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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Jul 17. 2024

왜 전공을 안 살렸냐니요.

모든 건 정답 없이 내 선택만이 있을 뿐인데.

전공 왜 안 살리냐?

님을 죽일 순 없잖아요.


취업준비를 하다 보면 많이 드는 생각이 있다.

내 전공이 00인데, 어쩌지?
이 전공 살려야 하는데, 어쩌지?


뭐, 정답은 없겠지만

 대충 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한 길만 꾸준히 하는 게 미덕인 이 나라에서 가장 미움받고 한심한 눈초리 받기 좋아하는 나는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들어갔을 때랑 졸업 때까지만 해도 다들 취업 깡패인 곳이라고, 남초인데 얼마 없는 여자로 들어갔으니 취직 잘 될 거라고 치켜세워주기 바빴다. 그런 그들과 나를 포함하여 모두가 상상도 못 한 일이 일어났는데.



첫 번째

어려운 공학이 내게 도저히 안 맞고 어려워서 적응이 안 되었다는 점.


두 번째

코로나가 터져서 기계공학도들이 가는 제조업이 순간 죽었다는 점.


. 벌써 그건 핑계라고 하는 몇몇 분들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실제로 전공을 튼 사람은 제 주변에는 저뿐이었고 동기들은 대기업 잘만 갔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아닌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 모두 다들 서울대 나오고 싶고 구글 입사하고 싶고 몇억 자산가가 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이 조금 더 많지 않으신가요. 제겐 이 세상이 그랬습니다 시이바.  


나에게도 꿈이 있었습니다. 남들보다 훨씬 잘 살기만 하면 되었던, 남들 말대로 탄탄대로를 겪다가 세상을 하직하는 무너지기 쉬웠던 꿈이요.


요즘 트위터나 인스타 등을 보면 20대 초중반의 어린 분들의 '공대 나올걸' 하는 한탄을 많이 듣는다. 진짜 그들의 한탄이라기보다는 목소리 큰 몇몇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자 다들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셈이다.


나는 공대 나온 내가 좋다. 열심히 공부해서 그렇게 더럽게 안 맞았음에도, 학사경고를 두 번이나 맞았음에도 3점 중반의 학점과 이를 커버하는 졸업프로젝트 1등(및 다른 상)을 가진 과거의 내게 너무 감사한다. 여러분도 그런 과거의 자신이 있지 않으십니까?

그러면 열심히 최선을 다했던 그 어리디 어린 스무 살 초중반을 너무 매도하지 말고 지금 이 상황에서 자신에게 제일 정답이라고 생각되는 선택을 하는 것은 어떨까요?


물론 어렵다고 소문난 공대(전자 기계 화학 컴퓨터 등등...)일수록 취직률이 높고 메리트가 있는 것은 적어도 내 시기에서는 사실이다. 내가 마케팅, 기획 쪽으로 가게 된 것도 기술적인 이해와 창의적인 프로젝트라는 독특한 스펙인덕이었고, 실제로 이 전공이어야만 지원이 가능한 기획/마케팅 직군도 종종 있다. (b2b특화된 제조업이나 아이티 같은 직군)


하지만 엔지니어 인턴을 하면서 혼자 정규직에서 떨어지기까지 했고, 그 대기업에서 설계 배우는 것보다는 프리랜서 및 스타트업에서 서비스 기획이 훨씬 즐거웠다. 적어도 후자가 '죽을 만큼 괴롭지는 않았다.'


여전히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뭐가 맞다고 하기에는 몇 개월이란 시간은 너무 짧다. 이 회피성향 강한 녀석. 끈기 없는 녀석.'이라고 욕을 해댔다. 여전히 입사해서도 듣고, 면접에서도 대놓고 들은 적도 있다.


끈기라... 당신들은 그럼 개꼰대 안 될 끈기가 부족했던 것 아닐지.

오또카지?


얼마나 훌륭한 삶을 살았으면 자기보다 20살은 어린 친구들에게 그런 말을 하며 낮은 자존감을 채울지 신기하다. 물론 그 말이 맞다. 하지만 사람들이 다들 상황과 이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란 게 있다. 당신도 그럴 것이다. 꼭 그래야만 했던 선택지. 하지만 남들에게 말할 수 없어서 그저 이력서에는 '공백기'로만 채워져 버리는 그런 선택지 말이다.


회사가 망했거나. 짤렸거나. 괴롭힘을 당했거나. 병이 있었거나. 시험을 준비했는데 못 붙었거나. 집안에 어떤 사정으로 다른 일을 해야 했거나. 오로지 한 곳을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할 여력이 없었던 젊은이들 말이다.


전공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왜 이리 왔냐고? 내 브런치니까 내 맘이다.

그래서 내 결론은


전공을 살려야 할까요?

살리는 사람도, 안 살리는 사람도, 살리다가 안 살린 사람도, 안 살리다가 살린 사람도 많다.


지금 전공 살려서 취직하거나 밥 벌어먹을 수 있으면 지금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 그건 맞다. 등록금과 시간이라는 엄청난 것들이 들어갔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하더라도 '안'하더라도. 지금 이 거지 같은 상황에서 혼자 밥 벌어먹거나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은 우리는 본. 새. 난. 다.


그리고 뭐랄까. 전공 안 살린 직업군에 갈 때마다 뽑힌 이유가 '기계공학 전공이어서'라는 아이러니한 경험을 해온 나로서는. 무엇이든 도움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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