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IL Jun 14. 2023

호밀밭의 파수꾼

책 읽는 시간 (가을에서 겨울 지나)

호밀밭의 파수꾼, J.D. 샐린저 지음이 덕형 옮김문예출판사, 1998 

  

  나에게 고전이란 제목은 잘 알지만, 끝까지 읽지 않은 책이다. 『호밀밭의 파수꾼』도 그런 책 중의 하나다. 미국에서 전 국민이 읽은 책이라던가, ‘20세기 00대 명작’을 선정하면 항상 상위에 랭크된다는 정보는 출판사의 마케팅으로 폄하했다. 이른바 성장 소설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많은 문학 작품과 영화에서 청소년들의 방황을 다루고 있고, 특히 최근엔 마약, 가출, 혼음에 대한 묘사로 과격해지는 모습에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이 책과 작가에 대한 과장된 정보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반감시켰다. 그중에는 일찍이 은둔생활에 들어간 작가에 대한 전설도 한몫한다. 작가 ‘J.D. 샐린저'를 알게 된 것은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서다. 은둔하는 대문호와 문학 지망생의 교류를 다룬 영화 "파인딩 포레스터"가 2001년 개봉했다. 크게 흥행하지는 않았지만, 각종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통해 샐린저에 대한 팬심을 자극했다. 그 후로도 "호밀밭의 반항아(2018)""마이 샐린저 이어(2001)"처럼 샐린저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이어졌다.

  

  그런데 우습게도 “호밀밭의 파수꾼” 자체는 영화로 제작된 적이 없다. 그 이유는 작품 안에서 주인공 ‘홀튼 콜필드’가 할리우드와 영화 산업에 대해 비판하고 거기로 가버린 형의 재능을 안타까워하듯 샐린저 자신이 영화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파인딩 포레스터"의 대사를 기억하며 이제 한번 제대로 읽어보자.

마음으로 먼저 글을 써라그러고 나서 머리로 글을 써라생각하지 말고 우선 써라.”


   이 책의 가장 좋은 면은 50년대 대중문화에 대한 기록이다. 학교와 스포츠, 뉴욕 거리 그리고 사람들이 사용하는 상품. 아직도 내가 사용하는 브랜드가 언급되면 슬그머니 미소가 떠오른다. 학교에서 퇴학당한 소년이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인상과 배신감, 그들의 허세를 바라보는 시각과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까지. 홀튼은 방황은 하지만 반항은 할 줄 모르는 찌질한 청춘이다. 학교에서 퇴학당했으면서도 학교와 선생님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친구들을 경멸하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착한 소년이다. 어떤 생각을 해도 바로 실행하지 못하고 안 하는 이유를 만드는 소심한 면도 있다. 그냥 획일적 제도와 관습이 귀찮고 사는데 목표가 불분명할 뿐 그렇게 싹수없는 친구는 아니다.

  

   소년은 동생에게 어른이 되면 호밀밭에 뛰어노는 아이들을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동생에게 어른인 척 말하지만, 그의 내면은 호밀밭에 뛰어노는 어린 아이다. 어느 방향으로 뛰는지 모르는 자신을 잡아 줄 사람을 찾아 학교와 뉴욕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3일간의 방랑에서 아무도 찾지 못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모든 출발점이었던 추억의 장소로 돌아왔다. 거기에는 어린 시절의 자신처럼 모든 것이 궁금하고 가족을 사랑하는 동생이 있었고, 그 순수한 모습에서 다시 행복을 느꼈다. 동생에게 주었던 빨간 사냥 모자를 돌려받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 책을 인생의 어떤 시기에 읽느냐에 따라 감상이 다를 것이다. 청소년기에 읽으면 소년의 생각과 사건에 공감하고 대리 체험하며 함께 여행한다. 중년에 읽으면 지나간 시절의 일기장을 펼쳐보듯 추억의 한 자락을 떠올린다. 다른 사람에게 대놓고 말하기 힘든 부끄러운 욕망의 기록이란 점에서는 모두 공감한다. 


  바로 이런 감성적인 접근 때문에 전쟁 이후의 서구에서 이 책을 논쟁의 대상으로 만들고 고전의 반열에 올려놓은 듯하다. 첫 문장부터 철학적 명제를 던지며 계속 생각하게 하는 유럽의 고전에 지쳐있던 사람들에게 한 소년이 의식의 흐름대로 적어놓은 일기장 같은 이 책이 얼마나 신선했을까. 내가 너무 늦게 읽은 것은 확실하다.

이전 10화 암흑의 핵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