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불안은 지금 여기에 있다
COVER. Fishermen at sea - William Turner
세 번째 캠핑이었을 거다. 2월 말이었는데 비가 꽤 왔다. 나는 그 때까지도 텐트도 없었고 모든 장비는 같이 가는 지인의 것이었다. 일기 예보는 주말 내내 비가 올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었다.
인생 내내 나는 강박적일 정도로 안전에 민감한 사람이었다. 이사를 가려고 집을 구할 때면, 보는 집마다 화재시의 탈출구 같은 걸 생각해두는 습관같은 게 있는 사람이다. 위험한 곳에는 가지 않으며, 험한 날씨일 때 바깥에 나가지도 않는다. 사람이 없는 어두운 밤 길을 혼자 걷는 일도 거의 없다. 삶의 거의 모든 순간에서 위험을 감지할 수 있고, 그걸 피하는 데 정말 많은 에너지를 쏟고 살았다.
이런 날씨에 캠핑이라니, 문제가 없을까? 나는 급하게 다음날 새벽 배송되는 타프를 하나 샀다. 지인의 텐트는 네 사람 정도가 잘 수 있는 돔텐트였고, 바깥 생활을 하려면 타프는 필수였지만, 사실 타프의 종류도 치는 법도 제대로 몰랐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4만원 정도하는 저렴한 타프였고, 블랙코팅 같은 건 당연히 없었기에 차광도 되지 않았지만, 그 타프는 2박 3일 내내 쏟아지는 비를 제법 잘 막아주었다. 그 타프 아래에서 매캐한 연기에 눈물을 훔쳐가며 불을 피웠고, 고기도 구웠다. 3*3의 작은 타프였기에 경계선에선 안 쪽으로 비가 들이쳤지만 둘이 앉아 밥을 해먹고 모닥불을 즐기는 데는 불편이 없었다. 아니 사실은 불편했는데, 그 때는 그 정도면 괜찮은 줄 알았었다. 지금 와서 보면 내수압이 1500인데, 요즘 나오는 타프는 아마 기본이 5000일 거고, 10000, 15000 정도도 흔한데 참 대책없는 사양이었다. 아무려면 어떤가. 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폭우가 아니라면, 이틀 내내 내리는 비도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 때의 경험으로 나는 비에 대해서는 큰 걱정을 안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 안전 강박은 나아졌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었다. 캠핑을 거듭할 수록 오히려 그 강박은 심해졌다고 할 수 있겠다.
단지 비 뿐이 아니었다. 바깥에서 잔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문제에 대비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가장 어려운 건 바람이었다. 15m/s 이상의 돌풍이 불면, 어떤 물건들은 바람에 날아간다는 것을 캠핑을 하며 알게 되었다. 17m/s 이상이 되면, 텐트는 흔들리고 쉽게 잠들지 못한다. 작고 뾰족한 나뭇가지가 날아와 텐트에 구멍을 낼 수도 있고, 바깥에 모아둔 맥주캔들이은 무심하게 텅 빈 소리를 내며 날아다닌다.
열 번 째쯤은 넘은 캠핑이었지만, 어느 밤 나는 산 속에서 바람 소리를 들으며 밤을 꼬박 샜다. 큰 바람이 한 번 쓸고 갈 때마다 나의 작은 백패킹 텐트는 당장이라도 바람을 타고 날아갈 듯 팽팽히 부풀었으며, 가는 폴대는 위태롭게 휘어졌다. 큰 바람 사이의 작은 바람이 유령처럼 텐트의 얇은 벽을 찢을듯이 펄럭이게 했다. 낮에는 시원한 그늘이었던 것 같은 큰 나무의 그림자자 나를 들여보내달라고 창 밖에서 문을 두들기는 캐서린 언쇼의 유령처럼 어른 거리고 있었다. 40cm의 장팩을 두 개씩 박았는데 이제는 오히려 그게 뽑혀 날아갈까 걱정이었다. 속수무책의 바람 속에서 나를 보호해 줄 것은 오로지 이.작은 텐트여야 했지만, 텐트도 나도 그저 같은 운명이었다. 이 바람이 모든 걸 쓸고 지나간다면, 나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 바람이 이런 거라면 나는 워더링하이츠의 미친 사람들을 이제 더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럼에도 나는 캠핑을 한다. 일년에 100일 가까이를 혼자 바깥에서 잔다.
올해 장박을 시작한 바로 다음날에도 강풍이 불었다. 19m/s의 돌풍이었다. 센 바람에 버티다 에어 텐트가 터질까, 나는 지붕이 살짝 내려 앉을 정도로 바람을 빼고, 그 펄럭이는 소리를 들으며 뒤척이고 있었다. 당연히 화목난로의 연통을 빼두었고, 타프는 진작에 철수해놓았다. 모든 준비를 한 것 같았지만, 뉴스에선 간판이 떨어지는 등의 사고를 조심하라 말하고 있었고 나는 이 불안 속에 누워있는 것이다. 나는 왜 다시 여기에 와 있는 것일까.
날이 밝을 무렵에야 바람은 조금 잠잠해졌고, 나도 긴장을 놓고 잠이 들었다. 텐트 밖에선 어느덧 철수를 시작한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찬공기를 느끼며 밖으로 나섰을 때, 주변은 밤새 떨어진 낙엽과 어디선가 날아온 쓰레기로 어수선했고 늘 그랬던 것처럼 주변을 치우고 텐트를 다시 정비했다. 며칠 간 그런 일상의 연속이었다. 낮이면 텐트를 정비하고, 위험한 물건들을 치워놓고 낙엽을 쓸고 빨래를 말린다. 비가 와서 물이 고인 자리에 모자란 파쇄석을 몇 삽씩 떠와 붓는다, 이 일상 어느 것도 자연 속의 휴식과는 거리가 먼 것만 같다. 나는 여기에서 무얼하는 걸까.
사실은 바람 소리에 잠 못이루었던 그 첫 밤을 지나고 어렴풋이 알았다. 이 불안이 다시 나를 바깥에서 자게 하는 이유라는 것을.
도시의 일상은 불안을 좀 더 음침한 것으로 만든다. 문명은 대체로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 같지만, 그 계산된 보호막은 보호와 동시에 무엇인가 가려둔다. 보이지 않지만 그 뒤에 있는 무엇. 묻지마 범죄같은 알 수 없는 공격부터, 가까운 이의 배신, 버려짐, 실패 같은 막연한 불안. 나는 그 불안 속으로 떠밀리는데, 그 것은 보이지 않기에 손 쓸 도리가 없다.
나는 매일밤 따뜻하고 안락한 내 침대에 누워 이유없이 뒤척이는 줄 알았고, 이유없이 하루하루가 힘든 것만 같았다. 사실은 내가 오늘 만났던 사람들이 내일 나에게 등을 돌릴까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나에게 뭘 원하는지 모르는 세상에 대해 그 예측할 수 없음의 공포에 질식해가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별일없이 지나가는, 안전한 것 같은 매일의 일상이 사실 살얼음판을 걷는 일 같다는 걸 몰랐다. 알았어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기에 나는 스스로도 모른채 내 생에서 점점 소외되고 있었다.
하지만 바람 속에 뒤척이는 밤은 어떠한가. 나의 불안은 지금 여기에 있으며 내가 할 수 있는 힘껏 그 것을 견뎌보려 애쓰는 중이다. 눈 앞에 공포를 마주하며, 모든 과정을 겪는다. 팩을 더 단단히 박고 스트링을 당기고, 위험한 물건들을 주변에서 치워둔다. 더 할 것이 없을까? 무섭지만 그 것을 그대로 겪을 준비를 한다.
이 것은 실재하는 불안으로 불안을 잠재우는 사이코드라마다. 이 밤을 무사히 보내보려고 내가 하는 모든 노력이, 어떤 의미도 필요없이 내가 살아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내가 이토록 하찮고 나약한 존재하는 것을 알게 한다.
바깥에서의 밤을 보내고 월요일 아침 도시의 빌딩 한가운데로 출근을 하는 나는 안다.
그저 오늘도 무사히 밤을 보내고 맞은 한 아침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