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를 나름 지키겠다고 초봉 4천이 넘는 대기업대신 기존 스타트업에 남아있다가 잘리기도 했고, 인턴에서 정규직 전환이 안되기도 했고... 여러모로 이제 화나서 눈물조차 나지 않는 과정을 거쳤다.
남들은 자리를 못 잡는다고 나를 비웃기에 바빴고 누군가에겐 그게 나의 약점으로 잡혀서 휘두르기 좋은 사람으로 비쳤다.
당연히 집에서 돈을 빌리는 데는 한계가 있었고 곧 서른이었기 때문에 난 무언가라도 해야 했다. 취업준비 외에 경제활동 및 생존활동을 해야 했던 것이다. 남들이 낙오되었다고, 걔 결국 회사 적응 못 했다고 하는 동안.
나는 사무실에서 앉아서 꼭 컴퓨터를 두드리지 않아도 먹고살 수는 있음을 실감했다. 그러니까, 물론 긴 기간을 보고 나이를 보면 어딘가의 정규직으로 있어 보이는 직장에 가야 했지만, 그전에 못 들어갔다고 해서 돈이 없거나 소속이 없다고 죽어버리지는 않았다.
계약직도 아닌 사무보조.
프리랜서 일
재택근무로 일당 얼마 받기
카페 및 다른 서있어야 하는 알바.
예전에 있어 보이던 일들에만 집착했던 내가 서른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그 일들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리고 생각보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서 생활비는 챙길 수 있고 실패자 같아도 나는 나를 책임질 수 있더라.
그냥 나이 많은 아저씨들에게 '어이'하고 불릴 때도, 정규직 및 계약직보다 못한 '사무보조 걔' 정도로만 불리기도 했다. 동기들은 대기업 혹은 괜찮은 직업과 직장을 가져서 대리를 다는 나이가 되었다. 은근슬쩍 나를 무시하는 동창들도 생겼다. 전 회사 사람 중 내 취직에 미친 듯이 집착하던(왜일까 본인은 그 회사를 잘 다니고 있는데) 동기는 잊을만하면 '취직했냐'라고 물어댔다. 취업 준비생에게 무례하다 못해 실례가 되는 질문임을 넘어서 '여기보다 좋은 곳 가면 가만 안 둬.'라는 살기까지 느껴졌다.
나는 그를 차단했다.
전 직장 쓰레기 같은 리더 두 명부터 그냥 '취급'을 받아왔다. 하지만 그 취급을 받으면서도 첫 번째로 돈을 벌었도 두 번째로 운동과 식단을 했으며 세 번째로 취업과 관련된 활동을 수행했다. 자소서를 쓰고, 이력서를 고치고, 멘토링을 신청하고, 자격증을 땄다.
내 삶에 최선을 다하다 보니 내게 일거리를 주는 멋지고 고마운 사람들로 주변이 채워졌다.
다들 너무 고마웠고, 그래서 나는 나와 주변인들을 포기할 수 없었다.
세상이 나를 함부로 대하는 것은 아팠지만, 그럼에도 세상과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내 삶이 짓밟혀도 되는 무언가는 아니었다.
나의 삶을 기꺼이 책임지는 연습. 지금 당장 원하는 것을 가지지 못했더라도 삶을 널브러뜨리지 않는 자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