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세상이 나를 때리더라도 말이다.
비가 온다. 힘든 한 주였다. 요즘들어 힘이 없는 입장의 20대 후반은 여기저기서 화풀이 대상이 된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쉐어하우스와 계약한 집주인이 갑자기 문을 안 열었다며 '뚱뚱하다'는 악담을 하는걸 어이가 없어서 지켜보았다. 다만 나이만 찬 할머니가 우리가 말할 틈도 없어 소리만 박박 지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젠틀했던 나는 그냥 뚱뚱한 사람이 되었다. 뚱뚱한게 문제가 아니라, 공격하고 싶은데 공격할 거리가 없어서 살집을 가지고 욕을 먹은 사람이 되었다.
나는 요즘, 많은걸 그만두었다. 하지만 그게 잘 안 되었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회사에서 모두 앞에서 '계속 이러면 수습 지나고 너랑 같이 일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던가 '장난하냐'와 같은 말은, 내게 큰 상처가 되었다. 그 상처는 나를 겁내게 만들었고 자신감이 없어지며 회의에서 제대로 말을 듣지 못하고 보고를 횡설수설하며 확인하지 못한 부분을 겁이 나서 확인했다고 했다가 번복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욕, 다시 자신감 하락.
이 모든것이 내가 어려서, 권력이 없어서 일어난 일이라는게 믿기지 않는다. 다짜고짜 인신공격을 모두 앞에서 당하는 나는, 모두가 눈치를 보는 안쓰러운 사람이 된다.
나한테 왜 그러지?
가장 괴로울 때는, 삶이 번거로울 때다. 살아있어서 나를 먹여살리는 이 상황이 번거롭고 지친다. 그래서 나는 아침마다 나를 이겨보려고 한다.
아날로그 시계를 하나 샀다. 아침에 일어나서 그 시계를 물 컵 옆에 두고 사진을 찍는다.
좋은 상태는 곧 좋은 상황을 불러온다,며 노래를 불렀지만. 너무 힘든 상황에서 좋은 상태를 만들기는 커녕, 현재 상태에서 더 나빠지는 것조차 겨우 막아내었다. 욕을 먹고, 큰일났다 싶어서 눈이 돌아가서 다른 부서 모두를 돌아다니며 문제를 해결한 나는 입사 3개월차 신입이다. 수습기간이라는 이유로 계속 이러면 같이 못 일한다는 사람들을 보며, 인턴이 아니라 정규직이라 여길 입사했다는 사실이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정말 나랑 같이 일할 사람들이 아니구나, 같이 앞으로 함께할 사람에게 첫 인상을 이렇게 줄 리가 없다. 나가라고 할 지, 나가게 만들지 궁금해졌다.
그들이 어떤 의도로 그렇게 나를 대하는지, 나의 정규직 전환은 어떻게 될 지. 이젠 관심 밖이다. 내 관심은 하나다. 나를 이기는 것. 나를 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겨보는 것. 그렇게 나를 위한, 당당한 상태를 조금씩 얻어가는 것. (그나저나 ~것이라는 표현 안 좋다던데 지금 이 글에서는 이 표현 말고는 쓸 게 없네요 양해부탁)
확실히 나는 겁이 많아지면서, 일을 더 엉망으로 하고 있었다. 그 겁이 혼나는 것에 대한 겁도 있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잘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겁을 내고 있었다. 처음에 너무 좋은 인상을 본의 아니게 심어주었던 나는, 수습 1차 면담에서 '기대치보다 너무 못한다'는 말을 듣고 겁이 났다. 그 말 듣기 전까지만해도 나는 나한테 그런 기대치가 있는줄은 몰랐으며, 그 말 이후로 온갖 인신공격이 들어올 줄도 몰랐다. 나에게만.
이런 내가 갑자기 당당해질 수 있을까, 하지만 여기서 그들을 극복하지 못하면 어디선가 무슨 일을 하더라도 도돌이표가 될 것 같았다. 나만의 잘못으로 망가진 상태와 상황은 아니지만, 재수없게도 내 인생이라서 이걸 안고도 살긴 살아야한다.
내일도 나는 네모난 시계 옆에 파란색 물컵을 둘 것이다. 무슨 표정으로 회사에 갈 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할까말까하는 일들을 그냥 앞뒤 안가리고 해버리고 혼나고 싶다. 안 해서 혼나는거 말고, 해서 혼나보고 싶다. 했는데 못해서 혼나려고 한다. 그럼 누군가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려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