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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Mar 09. 2024

자신의 삶을 싫어하면서도 진심인 사람

어쩌구

3월이다. 3월에 대해서는 이미 글을 한번 썼다. 하지만 또 쓰는 이유는 정말 생각보다 더 이 기간이 괴롭기 때문이다. 


나는 뭐 정보성 글을 쓰거나 영향력있는 브런치 작가가 아니니까 일기쓰듯이 써도 된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선언) 그래서 최근에 느낀 바를 그냥 빠르게 쓰고 다시 할 일을 하러 가려고 한다.



모든 일들은 일어날만해서 일어난다고들 한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경제적으로 궁핍해본 적이 최근들어서 처음이다. 당연하게도 퇴사 후 재취직을 못 했고, 심리상담을 들었고, 알바는 못 구한데다가 원가족들에게 지원을 받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알바조차 구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온라인 지원을 하라고 해도 전화로 바로 문의하는게 훨씬 나은데다가 20대 후반은 20살들이 있는 알바자리에서 밀려버린다는 것도. 팝업스토어 알바를 한 친구가 직전 회사의 마케팅 경력을 살렸다(?)는 말을 듣고 뜨악했다. 나만 힘든게 아니라고 해도 눈 앞에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더 어렸을때 힘들었다면 어땠을까, 싶었다. 곧 서른인 내 주변에는 이미 자리잡은 녀석들 투성이다. 아니 힘든 시기마저도 남들보다 빠르게 겪으려는거, 너무 한국인스러운 생각인가? 그렇다고 평생 잘 살아왔다기에는 경제적인 문제를 제외하곤 신체/정신적인 학대나 사회생활 이후의 연장자들에게 협박을 들어왔으니 억울할 따름이다. 세상에 괜히 태어났나, 무당을 찾아갈까, 사실 잘 못 태어난게 아닐까 싶었던 나날들.  누군가가 평생 내 뒤에 따라다니며 내 발을 걸고 비웃는 것 같은 그런 나날들 말이다.



오늘은 부끄럽게도 집에서 해야 할 일들 하지만 해결되지 못할 일들에 압도되어 소리내어 한시간을 울었다. 내 잘못도, 내가 원해서 얻은 이 상황도 아닌데 삶을 구걸하는 기분이 들어서 비참했다. 이정도로 몇년씩이나 자리잡는게 실패한거면 그냥 결국 남은 나를 싫어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았다. 면접을 보면서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나를 보면서도 내가 혐오스러웠다. 결국 나는 등신인가, 한국에서 선호되지 않는 사람으로 한국에서 낙인찍어져 버린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뇌를 써도 결국 고장나서 더 이상한 사람만이 될 뿐이었고 나라는 사람은 왜 있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와 다른 무언가를 얻어야한다면 다른 시도를 해 볼 수 밖에 없었다.



왜 죽음을 또 선택하지 않았냐면, 의외로 내 맘대로 끊어지지 않는데 삶이기에. 살고 싶으면 죽을 일이 오고 죽고 싶어도 온갖 지랄해도 결국 목 위에 머리 붙어있더라. 


나는 죽을때까지 삶이 아름다웠다고 말할 순 없겠지. 하지만 적어도 마지막에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고 존나 빡쎈 삶이었다고 헛웃음을 지을 순 있겠다. 이런 나이기에 이 글을 쓸 수 있을테니까.


다시 털털 털고 운동이든 구직이든 뭐든 생계 잘 해결하러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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