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군대의 장군

겨울에 읽고 쓰고 둔다

by NIL

지나간 시간이 남겨 놓은 것

『죽은 군대의 장군』 / 이스마일 카다레/ 이 창실 옮김/ 문학동네 / 2024


2024년 7월

알바니아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의 별세 소식을 들었다. 지난봄 그의 작품 『피라미드』를 읽으며 친근감이 생겼는데, 왠지 만나자 이별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의 작품을 읽기 전까지 알바니아에 대해 아는 것은 발칸 반도의 소국이라는 정도였다.

한때는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았고, 세계대전을 거치며 이탈리아와 독일이 차례로 들어왔다가, 소련에 의해 유럽과 분리되고, 독재자에 의해 스스로 고립되었던 알바니아라는 나라와 사람들 이야기를 알수록 연민이 생겼다. 1936년생인 작가가 변화하는 시대를 버티며 작품을 쓰고 번역하여 출판하고 다시 쓰고 얼마나 고민했는지, 그가 느꼈을 좌절과 분노가 있었을 텐데 그것을 풀어나가는 방식에 대해 새삼 감탄한다. 그렇게 담담하게 이야기를 엮어가는 것이 그의 생존법이고 탈출구였으리라.

항상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자기 나라 이야기를 한다. 풍자와 우화가 들어있는 것처럼 묘사하기도 하고, 위트 있는 외국인의 순방기처럼 들리게도 한다. 그의 첫 번째 장편소설로 1963년 27세에 발간한 『죽은 군대의 장군』에서부터 그의 이야기 방식을 잘 보여 준다. 버려지고 잊힌 자들의 사연을 발굴해 가는 과정에서 전쟁의 공허함을 전달하는 한편 알바니아 인민의 정체성을 보여 준다.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인 장군과 신부의 눈을 통해 과거의 폭력과 현재의 알바니아를 이야기한다.


장군과 신부

전쟁이 끝난 지 20년 후. 알바니아를 침략했던 이웃 나라 (이탈리아로 추측함)은 죽은 군인들의 유해를 수습하기 위한 대표단을 파견한다. 그 임무를 받은 장군은 전장에 흩어진 전우들의 시신을 찾아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일에 대하여 ‘완성되지 않은 과거를 복원하여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이라는 사명감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유족과 전우들의 증언을 모은다.

군대가 저기 저 아래 있었다.

시간을 벗어난 곳에서 뻣뻣이 굳고 석회화되고 흙으로 뒤덮인 채.

이 군대를 흙에서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게 그의 임무였다.


장군이 떠나기 전 지체 높은 귀부인은 그에게 당부한다. 이 얼마나 숭고한 임무인가.

“당당하고 고독한 한 마리 새처럼 비극적인 침묵의 산 위를 날아

그 목구멍과 발톱에서 우리의 가엾은 청년들을 구해 내어 오세요. “


그리고 장군을 보좌하기 위해 합류한 신부. 군인이며 성직자인 신부는 종교적인 역할 외에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전쟁 중 실종된 Z 대령의 유해를 찾아오는 일. 백작 가문의 자제였고 결혼하자마자 전장으로 떠났던 이 고귀한 청년의 미망인 – 젊고 아름다운- 의 특별한 부탁을 받았다.

알바니아 말을 할 줄 알고 알바니아인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냉소적인 신부는 장군과 함께 왔다.


전쟁의 기억

이 작품은 2부 26장으로 구성된다. 중간에 삽입장이 있지만 그것은 이야기의 연결을 위해 나중에 넣은 듯하다.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에 도착하여 병사들의 무덤을 찾아나가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장군의 관점을 전쟁이 벌어졌던 시간으로 돌려놓는다. 거기에 신부의 입을 빌어 알바니아 사람들의 전쟁에 대한 태도, 복수의 관습과 같은 집단 심리 이야기를 들으며, 장군은 과거의 무능한 지휘관이 아니라 자신이 이들을 지휘했다면 전쟁에서 승리했을 거라는 망상도 한다.


발굴 작업 과정에서 드러나는 군인들의 행적에 장군은 실망하기도 한다. 군인으로서 장군은 그때마다 감정적 반응을 보이지만 신부는 종교적이라는 이유로 지극히 냉정하다. 장군이 자국 군대의 모습에 실망하고 괴로워하면서도 상대국이었던 알바니아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할 때마다, 신부는 알바니아는 예전부터 그랬다고 말한다. 어릴 때부터 무기와 함께 살며 무기를 사용할 생각만 하고 폭력과 싸움이 있으면 생기가 나는 사람들이라고.

발굴하는 묘지마다 사연이 있다. 알바니아 민병대 편에 서서 청색 대대와 싸운 병사들, 탈영하여 방앗간의 머슴으로 일하다가 청색 대대에 의해 처형된 병사, 카페주인이 늘어놓는 갈봇집 여성의 죽음 이야기, 그리고 같은 임무를 가진 다른 나라 발굴단의 행패, 시신 도둑질까지. 작업이 진행될수록 장군은 자신의 임무에 회의가 들고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린다. 특히, Z 대령과 청색 대대의 임무를 알게 되면서 이 전쟁의 기억을 다시 들춰내는 내는 것, 자신이 얼마나 끔찍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지 몸서리친다.


2부는 현재의 시점에서 진행 중인 복수의 이야기다. 마을의 결혼식장에서 충격적으로 밝혀지는 Z 대령의 최후 행적을 중심으로 마지막 발굴 현장에서 인부의 감염과 죽음, Z대령의 유해를 두고 신부와 갈등하고 호텔에서 보여주는 장군의 추태에 이르기까지 전쟁의 상처는 어떤 식으로든 현재 진행 중임을 보여준다. 오열하는 니체 노파는 이런 날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그가 꾹꾹 누르고 있던 슬픔을 폭발시켜도 되는 날. 알바니아 사람들은 싸움이 있으면 생기가 도는 것이 아니고 너무 오랫동안 참아왔기에 터뜨릴 수밖에 없다고. 백작 부인과 니체 할멈이 Z 대령의 시체를 놓고 논쟁을 벌인다는 상상. 대목에서 다시 생각한다. 백작 부인이 기억하는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던 아들이 전쟁 때문에 변한 것인지 원래 잔악한 아이인 것을 몰랐던 것인지. 니체 할멈은 Z대령에게 마지막까지 복수했고 더 이상 그 시신은 필요 없다. 장군과 신부는 과연 아름다운 미망인에게 무슨 말을 할까.


국가적으로 중요한 임무를 받았던 장군은 너덜너덜해진 멘털로 돌아갔다. 고국에서는 지역마다 돌아온 군인들의 유해를 놓고 성대한 환영식과 애국주의 축제를 벌일 것이다. 그것은 죽은 군대를 위함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의 위안을 위해서다. 그래야 국가는 계속 군인을 전장에 보낼 수 있다.


단 하나의 장면, 바다 이야기

1부의 마지막 장, 전쟁 첫날에 죽은 병사의 이야기에서 한 편의 시와 같은 장면이 떠올랐다.

그렇게 그날 수십 명에 달하는 무리가 산에서 내려왔다.

펠트모자와 안경을 쓴 남자들부터 키기 큰 산간지대 사람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무리였다.

여전히 소박한 생활을 영위하던 이 시골 사람들 대다수는

어느 나라가 공격해 왔으며 적이 누군지조차 관심이 없었다.

그건 부차적인 문제였다.

중요한 것은 오로지 바다에서 악이 왔고 그 악을 물리쳐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전쟁 첫날 죽은 군인, (이탈리아 병사가 아니라) 알바니아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다. 작가가 이방인인 장군과 신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유는 유럽이 바라보는 알바니아, 과거의 적국들이 생각하는 알바니아에 대한 편견을 고발하기 위함이다. 과거의 점령지에서 제국의 영광을 복원하려던 장군의 실패, 주류 유럽의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알바니아 사람들의 심리를 재단하는 신부를 비웃으며, 알바니아 민족을 소멸시키기 위한 국제적인 음모라고 항변하는 기사의 말을 들어야 한다.


특정한 지역, 특정한 민족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보편적으로 겪은 전쟁이라는 폭력에 대한 반성, 그리고 아직도 우리 주변을 떠도는 전체주의 망령에 대한 경고이다.


장군은 호메로스를 떠올리며 그리스와 트로이의 휴전을 인용하고, 타라니 거리의 사각형, 육각형 보루를 보며 이집트 조각상을 상상한다. 첫 번째 장편소설에서부터 30년 후 발간할『피라미드』라는 작품을 잉태하고 있었다. 그렇게 30년 이상의 세월 동안 거의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가 되었던 작가는 7월에 세상을 떠났다.


파스테르나크에게 생긴 일 때문에 노벨상을 받으면 일상이 바뀔까 두려워했던 작가는 그 부담도 벗어났다. 고등학교 때 시인으로 데뷔해서 50편 이상의 작품을 남긴 작가는 어쨌든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한다. 명랑하게 달려 나가는 그의 작품들을 다시 찾아보고 싶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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