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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L Jul 07. 2023

부끄러움

책 읽는 시간 (가을에서 겨울지나)

『부끄러움』, 아니 에르노 지음, 이 재룡 옮김, 비채, 2019년


   ‘부끄러움’이라는 단어는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흔히 부끄러움을 많이 탄다는 소심한 마음을 생각한다. 사람들 앞에 잘 나서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여 행동이 위축되고 자기 생각을 밝히지 못한다.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라고 하며 넘어간다. 교육 수준이나 경제적인 결핍을 다른 집단과 비교하며 느끼는 자신감 부족일 수도 있다. 이런 결핍을 인정하고 보완해 나가기 위해 노력할 때 부끄러움은 성장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다른 하나는 도덕적 문제로 떳떳하지 못한 경우이다. 윤리적으로 옳지 못한 일을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었을 때 양심의 가책을 갖게 된다. 경제적인 계급이나 교육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추구하는 가치와 인생의 목표가 다른 경우이다. 이런 종류의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우리가 흔히 염치없는 놈, 소시오패스 이렇게 부른다.

   서로 다른 해석을 열거해 보지만 결국 보통의 인간이라면 어느 정도‘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가지고 산다. 생각만 해도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기억들을 축적하고 또 만들어간다. 지나간 기록은 적당히 포장하고 합리화하며 현재의 모습이 부끄럽지 않도록 지울 것은 지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부끄러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우울증에 걸리거나 매일 술만 먹다 죽는다.


    그런데 프랑스 시골 마을 출신의 작가 ‘아니 에르노’는 중년의 어느 날 그 부끄러움의 근원을 찾아가는 작품을 발표했다. 


    작가가 기억하는 유년 시절의 첫날, 6월 어느 일요일,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다는 사실이 출발점이다. 아버지가 왜 그랬는지, 얼마나 자주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 사건으로 부모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버지를 비롯한 하급 계층 사람들은 그들만의 상식으로 소통하지만, 거기를 벗어나 다른 계급과 비교될 때 그 부끄러움을 공연한 분노로 표현한다. 때론 그 분노가 다시 돌아와 폭력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어머니는 현실의 부족함을 종교에 대해 믿음으로 채우려 하지만 그 태도가 다시 아버지와 갈등 요인이 된다. 

   기독교 사립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자신이 속한 계급과 기숙사에 사는 상층 계급 아이들이 있는 학교라는 두 개의 세상이 혼란스럽게 다가온다. 특히 학교에서 만난 다른 계급의 매너는 작가를 부끄럽게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부끄러움을 뛰어넘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우등생, 모범생이 되려 노력한다.

   

   결국,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고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된 작가는 교육을 통해 계층 이동을 이뤄 낸 성공적인 케이스였다. 이 작가의 작품 대부분은 자신의 삶에 대한 기록이다. 어머니, 아버지, 임신중단, 불륜까지 인생의 주요 단면들을 촘촘히 기록했다. 작품의 발표 순서는 다르지만, 작가의 시간을 따라가면 이 작품『부끄러움』이 그 출발점이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따고, 선생님이 되고, 글을 쓰고 상을 받았다. 그 성공의 과정에서 계속  그 시절을 돌아본다.      


   작가가 서술하는 1950년대의 프랑스 시골 마을의 풍경은 우리가 기억하는 70년대의 우리 사회와 판박이처럼 닮았다. 새마을 운동을 하는 아버지들의 권위의식, 전쟁에서 돌아온 삼촌들의 무용담, 밤이면 모여서 드라마를 보는 엄마들, 일터를 찾아 고향을 떠나는 청년들의 모습까지. 작가가 깨알같이 기록하는 유년 시절의 기억마다 오버랩되는 우리들의 풍경이 있다. 어쩌면 프랑스의 그것보다 훨씬 차별적이며 엄격했던 교육 환경과 부모들의 맹목적 믿음은 더 많은 성공을 원했고,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 않던 부르주아 계급을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돌아보아야 할 시간이 왔지만, 아직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듯하다. 솔직한 고백보다는 포장된 성공담만 즐비하고, 경제적 안정은 더 많은 탐욕을 만들고 있다. 우리의 삶의 수준은 그때보다 나아졌지만 우리의 생각의 수준, 특히 부끄러움을 알고 극복하려는 의지는 점점 약해지고 있다.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 또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용기를 낸다는 것

 이것이 진정한 교육의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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