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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L Dec 13. 2023

사장을 만났다.

하늘 정원

   아침이 상쾌하지  못했다. 유쾌한 회식에 술을 많이 마시진 않았지만 계속된 밤샘 작업의 피로가 몰려왔다..

강여사의 성화에 식탁에 앉았지만 음식에 손이 가지 않았다.엄마는 간 밤에 손님에 들떠 있었다.

  "근데 그 권팀장이라는 분은 보기엔 쌀쌀맞게 생겼는데 너희들을 끔찍이 챙기던데."

  "엄마가 보기에도 그렇지. 잘 자란 부잣집 딸이야"

  "흠. 우리 딸도 어디 내놔도 손색없지."

  "어제 늦게까지 고생시켜 미안하우. 우리가 너무 늦게 와서 시끄럽게 하고" 

  "아니 아주 좋았어. 오랜만에 젊은 사람들 보고 우리 딸이 직장생활 잘하는 것 같아 안심도 되고."

  "그럼 다행이네. 나만 피곤한가. 택시 불렀는데 이만  나가볼게"

      택시가 도착했다는 알람을 들으며 핸드폰을 들고 일어섰다. 여유 있게 호출을 하는데도 알람은 항상

 마음을 바쁘게 한다. 서둘러 외투를 걸치고 나오는데 뒤에서 강여사의 걱정이 들려왔다.


    평소보다 늦게 도착한 백화점은 다른 날보다 분주해 보였다.오늘 사장님이 방문하실 예정이라는 메시지가떴다. 사장이라면 드림백화점의 송현덕 사장을 말하는 것이군. 아직 익숙하지 않다. 단일 점포인 골드백화점 시절에는 사장이 점장이고 경영기획팀이 영업총괄이고 마케팅과 홍보까지 다했다. 반면 많은 점포를 운영하는 대기업인 드림백화점은 점마다 점장과 운영 조직을 갖고 있으면서 본사는 본사대로 기능별 조직이 있다. 이렇게 본사와 점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구조속에 모든 것을 관장하는 사장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그러고 보면 골드백화점엔 단 한 사람이었던 민성원 대리 같은 직원이 드림백화점에는 스무 명도 더 있는 것이다. 본사에는 수백 명의 직원이 그 일을 나눠서 하고 있다 생각하니 갑자기 자신감이 뚝떨어졌다. 앞으로 이런 거대한 조직에서 매일 이렇게 피곤하게 일해야 하나. 장사하는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송사장에 대한 정보는 별로 없었다. 얼핏 듣기로는 백화점 공채로 입사해서 실력 하나로 그 자리까지 오른 사람이라 하던데. 권 회장의 신임이 두터워서 벌써 3년째 사장 자리에 있으며 계속 점포를 늘려나가는 작업을 과감하게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매장 청결에 유독 집착하는 양반이라며 김부장은 직원들에게 오전 내내 청소만 하라고 했다. 특히 고객 접점 데스크에 쓸데없는 것 올려놓지 말고. 수납공간에 개인 사물 넣지 말고. 유리도 반짝반짝 닦으리고 닥달했다. 직원들에게 지시하고 있는 김 부장 뒤로 돌아가며 슬쩍 한마디 던졌다.

 

"자료 준비할 것은 없을까요?"

"민대리 나왔구나. 너무 힘들어서 죽은 줄 알았다. 업무관련 자료는 권차장이 다 준비할 테니까 걱정 말고,

 혹시 모르니 권차장이 필요하다면 백업해 주면 돼. 조금만 더 버텨. 몸은 괜찮지." 

   

  바쁜 와중에도 성원의 몸 상태부터 체크하고 당부를 잊지 않는 것은 김 부장의 미덕이었다.

  "민대리는 고객 상담실 좀 챙겨주게. 거기 오늘 직원이 한 명뿐이라 엉망일 거야"

  "예 실적 보고 하고 바로 내려가겠습니다."

   "아. 그건  안 해도 돼. 정상무 오늘 본사 출근했다. 오늘 사장님 오시는 것도 정상무가 현장에 한번 오셔서

    격려해 달라고 쓸데없는 소리 해서, 바로 따라나섰다는 거야. 예정에 없이."


   정말 도움 안 되는 정상무였다. 매장 공사 시작해서 직원들 엄청 바쁜데 청소나 하게 만들고. 휴무도 많고 행사 교체도 해야 하는 목요일에 사장님 방문이라니. 자기 생각만 하는 나쁜 점장 같으니라고. 속으로 우격거리며 고객 상담실로 가기 위해 급히 돌아서는 순간, 뚝 뭔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아이코. 민 대리. 정말 내가 싫어"

 권 차장이었다. 부러진 보드판을 들고 있었다.

 "죄송해요. 근데 왜 거기 서 계셨어요."

 "서 있던 게 아니고 들어오는 중이었지. 답지 않게 그렇게 민첩하게 돌아설 줄은 몰랐지"

  "그거 부러진 거 제가 붙일게요"

  "아니 보드판 말고 내 턱의 안부부터 물어야지. 그 단단한 머리로 어퍼컷을 하면 누가 이기겠어"

  "말씀 잘하시는거 보면 턱은 말짱해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성원을 바라보는 권차장을 피해 냅다 도망쳤다. 김 부장의 예상대로 고객상담실은 혼란 그 자체였다. 혼자뿐인 직원은 청소기를 들고 소파를 먼저 청소할지 창고를 먼저 청소할지 우왕좌왕했다.. 성원이 자기 스타일대로 청소 순서를 정했다. 창고 정리, 청소기로 먼지 털기, 데스크 서류정리, 바닥 걸레질 와중에 오픈 시간이 되었고 컴플레인 고객이 줄지어 방문하기 시작했다. 청소 도구를 팽겨치고 고객들과 격전을 치른 후 간신히 믹스커피 한잔을 들고 소파에 앉았다.


  "아까 그 고객은 정말 대답할 말이 없겠더라.."

  "어느 분 말씀이인가요? 오늘 진상이 좀 많은 것 같아요"

  "그분 바지가 매년 줄어든다는 남자분"

  "계절이 바뀌는 시점이라 옷장에 넣어둔 옷 꺼내 입고 그런 불만하시는 분 많아요"

  " 일 년 동안  자기 몸 불어난 건 생각 안 하고. 그것도 5년 전에 산 게 매년  줄어든다고. 상식이 있는 거야"

  "그런 분들은 꼭 환불해 달라고 하세요. 수선해도 계속 줄어든다고"


   환불 한번 하려면 몇 번을 고민하고 미안해하고 아침에 가면 매장 직원 눈치 보인다며 오후에 조심스럽게 교환이나 수선부터 타진하는 엄마 모습을 생각하며 웃음이 났다. 마음의 부담 때문에 그냥 온라인으로 옷사고 안 맞으면 온라인으로 취소하는 게 편하다는 아이들도 가끔 본다. 100% 교환 환불이라는 백화점 서비스 원칙을 악용하는 고객만 보며 일하는 상담실 직원은 의외로 많은 것을 체념한 듯 했다. 사장님 도착 알림 메시지가 떴다. 각자 근무지에 대기하란 김 부장의 지침도 날아왔지만 고객상담실 직원이 먼저 점심식사 하러 갈 수 있게 상담실을 지켜주기로 했다.


   사장이 식품 매장부터 위로 올라오고 있었으므로 상담실이 있는 9층까지 오려면 시간이 꽤 걸릴 듯했다.

다시 커피를 마시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매장 안내 방송을 하는 직원의 목소리가 맘에 안 든다는 항의에 이어 식품 매장에 개를 데리고 오는 손님이 있다는 신고 전화, 성원은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하고 고객은 할 말이 많아 통화가 길어졌다. 계속 울리던 전화가 잠시 멈춘 사이, 커피 한 모금 마시려는데 상담실 문이 열리며 정상무가 들어왔다.성원이 벌떡 일어서자 정상무가 네가 왜 여기 있냐는 표정을 보내왔다.

    이어서 들어온 사람은 정말 드물게 키가 작은 아저씨였다. 정상무 보다도 작았다. 힐을 신은 성원의 입장에서는 내려다보는 모양새였다. 송사장도 그것을 느꼈는지 키 얘기부터 시작했다.

 "상담실 직원이 아주 키가 크군. 그래 골드때부터 근무했나. 드림으로 바뀌니까 좋지."

 "아 저 사장님. 이 직원은. 영."

  정상무가 뭔가 설명하려 하는데 말을 끊고 사장이 계속 말했다.

  "점심은 먹었나. 드림으로 바뀌니 직원식당 메뉴부터 좋아졌지. 점장은 골드 출신 직원들에게 잘 해 줘야

   해요. 특히 먹는 것. 직원 화장실 이런 거. 사소한 것에 마음 상하는 법이거든. 직원 사기 떨어지지 않게

    간식도 좀 돌리고"

  "예. 사장님.."

  "하여간 우리가 인수한 것이 골드 직원들에겐 행운인 거야. 연봉도 많이 올라갈 거고  식당밥도 맛있어지고.

   우리 회사의 다양한 복지 제도 설명회도 하고.그런 의미에서 오늘 점심은 직원식당에서 합시다."

 

   정상무의 대답도 듣지 않고 송사장은 수고하란 말 한마디 없이 밖으로 나갔다. 뒤에 따라왔던 권차장이 눈 한번 찡긋하고는 황급히 따라나갔다. 김 부장과 다른 팀장들이 상담실 밖에 대기하고 있다 우르르 몰려갔다.

드림 백화점은 성질 급하고 무례한 순서로 사장을 뽑는 모양이다. 그럼 언젠가는 정상무가 사장이 되겠군. 혼자 생각하고 혼자 쿡쿡거리고 있는데 상담실 직원이 돌아왔다.

   "사장님 다녀 가셨지요. 매장에서 봤는데 저런 스타일이 컴플레인 독하게 해요. 뒤끝도 길게 가고."

   사람의 인상만으로 컴플레인 유형을 판단하다니. 근무기간이 아니라 만난 고객의 숫자로 업무 숙련도가 올라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성격 급한 송사장은 직원 식당에서 밥 먹고, 김치맛이 이상하다는 한마디를 남겼다. 식사 후에는 드림 출신 팀장들과 티타임을 가졌다는데 권차장이 준비된 내용을 보고했는지 부러진 보드판을 제대로 수리했는지 궁금하긴 했다. 하여간 송사장은 모든 사무실에 들러 골드 출신 직원들을 격려하고 돌아갔다. 그것이 격려였는지 모르지만 불쌍한 골드 직원들을 구제하기 위해 많은 혜택을 베풀고 있다는 확신은 있어 보였다. 그리고 그날 저녁부터 김치 맛 품평회가 열렸다. 직원의 입맛에 맞는 김치를 찾을 때까지.


  잠시 숨 돌리러 올라간  옥상에는 인아가 햄버거 두 개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점심 안 먹었지. 이걸로 해장이나 하자"  

 "역시. 내 맘 아는것은 우리 황아지 밖에 없다니까."

 "황아지? 그게 뭐야."

 "어젯밤 기억 안 나냐 못된 송아지 황인아를 줄여서 황아지라 부르기로 했잖아."

   지난밤의 일을 즐겁게 떠들며 햄버거를 먹었다. 커피 한 잔 제대로 마시지 못하는 상담실 업무, 역시 아직까지 점심을 먹지 못한 vip 라운지의 업무.  고객 접점의 일에 대해 그동안 너무 몰랐단 생각이 들었다.중요한 것은 사장이 아닌데. 가게 주인이 김 씨든 권 씨든 손님들은 변하지 않는다. 계속 불평하고 무엇인가 요구한다.그것을 버텨내고 있는 직원들에게 식당의 김치 맛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럼에도 직원들에게 김치라도 맛있게 해주라는 사장의 생각, 청소가 중요하다는 의미 , 그것은 지 성격이 깔끔해서가 아니라 손님을 대하는 기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퍼포먼스였다. 그 사람이 사장이 된 이유였다. 그렇지만 골드 백화점을 무시하고, 지나온 시간을 우습게 여기는 것은 기분 나빴다. 어쨌든 30년 동안 송안 시민의 동반자로 인심을 얻었던 기업이다. 그렇게 형편없는 회사는 아니었다. 그래서 연봉은 작아도 자부심을 갖고 일해  온 것 아닌가. 그들에게 상처를 주고 간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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