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
서현 교수의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는 표면상으로 보면 일반인들이 건축에 대해서 입문하기에 좋을 의도로 쓴 책이지만 사실은 건축가들이 건축을 어떠한 관점에서 보고 읽고 듣고 지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하는 책이다. 왜냐하면 책 곳곳에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리며 건축가의 의도가 잘 드러난 건축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지만 그와 반대로 그렇지 못한 건축물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은 3차원 입체도형이다. 그렇다면 3차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2차원이 필요하고 2차원은 다시 1차원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다시 1차원은 0차원 즉 점을 바탕으로 한다. 저자는 책의 출발을 점, 선, 면에서부터 출발한다. 즉 그림을 걸기 위해 벽에 못을 박아야 한다면 어디에 박아야 할까. 보통은 벽의 한가운데에 박는다. 그렇지 않다면 선택지는 많다. 만약에 두 개의 못을 박는다면 즉 점을 찍는다면 그것으로부터 벽에 대한 공간의 통제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건축에서 본다면 바닥에 기둥을 놓은 즉 바닥에 점을 찍는 행위로까지 연결된다. 예를 들면 종묘에 늘어서 있는 기둥이나 세종문화회관에 세워진 기둥이 바로 그것이다. 높고 굵은 기둥에 의한 점의 위치 선점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위압감을 느끼게 한다.
건축을 하기 위해서는 재료를 선택해야 한다. 현대는 많은 건물들이 벽돌이나 콘크리트를 사용한다. 누군가는 우리나라의 건물들이 회색의 콘크리트만으로 지어져 있고 성냥갑 같은 벽돌만으로 지어져 있어서 우중충한 느낌이 난다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건축물의 잘못은 재료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잘못은 그 재료를 잘못 사용한 건축가에 있다. 실제로 벽돌은 흔하게 보는 형태로 쌓을 수 있지만 인간의 창조적인 사고에 의해 얼마든지 그 형태를 변형해서 건축을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쪼개진 벽돌을 이용해서 빛의 그림자를 만들어 내거나 줄눈을 변형해서 말이다. 마찬가지로 회색의 콘크리트는 로마시대에서부터 쓰였던 것이다. 거푸집만 있으면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콘크리트 건물은 그 특유의 회색빛을 직접 드러나게 하는 형태로 건축물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현대에 이르러 하나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기도 하다. 노출 콘크리트처럼 말이다.
서현 교수는 점에서부터 출발한 건축 이야기를 우리나라에 세워진 건축물을 통해 좋은 건축이란 무엇이며 그 건축물에 들어가 있는 건축가의 숨은 생각을 말해준다. 그 생각이 건축가의 의도에 맞건 그렇지 않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건축을 해석하는 행위의 다양성은 감상의 창조성이라는 의미를 빛나게 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인상이 깊었던 점 중에 하나는 그 건축물을 지은 건축가의 이름을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다. 왜냐하면 건축이라는 행위는 건축가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본 설계는 건축가가 하지만 건축을 실제로 하는 행위는 여러 사람들의 노력과 정성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계적으로 혹은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진 건축물을 어느 한 건축가의 작품으로 말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건축이라는 것이 결국은 건축주 즉 건축을 의뢰한 사람들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자본주의 시대에서 건축이라는 것이 결국은 돈에 의해서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건축이라는 것이 인간의 활동이 자유롭게 일어나는 공간이 아닌 수익창출의 수단으로 간주된다면서 저자는 이점에 대해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또한 건축주뿐만 아니라 사회 이데올로기 즉 사회 지배층의 입김에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에 대해서도 안타깝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현대 건축물, 예를 들면 국회의사당은 국회의원을 뽑은 시민들은 건물의 양 끝에서 출입할 수 있고 가운데는 국회의원 및 그와 관련된 사람들만 드나들 수 있는 현실에 대해서 개탄해 마지않는다. 민주공화국인 시대에 국회의사당은 전제 군주의 조선시대 궁을 닮았다고 말하고 있다.
옛것은 좋은 것이지만 그것은 현대에 맞게 재해석되어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저자는 국립 민속 박물관 및 독립기념관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그 건축물들은 옛것을 그대로 가져다 놨을 뿐이다. 여기저기에서 한국의 미라고 하는 기와나 처마를 차용해 건물을 짓지만 억지로 뭔가에 꿰맞춘 느낌이다. 이것은 건축가가 의도를 했다기보다는 건축을 의뢰한 사회 지도층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국립현대미술관을 설계한 건축가도 그러한 압력을 받았으나 세계적으로 지명도가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그러한 입김을 거절할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국립현대미술관은 우리나라 전통을 재해석한 한국 현대건축의 걸작으로 외국의 저널에 널리 소개되었다. 그러면서 전통은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지 모양을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건축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다. 자본의 논리에 따른 건축물은 아무런 의미도 정신도 가지지 못한다. 건축은 사회 이데올로기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시대정신에 맞는 건축물을 지어서 후대에 남겨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조심스럽고 정성스럽게 건축이라는 행위를 해야 한다.
건축은 멋있다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가져야 한다. 건축이라는 것은 우리의 가치관을, 우리의 사고 구조를 우리가 사는 방법을 통하여 보여주는 인간 정신의 표현이다.
우리는 건축물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멋있다, 크다, 넓다, 등등의 표현으로 건물의 겉모습에 대해서 말을 한다. 그것은 정신의 드러남이 아니다. 건축가는 건축이라는 행위를 통해 건축가의 사상을 드러냄과 동시에 시대의 사상도 그려 내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건축은 그냥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하나의 제품에 불과하다. 그러한 제품이 시대를 뛰어넘고 장소를 넘어 인간들에게 남겨질 리는 만무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건축을 바라볼 때 겉모습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뛰어넘어 주변 환경과의 어울림, 시대적 요구에 따른 사상의 표출, 건축의 존재 이유를 볼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