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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에서 오는 책임을 맞이하다.

도망치고 싶어요 진짜

by chul

나에게 책임이란 아직 내가 가지지 않아도 되는 것을 의미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다 못해 5살짜리 아이라도 과자를 먹고 이가 썩으면 그 이 썩음을 감당하는 건 그 아이란 말이다. 아무리 부모님이 돈을 주고 치료를 맡기고 의사와 간호사가 치료를 해줘도 결국 과자를 많이 먹은 그 친구가 오로지 치료와 그 이후를 감당해야 한다.


이렇게 나이 먹고도 저딴 식으로 행동한 이유는 책임지면 죽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보다 돈이 많거나 나이가 많거나 경력이 많은 사람이 책임져주면 좋겠다 책임져주시겠습니까?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낼모레 서른이다.


그리고 외로웠다. 최근에 조금 더 좋은 곳을 위해 오퍼가 왔던 곳을 거절했다. 물론 직무와 여러 상황상 가고 싶지 않았던 곳이기도 했지만, 언제 또 날 불러주는 곳이 있을까, 하는 걱정으로 밤을 지새웠다. 예전에도 이런 선택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주변 사람들은 전부 나를 말렸다. 하지만 이번에 나는 나를 믿어보고 싶었다. 바뀌고 싶었고, 저번처럼 그 선택 이후에 바람 빠진 풍선처럼 날아가고 싶지 않았다.

물론 내가 이 선택을 할 수밖에 없던 외부 요인들도 있었고, 나 또한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준비해야 했지만 그들은 내 알 바가 아니다. 지금 내가 감당해야 할 이 외로움과 씁쓸함은요 젠장


어쨌거나 이번에는 제대로 잘 찾아보고 시작을 하려고 한다. 운동과 산책을 하며 동시에 많은 것들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나라는 사람은 정말 투덜거리기만 하기 때문에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결국 후회를 하고 만다. 그러니까 적어도 남 탓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오로지 그냥 내 깜냥으로 선택을 해야만 한다. 나는 최대한 남 탓은 안 하고 싶고 안 하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 탓일 문제도 있긴 하다. 뭐 그런 사람은 나에게만 그러는 것은 아니고 모두에게 그럴 것이기 때문에 알아서 잘 사시고.


재미있는 건, 또 책임이 그렇게까지 날 죽이진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나같이 경력도 뭣도 없고 그냥 누군가의 결정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사람이 결과를 오롯이 책임진다는 것은 죽음 말고는 없어 보였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다 포기하고 할복할 준비나 했다. 그것도 뭐 어찌 보면 죽는 것보다 책임이나 그 망한 일 이후의 삶을 살기 싫다는 회피이기도 했다.

하지만 죽지 않았다. 불행히 다행히도. 일단 죽지 않았으니 밥을 먹어야 한다는 의미였고, 그렇기에 또 살아갈 방법을 슬쩍 강구해야만 했다.

정말 그게 끝이었다. 뭐 드라마틱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게 내가 지구로 치면 아주 작은 존재라서 그런 건지 내 인생으로는 꽤 큰 전환점인데 세상은 그대로였고, 세상이 그대로니 그 안에 사는 나도 그대로였다.


이번에도 외롭지만 어떻게든 또 선택을 하고 마는 나를 위하여 오늘 하루도 che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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