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rginia M. Axline
버지니아 M. 액슬린(이하 액슬린)의 「딥스」는 세상을 향해 마음의 문을 닫고 있던 소년 딥스가 액슬린 선생님을 만나 차츰 마음의 문을 열고 세상으로 들어가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딥스는 촉망받는 집안의 아이로 태어났다. 딥스의 아버지는 유명한 과학자였으며 어머니는 장래가 촉망받는 외과의사였다. 하지만 딥스가 태어날 때는 그리 축복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에 치여서 살고 일이 삶의 전부였기 때문에 아이를 가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원치 않던 아이였기 때문에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했다. 총명한 두뇌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래 친구들 및 선생님과 원만한 관계를 맺지 못했다. 딥스가 가지고 있는 명석한 두뇌를 어머니는 끊임없이 시험하고 확인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딥스는 인간과 인간사이의 관계를 맺는 것보다는 사물과 관계를 맺는 것에 익숙해져 갔다. 아버지의 관점에서 봤을 때 딥스가 이상한 말을 하면 딥스를 방안에 가두어 놓곤 했다.
액슬린은 어린이와 부모의 관계를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임상심리학자이다. 어린이뿐만 아니라 부모들과도 심도 깊은 상담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딥스의 어머니는 딥스를 액슬린에게 상담치료(정확히 말하면 놀이치료)를 허락했을 때 자기 및 아이 아버지와는 어떠한 상담을 하지 않겠다고 거부를 한다. 이때부터 딥스의 부모님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어머니 또한 딥스와 마찬가지로 마음의 문을 닫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내용은 그렇게 특별한 것이 없다. 액슬린이 딥스에게 취한 방법은 놀이치료라는 것이다. 책을 보면 놀이치료라는 것이 뭔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아이와 같이 놀이방(놀이방에는 장난감 및 여러 물건들이 있다. 딥스는 특히 물감을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하는데 물감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고서 액슬린은 딥스가 그림을 그리는데 뛰어난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에 들어가서 아이가 무엇을 하든 놔두는 것이다. 관찰차 즉 액슬린은 관찰만 할 뿐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액슬린은 딥스가 주도적으로 놀이를 하게끔 하고 딥스가 말하는 것을 잘 들어주고 적당한 응답만 할 뿐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자신의 감정 및 생각을 쉽게 드러낼 수 있을까. 특히 부모에게서 마음과 감정의 상처를 받은 아이라면 어떨까. 책을 읽는 내내 의문이 들었다. 딥스는 액슬린을 만난 지 두 번만에 자신의 마음 깊이 묻어두었던 감정 및 생각 마음을 조금씩 드러내 보였다. 두 번째 만남이 아니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액슬린은 딥스의 행동을 보고 말을 들으면서 딥스가 나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딥스의 담임 선생님 및 학교 선생님들은 딥스가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왜 버리지 않았는지 액슬린은 파악했던 것이다.
문제는 거기에서부터 출발을 한다. 딥스의 담임선생님 및 학교 선생님들은 딥스가 친구들과 잘 어울릴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너무 많은 간섭 및 충고, 반응으로 인해 딥스는 나아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지 못했던 것 같다. 액슬린이 딥스에게 취한 치료방법은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놔두는 것이다. 인내를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액슬린은 그 점을 신뢰했고 딥스와의 상담기간 내내 딥스를 바라만 보았다. 섣부른 충고나 간섭은 일체 배제를 했던 것이다. 심지어 딥스가 주변 사물 및 부모님에게 향하는 비속어나 잔인한 표현 및 폭력적 어투에 관해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딥스가 액슬린을 처음 만나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대해서 치료의 가능성(아이에게 치료라는 말이 적당한지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을 보이고 두 번째 만남에서부터 치료가 되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의심이 들었다. 추정하건대 6살 정도 되는 아이가 부모에게서 정서적 학대를 받고 웅크려있었는데 한 인간을 두 번 만나고서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는 것이 가능한가. 별다른 방법을 동원하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아동이 달라질 수 있는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물론 모든 아이가 한 두 번의 만남으로 마음의 문을 열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아이가 딥스같지도 않을 것이고 모든 선생님들이 액슬린 같지는 않으니 말이다. 몇 번을 만나서 아이가 달라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나아질 수 있다는 특히 아동이라면 전과는 달라질 수 있고 그 시기도 성인과는 다르게 빠르게 진행될 수 있으며 아동은 놔두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되찾고 그것을 표현하고 주변 사물 및 사람들과 잘 어울릴 때까지.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인간 특히 아동에 관한 신뢰 및 믿음, 인내가 필요한 것이다.
모두 다 아는 이야기다. 믿음과 신뢰, 인내가 중요하다는 것. 하지만 실천은 힘들다.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이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아이의 문제는 어른들 특히 부모들의 문제로 회귀된다고. 딥스가 문제를 겪던 이유의 기저에는 부모와의 관계가 문제였던 것이다. 원치 않았던 아이에 대한 원망 및 어머니 아버지와의 갈등이 문제였다. 저런 집안 환경이었다면 누구나 딥스와 같은 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액슬린은 딥스의 집에 방문을 하고서 집안 분위기를 통해 딥스가 이 정도의 상태가 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이의 부모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인간이 인간을 교육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의지대로 교육되는 것도 아니고 한 아이에게 적합한 방법이 다른 아이에게도 적합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천 명의 아이가 있다면 천 개의 교육방법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점은 확실하다. 액슬린 박사가 취했던 – 놀이치료가 아니더라도 – 더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인간에 대한 신뢰,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인내를 가져야 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