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ul Jun 19. 2024

5년간 여러 회사를 거쳐 신입 취준으로 회귀하다니?

사회가 나를 밀어낼 때 무엇을 해야 하는가.

부끄럽... 진 않고 한국인이 제일 신나서 욕하는 <뭐 하나 진득하게 있지 못했던> 나는 5년간 취업준비를 했다. 회사는 거의 3번 바뀌었나? 나의 미숙함도 있었지만 사실 억울한 면도 있다.


1. 대학 졸업 연도에 인턴 취직, 정규직 전환 실패

2. 프리랜서로 일하던 곳에 정규직 취직, 월급 못주겠다면서 굳이 안 좋은 말 듣고 짤림

3. 직전 직장에서 1년간 신입 5명 괴롭힘으로 내보내는 부서에서 1년 넘게 버티다 퇴사.(여기서 만난 모지리들은 내가 회복되면 글을 쓰겠다.)


그러다가 다시 일하는 중.

이렇게 된다.


사실 그 5년의 강제 취준생 회귀 기간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것들이 제법 많다.


이런 기간이 주어졌을 때 처음엔 자책을 하더라도 결국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그 시간이 아마 한국은 백수말곤 주어지지 않을듯.


물론 나도 취업준비를 시작하고 지금까지 이미 이 기간을 겪은 선배들의


'지금 이 시간이 아니면 자신이 무엇을 잘할 수 있을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어떤 강점이 있고 그걸 어필하며 무기로 삼을지 고민할 시간이 없다.'


는 말에 콧웃음을 쳤다. 어차피 한국은 정해져 있지 않은가. 명문대, 대기업, 성별에 따라 선호되는(약간 억지로 주어지는) 직종들과 성격도, 원하는 인재상도 다 같잖아. 배고픈 소크라테스는 허울 좋은 말이지. 금수저들이나 할 수 있지. 당장 모든 길이 끊기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고민할 필요가 뭐가 있나. 뭐라도 잡아야지.

시바 님들은 가졌잖아요.

'일단 그런 고민은 취직하고 나서 하면 돼.'


이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취직이나 운동 등 여러 길이 풀릴 때도 있었고, 일단 경제적인 상황이 안정되어야 내가 뭘 하고 살지 고민할 여유가 생기기도 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긴 한데.. 나는 확실히 5년간의 구직과 회사 적응이 지지리도 안 풀려서 억지로 성찰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아마 평생 이런 생각 없이 불도저처럼 달려가다가 강도 심한 편집증 같은 것을 겪고 30대 중반에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늘 안에 시한폭탄이 있던 셈.

유럽인가 미국인가 gap year란 기간이 있다고 들었다. 뭐 일이년인가 정도 봉사활동이나 아르바이트 캠프힐 등을 돌아다니면서 대학 가기 전의 10대 후반 20대 초반 젊은이들이 자신의 진로와 일에 대해 잘 생각하는 합법적인 기간이랄까?


한국에 도입되면 아마 '남들보다 효율적으로 gap year 때 추월하는 방법'같은 영항 몇백 개 나오겠지.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시작되면 제일 먼저 마케팅되는 건 보습학원과 선행학습 광고니까.


그러니까 나같이 취준기간이 1년이 넘게 주어져버린 사람들은 강제로 gap이어가 주어졌다고 보면 된다. 맞다. 정신승리다.

하지만,

앞으로 6년정도 20대다.

나는 학부생시절에 정신승리를 전공했단 사실.


내가 이 기간 동안 나에 대해 알게 된 사소한 요소와 성향들이 있다.


생각보다 나는 새로운 일에 적응을 잘한다는 점.

기계설계라는 전공처럼 한 일을 꾸준히 파는 것보다는 기획이든 프로젝트든 프리랜서든 넓은 흐름을 보는 일을 더 좋아한다는 점.

포커페이스라고 믿어왔는데 가끔 표정관리가 더럽게 안 된다는 점.

자기 찔리는 게 있으면 그걸 인정하기가 싫어서 말이 길어져서 비호감을 살 수도 있다는 점.

운동이나 글쓰기 등의 하루의 일정 시간 이상은 스트레스 해소를 하는 편이 몰아두고 한 달에 2일 여행 가는 것보다 효과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도.


물론 그놈의 '한 길만 꾸준히 하는 사람' ''입사 후 포부가 명확한 사람' 같은 한국형 인재상이 내가 아니라는 사실은... 어릴 때부터 알았다. 이 방황동안 확인사살당하다 보니 음..


내가 아닌 것으로 살 수는 없었다.

아니 나도 버티고 싶었는데 주변 사람들이 못 버티더라고. 하하.


지금까지 모든 나의 경력과 이력.. 이라기에는 그냥 뭐라도 잡아보고 싶어서 복잡해진 이력들. 면접에서 나를 싫어하는 듯해 보여도 기죽지 않고 내가 정의 내리고 생각한 나를 전달했다. 연이 되면 가게 될 터이니 안 맞는데 맞출 필요는 없으니까.


그리고 5년간 온갖 고용불안, 퇴사, 전환실패, 쓰레기 상사들을 겪다 보니 이젠 별 일이 또 일어나도 어떻게 잘 살아갈 거란 자신감이 생겼다. 하다못해 카페 알바 정규직으로 들어가서 잠시 머리를 식힐 수도 있고, 프리랜서로 콘텐츠 하게 될지도 모르지 그게 오랜 꿈이었으니.


내가 원했던, 남들에게 선망받고, 있어 보이는 - 그리고 나는 갖지 못한 - 그 무언가는 아직도 갖고 싶다. 솔직히 부럽다. 그나마 나는 나대로 살아야 함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음을 취준이란 녀석과 싸우면서 알았다. 여기도 오래 있고 싶지만 내 맘대로 되지 않으니 지금을 즐겨야지.  대학생 때보다 상황이 안 좋았는데 마음과 상태는 훨씬 편하고 건강한 이 아이러니.


에라이 기분이다, 오늘 날씨도 좋으니 사진 찍고 막국수 먹고 커피 마시러 간다.

이전 11화 망했다는 한국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