사람으로서, 억울하거나 비참했던 적은 없지만, 씁쓸할 때도 많다. 특히 어렸을 때는 위로라도 받고 싶고 어딘가에 토로하고 싶어서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이야기를 했었다. 너무 힘들다고 한탄하면서,
그리고 그런 남의 불행을 잡으면서 자신이 원하는 바로 이끌어내려는 가스 라이팅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사실은 내가 20대 초에, 몇 달 동안 사이비 종교 사람들에게 잘 못 걸리면서 아주 뼈저리게 교훈으로 새길 수 있었다.
발단은 간단했다. 21살의 나는 애매한 복학으로 친구도 사귀지 못했다. 그렇게 우울증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방황했다. 나의 이런 모든 모습을 알고 있던, 복학 전부터 알고 지낸 동기 A가 이런 미끼를 던졌다.
아는 분이 인간관계에 대한 논문을 쓰셔, 그래서 자료를 모으기 위해서 인터뷰를 좀 하고 싶어 하는데, 혹시 너 근처에 인간관계나 지금 힘들어하는 사람 있어?
얼마나 매력적인 미끼인가. (심지어 나더러 하라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 찾아달라는 척까지 완벽하다!)
동기를 통해 약속한 카페에서 만났고, 그곳에서 ‘선생님’이란 사람에게 상담을 받으면서 설문지를 작성했다. 이상한 것 투성이었지만 당시 나는 상황을 잘 파악하지 못했다. 그 선생님만 음료를 시키지 않았다는 사실부터(서울은 1인 1 주문이 보통이니까), 상담이나 관련 설문지는 카페 같은 개방된 공간에서는 하지 않는 원칙도 눈치채지 못했다. ‘선생님’은 나의 가족사부터 현재 상황 그 모든 것을 파내고 파내어서 꼬집고 몰아붙이며 자연스럽게 다음 약속을 잡았다. 그렇게 나는 아무것도 없는 서울에서 지인이 생겼다는 기대감으로 앞으로 달라질 모든 상황을 기대했다.
‘선생님’과 동기의 지인이라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에게 밥을 얻어먹으면서 스터디룸에서 맨날 이상한 공부를 했다. 하지만, 분명 나를 위한 상담시간인데 왜 책을 보며 거기 나온 인물들에 대해서 공부해야 하는지 흥미가 생기지 않아서 혼났다. 가장 이상했던 것은, ‘선생님’은 항상 나더러 그 수업 이후 느낀 바를 공책에 적어서 사진을 찍어갔는데 보관 목적이면 그냥 그 공책을 본인이 가져가면 되는 게 아닌가. 아마 지인을 연기한 그 사이비 관련 사람들만의 단톡방에 내 일기를 공유하면서 내가 어디까지 넘어왔는지를 분석한 용도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잘 넘어오지 않는 내가 불안했는지 선생님은 나더러 하루하루 일기를 적어서 자신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라는 미션을 주었다. 아마 감시 목적이었겠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있는 그대로의 일기를 써서 제출했다. 지금 다시 읽으니 초등학생이 적어도 담임 선생님께 혼날만한 아주 간단한 일기를 민망하다는 생각도 안 하고 제출했더라.
떡볶이를 먹었다,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졌다, 친구 집에 가서 영화 봤는데 케이크를 깜빡해서 케이크가 녹았다. 따위였다.
‘선생님’은 더 본격적인 공부를 위해 뭐를 외워서 어디로 가라고 했다. 하기 싫어서 거절했더니 예전에 만났던 다른 사람을 만나보라고 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제야 그동안의 몇 달이 아주 이상했음을 깨닫고 친구에게 전화로 상황을 설명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모든 것이 이상했다. 이상하다면서, 내일 가지 마라고, 집에서 꼼짝 않고 있으라고 친구가 말렸지만, 이미 그들은 내 집 앞까지 찾아온 적이 있었다. 서로 감정이 격해져 봤자 내 주변에 이미 그들로 가득 차서 내가 불리함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나를 설득하기 위해서 보낸 그 사람은, 눈빛이 예전에는 초롱초롱했는데 지금은 눈빛이 안 그렇다며 화를 냈다. 나는 렌즈를 바꾸었다고 대답했으나 그는 그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나더러 앞으로의 계획이 어떻냐고 물어봐서 일본어 능력시험 자격증을 공부하려고 한다고 대답하니, ‘영적인’ 성장 계획이 어떻냐고 다그쳤다. 나는 신을, 그를 믿는 척하면서 회개하며, 다음 주에 뵙겠다고 했고 그대로 본가로 도망쳤다.
그렇게 내 주변에 남아있던 모두가 사라졌다. 모두 사이비와 관련돼 사람들이었으니. 유일하게 대학교에서 인사하고 다니는 동기와도 연락을 끊었다. 나의 힘든 상황 더 나아가 불행이 누군가에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넘어가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었지, 안 그랬으면 내가 무슨 글을 쓰고 있을지 상상도 하기 싫다.
나는 여전히 우당탕탕 살아가며 어떤 힘든 일은 극복하고 어떤 힘든 일에는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걱정이라는 가면으로 나의 이야기를 가십으로 삼는 사람들도 아직 제대로 구별하지 못한다.
'우린 왜 이렇게 비참하고 불쌍하냐'고 하는 친구의 말에 '엥 나는 별로..'라고 생각만 할 뿐이다. 달라진 점이라면 이제 사람을 향한 집착을 내려놓아서 가십거리가 되어도 한숨 한번 쉬고 만다는 거? 하지만 그들이 뜯고 맛보고 즐기는 모습은 그들이 원하고 상상해서 만들어놓은 '불행한 나'이지 진짜 나와 내 인생이 아니기 때문에 이젠 별 상관이 없다. 좀 재수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