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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드쉠 Nov 13. 2023

노숙의 기원

나는 밖에서 자기로 결정했다

COVER. Night landscape 20052 - 김승연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캠핑을 시작했다. 이년 전 지인의 초대로 첫 캠핑을 떠날 때만 해도, ‘캠핑 재미있겠지’싶은, 새로운 레저 체험 그 정도의 생각뿐이었다. 야외에 나가서 불을 피우고 지인들과 음식을 해 먹고, 자연을 즐기는 시간.


하지만 캠핑은 결코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첫 캠핑에서 잠자리에 공을 들이는 지인을 보고 그다지 공감하지 못했다. 그냥 하루 자는 것뿐이잖아. 9월이었는데, 방수포를 깔고 텐트 안에 발포 매트를 깔고 자충 매트를 올리고, 전기장판을 까는 걸 보고 사실은 유난이다 싶었다. 하루 좀 불편하게 잔다고 해서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고, 그 많은 짐에 불편함을 느끼기도 했다. 간편한 게 좋은데.

그러나 9월 말 산속의 밤은 생각보다 추웠고, 그렇다. 그 번거롭다 생각했던 겹겹의 바닥재 그리고 전기장판의 덕을 보지 않았다고 못하겠다. 사실은 그럼에도 꽤 추웠다

날이 밝기 전 잠시 화장실에 가려고, 급하게 산 2만 원짜리 침낭에서 기어 나와 텐트 밖으로 나섰을 때, 그 쨍하게 차갑던 공기를 기억한다. 낮에는 반팔을 입던 계절이어서였을까. 그것은 어쩐지 충격이었고, 조금 낯간지러운 표현이지만, 결국 내 삶을 뒤흔들어놓았다.


텐트의 얇은 겹 하나를 걷고 내가 마주한 것은 감춰진 세상의 맨얼굴이었다. 자연의 흉폭함. 무자비한 자연재해도 아닌, 그저 늦여름 새벽의 차가운 공기로, 잔인하고 무심한 신이 나는 원래부터 여기 있었다고 인사를 건네는 것 같았다. 추위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귀 밑에서 목덜미까지 조르르 소름이 돋았다.


이런 감각을 느껴본 게 언제였는지 까마득했다. 그래도 어떤 음식의 맛이나 냄새가 순간 나를 과거의 한 순간으로 데려가는 것처럼, 기억은 기어코 거기에 가 닿았다.

내 노숙의 시작. 해가 질 무렵이면, 다가오는 밤을 어디서 보내야 할지 걱정하던 진짜 날 것의 시절


나는 스무 살이었고, 노량진 학원가 어디쯤을 헤매고 있었다. 그것은 며칠 째 반복되는 밤이었고, 주머니엔 다음날 커피숍에 갈 정도의 돈은 있었지만 24시간 개방되는 만화방에서 밤을 보내기엔 부족했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왔지만 그건 나에게도 부모님에게도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그 긴 사정이야 일단 덮어두고, 아무튼 나는 어떻게 대학 등록금은 냈지만 서울에 지낼 곳은 마련하지 못한 상태였다. 경기도 저 끝 어디쯤에 부모님의 지인의 집이 있긴 했다. 학교에서 두 시간 걸리는, 8시에 지하철을 타도 도착하면 늦은 밤이었고, 주무시는 할머니를 깨워서 집에 들어가는 것이 눈치가 보였다. 수업이 끝나면 신입생환영회도 가야 했고, 여자 친구들끼리 모여 수다 떠는 모임에도 가고 싶었다. 동아리 방에서 늦게까지 이어지는 술자리도 궁금했다.

친구들이 모두 집으로 갈 때쯤, 나는 과방이나 동아리방에 남는 것 대신 노숙을 선택했다.

3월의 밤은 도시도 꽤 춥다. 노량진을 선택한 것은 내 서울 진학의 이유가 된 친구가 거기서 재수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우리가 평생을 함께 할 줄 알았다. 그저 그래서 갈 생각도 없던 대학에 지원을 했고, 나는 붙고 그는 떨어져서, 그 별 거 아닌 갈림길이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될 줄 그때는 몰랐고.

한 두 번은 몰래 친구의 고시원 방에 들어가 잤던 거 같다. 하지만 날마다 술에 취해 돌아오는 나의 방탕한 대학 생활은 금세 그를 지치게 했고, 우리는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찬 바람이 따끔하게 불던 노량진 한샘학원 앞 골목에서,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그게 끝이었다. 나는 갈 곳이 없었는데.

편의점 앞 계단참에 앉아 몸을 한껏 쪼그리고선 아침이 오길 기다렸던 밤이 며칠이나 있었다. 날이 밝고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문을 여는 패스트푸드점의 화장실에 들어가 따듯한 물로 세수를 했다. 3일째인가는 못 견디고 머리도 감았다. 지하철 운행이 시작되는 시간엔 역사로 들어갔다. 지하철 화장실 변기 위에 앉아 꾸벅꾸벅 졸던 어떤 아침.

그래도 밤이 너무 길 때면 걸어서 한강까지 갔다. 강을 따라 반짝이는 도시의 불빛들. 그중에 작은 방 하나를 갖고 싶었다. 나는 그 이후로 4년 동안도 제대로 된 방을 갖지 못했고(2년을 살았던 화장실이 없던 방, 한 밤에도 맞은편 병원의 응급실 화장실로 달려가야 했던, 내 물건을 몰래 쓰던 주인집 딸이 있던 아파트의 문간방, 그리고 여러 번의 더부살이) 그랬다. 집이 없는 자의 정서. 따듯하고 안전한 작은 방 하나를 간절히 원했지만 사실 나는 그 시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내가 잘 곳이 없는 건 당연하다는 걸.


바깥에 서 있는 자의 마음

그 캠핑장의 새벽 공기가 일깨운 기억은 바로 그것이었다.


그 시절 때문인지, 애초에 나에게 있는 취향이었는지는 모르나 언젠가부터 나는 길을 가다 노숙을 하기 좋은 장소를 찾곤 했다. 노숙을 할 상황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 감각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예민해지는 것 같았다. 어떤 건물과 건물 사이, 처마가 아늑해 보이는 작은 상점 앞, 모두가 퇴근한 밤이면 거짓말처럼 어두워지는 사무실의 2층 계단  구석, 막다른 골목 끝의 버려진 평상. 하룻밤 몸을 뉘일 수 있는 곳은 생각보다 많았고, 그런 곳을 발견할 때마다 내 마음은 어쩐지 따듯해졌다. 안심이었을 수도 있다. 언젠가 다시 밤거리를 헤매게 되더라도, 나는 저곳에서 잘 수 있을 거야,라는.


꼭 그 시절의 기억 때문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수도 있다. 영원히 살 수 있는 거처를 만든다는 건 어쩐지 마땅하지 않은 일로 여겨지는 마음이 분명 있었기 때문이다. 내 집이라는 건 내가 세상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이건, 세상이 나를 소외시키는 것이건, 아무튼 그런 배타적인 관념으로 생각되었단 말이다. 그것은 너무 단단하고, 안정적이고, 내가 여기 있다고, 여기는 내 땅이라고 무례하게 소리치는 것만 같아서.

 그럴만한 돈을 벌고 나서부터는 많은 날을 호텔에서 잤고, 퇴근길에 문득 마주친 모텔에 들어가 자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러니까 생, 이라면 마땅히 오늘의 먹을 것과 잘 것을 고민하며 사는 것이란 인식이 내 무의식 저기 어디, 단단한 바위처럼 자리 잡고 있었던 거다.


첫 캠핑의 그 새벽, 화장실에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노량진의 편의점 앞에서 아침을 기다리던 그 시절부터 긴 시간을 거쳐, 나는 내 집을 찾은 것이라고. 내가 머물 곳은 두꺼운 벽과 무거운 현관문이 있는 집이 아니었다. 그것이 도시의 낯선 골목이건, 지나다 눈에 띈 허름한 모텔이건 산속의 어느 나무 아래건,

어디든 머물 수 있는 삶이 거기 있었다


캠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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