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결국 실험이라면
나는 그것을 실험해 보기로 했다.
나는 스스로를 구원해 줄 수 있는가?
나에겐 누구보다 그 무엇보다 "있어 보이는 것이"중요했다. 있어 보이지 않으면 죽일 것처럼 달려드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둘 다 반대의 양상으로 내 인생의 무한한 불행 루트를 만들었다. 그냥 폭력이던 아버지(그리고 자식들이 건장해지거나 경제권을 갖게 되자 그 대상을 더 약자에게 바꾸는 비겁한 모습을 보이던) 보다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는데 어머니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신건강의학과를 가고 심리상담을 받고 자해를 하다가 잠들었던 나보다 더 치료가 필요했던 건 그들이 아니었던가, 나는 인생 자체의 괴롭힘을 당했다.
그리고 그 인생의 루트가 반복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또 소외당했고, 또 비슷한 양상으로 윗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았다. 그리고 어찌할 수 없는 상사(거나 선배 거나 관리자)에 의해서 그룹에서 반강제적으로 나오게 되었다. 어릴 때야 뭐가 뭔지 몰랐지만 나중에는 그룹이 내게 월급, 돈, 생활등과 직결되자 그룹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곧 나의 생활에 직격타로 돌아왔다. 어느 순간 모든 게 달라질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누군가의 인정은 곧 법이었다. 인정받지 않으면 죽는다고 느꼈던 어린 시절은 내가 더 나를 옥죄이게 만들었다. 잘하는 것도 모자라서 실제로는 똑똑해야(효율적으로)했다. 그걸 누군가가 인정해주지 않으면 나는 열심히 한 것도, 잘한 것도 아니었다. 그곳에 있을 자격이 없었다. 빨리 누군가가 이야기해줘야 했다. 잘했다고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그런 사람도 있다고, 하지만 아무도 말해주지 않으니까 나는 더 \<옳다\>는 가치에 집중했다. 얼른 더 옳은 일이라고 말해, 이게 정답이라고 말해. 정답이라고 말할 때까지 말할 사람을 찾아다니겠어.
엄마가 미안해. 그때 함께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너를 외롭게 두었고 괴롭게 두었다. 네가 나를 용서하거나 우리 가족을 보거나는 너의 마음과 선택이지만, 하나만 말할게.
너는 그 무엇도 잘못한 적이 없어.
네가 틀렸던 적이 없어. 넌 어릴때부터 그랬어.
너는 네가 하고싶은대로만 하면 돼.
이젠 초라해진 사람의 사과를 받으며, 내가 어떤 짓을 했는지. 무엇을 원했는지 더 알 수 없어졌다.
어쩌면, 나또한 물리적 폭력을 행사한 아버지보단 말로 이길 수 있는 어머니를 괴롭힌것처럼. 아버지와 같이 누울자리 뻗고 사과를 요청하고 면박을 준 것처럼.
나또한 이런 사람이면 어떻게하지? 나는 죽을때까지 아버지의 사과는 받을 수 없을 것이다.
하루는 시작되었다.
여전히 많은 소모적인 일들을 당연하게 받지만 다른 일을 해내는 사람들에 의해 그냥 소모만 당할 때. 하늘을 보면서 퇴근을 하며 그런 생각을 했다.
진정한 인정이나 사과 없이도 나는 살아갈 수 있을까?
사실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안타깝게도 살아는 있는 게 지금이었다. 나에게 상처를 준 당사자가 내게 사과나 인정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교통사고나 병과 다르게 당장 내가 죽지는 않았다. 그런 사과와 인정은 정말로 필요하고, 남을 상처 준 사람들이 나쁜 것임엔 틀림없다. 하지만,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보상을 받지는 못할 터. 그렇다면, 그렇다면 살아갈 수 있는 것인가?
그런 실험을 해봐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